[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역사는 현재를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는 말은 이준익 감독 영화를 보면 충분히 수긍되는 명제다. 하지만 그건 전체에서 중간까지일 뿐. 이준익 영화 속 ‘진짜’는 사실 그 ‘중간’ 다음에 남아 있는 ‘나머지’에 있다. 역사는 사건이다. 역사는 비극과 희극의 공존이다. 이준익 영화에는 희극보단 비극이 더 많다. 그건 이준익이란 감독이 영화, 특히 사극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 때문이다. 그는 영화를 통해 역사를 돌아보고 그 역사를 통해 지금의 시대가 겪는 ‘부침’의 원인을 찾아가려 노력 중인 것 같다. 그리고 그 속에서 당연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부분 하나를 짚어 내 ‘영화’란 매체 속에서 ‘확장’의 미학을 선보인다. 이준익 감독 영화에 ‘미학’이란 단어를 쓸 수 있는 것은 ‘동주’를 통해 선보인 ‘흑백’ 조율 이후부터라고 말한다면 그것 역시 ‘미숙한 판단’이 될 수 있다. 그의 데뷔작 ‘키드캅’ 이후부터 이어진 ‘이준익 시네마틱 유니버스’ 핵심은 ‘사람’이었고, 또 시대였다. 혼란의 시대 속 개인이 겪는 부침과 굴곡은 그에게 영화적 미학이란 다른 세계를 돌아보게 만들었고, 또 그것을 투영시킬 원동력을 줬다. 그 끝에는 ‘역사’ ‘시대’ ‘사건’ ‘사람’이 어우러진 이야기 속에서 스크린을 가득 채우는 미학적 측면이 터져버리면서 관점의 방식을 완벽하게 다른 지점으로 끌고 가는 힘을 담아냈다. 그게 이준익 감독 영화고, 그의 영화적 미학이며 또 그가 말하는 방식이다. 결과적으로 그가 사극을 주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자산어보’는 이준익이란 감독이 만들어 낼 수 있는 이야기의 정점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결과물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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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산어보’도 흑백이다. 이준익 감독 말처럼 앞선 그의 흑백 ‘동주’가 시대의 아픔을 담아 낸 그릇이었기에 ‘흑’의 색채가 강했었다. ‘자산어보’는 ‘백’의 기운이 강하다. 수묵화 속 여백의 미를 뜻하는 것처럼 스크린 곳곳이 환하게 빛난다. 밝은 기운이라고 하지만 그게 ‘긍정’의 의미는 아니다. ‘신유박해’ 시기, 조선 사대부의 시기와 질투를 받은 정씨 삼형제는 고역스럽고 힘겨웠다. 제일 둘째 약종은 참수를 당한다. 첫째 약전(설경구)은 흑산도, 막내 약용은 강진으로 유배를 떠난다. 서학(서양 학문)을 행했단 이유다. 유교를 바탕으로 한 성리학의 나라에서 조상의 위패를 부정하고 제사를 거부한 그들이다. 그들은 역적이다. 그 시대 근본을 부정한 ‘배교자’들이다. 하지만 따지고 보면 그랬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성리학’을 거부한 게 아니었다. 그저 눈에 보이는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실사구시’를 행했을 뿐이다. 그 시대는 보이는 것을 천대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숭상했다. 평생을 ‘보이지 않는’ 이념 속에 파묻혀 살던 약전은 궁극적으로 성리학의 진심을 이해했는지도 모른다. 조선 최고 사대부 집안 출신이자, 당대 최고 천재로 불리던 그가 바라본 ‘진심’은 성리학을 넘어선 실체에 접근하는 법이었을 터. 그는 그랬을 것이다. ‘자산어보’가 바라본 정약전의 그 시절은 그랬을 것 같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하지만 그건 개인보다 집단, 집단보다 사회가 우선시되던 조선의 명분 ‘성리학’의 표면적 이론 속에선 반하는 개념이다. 조선의 끝 ‘흑산’으로의 유배에서도 약전은 그걸 바라보게 된다. 흑산에서 평생을 고기 잡이로 생활해 오던 청년 창대(변요한)가 그랬다. 약전은 암울했다. 바뀔 것이란 기대보단 바뀌지 않을 것이란 조선의 철옹성 같은 이념은 그를 절망케 한다. 기약 없는 유배의 두려움보단 ‘주자의 가르침’을 단 하나의 진리로 믿고 의지하는 이 나라 근간이 위태롭고 더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 밑바탕에 자리한 근원이 백성이 아닌 권력에 빌붙은 ‘권신’들이란 것도. 거기까지 내다 본 약전을 그래서 조선 사대부들은 당대 천재이자 실사구시 학문의 걸작으로 칭송 받는 ‘목민심서’ 저자이며 그의 동생인 약용보다 더 위험한 인물이라고 본 것도 충분히 납득 갈 뿐이다.
