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우리 집에 다른 누군가가 살고 있다. 몇 년 전 국내에서도 개봉한 영화 ‘숨바꼭질’이 떠오른다. 한 공간에 다른 누군가가 침입했다. 일상이 균열되는 것이다. 그 균열에 대한 불안이 ‘숨바꼭질’ 공포의 배경이었다. 불안하고 또 위태로운 일상이 연속되면서 벌어지는 상황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불안정하다. 사실상 ‘침입’이란 소재는 그래서 상업 영화 속 소재로 꽤 매력적이라고 부를 수 있다. ‘숨바꼭질’ 외에도 여러 독립영화 혹은 기존 상업 장르 영화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지점이다. 하지만 ‘아이 씨 유’는 같은 소재를 다루면서도 꽤 흥미로운 방식을 선택했다. 반전을 위한 치밀한 계산 그리고 그 계산에 따른 기상천외한 편집, 편집에 따른 관점의 변화, 변화를 위한 플롯 구성의 독특함, 독특함을 극대화하기 위한 맥거핀의 활용 등이다. 스토리 구성은 의외로 간결하다. 하지만 ‘아이 씨 유’는 전체를 플롯으로 보자면 ‘스릴러의 신’으로 불리는 히치콕의 아우라를 느끼게 한다. 분명하게 독특하면서도 강력하다.
미국의 한 작은 도시. 열살 소년의 실종 사건이 발생한다. 주변 단서를 종합해 보면 이 도시에서 15년 전 발생한 아동 연쇄살인 사건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사건의 담당 형사는 그렉이다.
아동 실종 사건의 도시가 시끄럽다. 하지만 문제는 그렉의 가정이다. 그의 아내 재키는 과거 불륜을 저지른 전력이 있다. 두 사람의 아들 코너는 엄마를 용서할 수 없다. 엄마의 친절