‘자산어보’에서 그려진 약전은 그래서 스스로에게 질문하고 그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보이는 것’을 보여주고자 노력했는지도 모른다. 동생 약용이 같은 유배 속에서도 수백 권의 저서를 남긴 것과 달리 단 몇 권의 저서만을 남긴 것을 두고 창대와 함께 논쟁을 벌이는 모습이 그랬다. 그런 약전의 깊은 의중을 동생 약용만은 알고 있었을 터. 그래서 창대에게 그 답을 스스로 찾아 보라며 형 약전의 높은 학문적 통찰을 흠모한 장면도 등장한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단지 약전이 그렇게 안타까워하고 못내 아쉬워한 이유가 이랬다면 더 안쓰러웠을 것이다. 그는 증명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창대가 그래서 약전에게 필요했다. 창대를 통해 자신의 믿음을 증명하고 싶었던 게 아니다. 조선의 끝 ‘흑산’에서부터 조금씩 아주 조금씩 바뀌어 가는 세상의 변화를 꿈꿨는지 모른다. 그를 통해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도 중요하지만 ‘보이는 것’에 대한 진짜를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눈에 보이는 백성이 먼저가 아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대와 명분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성리학’ 이면에 약전은 더 화가 났을 것이다. 죽은 지 3년이나 지난 사람에게, 이제 태어난 지 석 달도 안된 ‘핏덩이’에게 조차 군포를 매기는 그 시절 관료들의 부정부패. 명분의 근원 위에 선 ‘조선’의 실체가 사실은 보이지도 않는 것에 매달리며 안과 밖이 곯아 터진 것도 모른 채 달리고 또 달리는 경주마처럼. 결국 그 끝은 낭떠러지 절벽뿐인데 말이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약전의 이런 마음은 고스란히 드러난 다기 보단 창대를 통해 세상의 창으로 빗대어 진다. 양반의 첩 자식으로 태어나 평생을 흑산에서 머물렀지만 성리학 근간 위에서 세상을 바꿔 보겠단 꿈을 품은 그에게 결국 세상은 ‘보이지 않는 것’이 지배하는 비릿한 생선 내음보다 못한 썩은 내음 그 자체였단 걸 알게 하고 싶었던 것 같다.
약전이 원했던 것은 바꾸는 게 아니다. 변화도 아니다. ‘보이지 않는 것’에 매달린 세상이 이젠 좀 더 명확하고 뚜렷한 ‘보이는 것’을 보며 나아가길 바랐던 것 같다. 당대 천재라 불리던 약용이 자신의 지식을 오롯이 쏟아낸 저서들의 마지막 수정과 검수를 항상 형 약전에게 부탁한 것도 그런 그의 혜안을 알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영화 '자산어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자산어보’는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해 큰 것으로 쌓아 올라가는 기본과 실증적 논리의 가치를 제시한다. 그 시절 정약전이란 인물이 그것을 먼저 봤단 것은 결코 놀라운 것은 아니다. 반대로 그 시절 그것을 보지 못했던 모두가 잘못됐단 것도 아니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했던 창대가 결국 보기 싫었던 것을 본 뒤 깨달은 것의 가치를 잃지 않은 것만으로도 가능성과 기회는 누구에게나 균등하게 남아 있단 것을 알린다. 아마도 정약전이 유배 이후 ‘자산어보’ 단 한 권에 매달린 것도 ‘보이지 않는 것’에 반평생을 넘겨 줬던 자신에 대한 성찰이자 반성은 아니었을까 싶다.
영화 '자산어보' 스틸. 사진/메가박스(주)플러스엠
이준익 감독이 만들어 낸 ‘자산어보’는 그래서 흑백이 어울린다. 반성과 성찰은 결코 어두운 그늘 속에 존재한다고 보여지는 것도 아니고 깨닫게 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고 밝고 하얀 햇볕 속에서만 존재한다고 그것이 진심이 되는 것도 아니다. 흑은 흑 그대로 그 자리에 있고, 백은 언제나 백 그대로 그 곳에 있었다. 그걸 우리가 몰랐던 것뿐이다. 약전에게 그리고 마지막 창대에게 흑산(黑山)이 자산(玆山)으로 남은 것도 그런 이유였을 것이다. 개봉은 오는 31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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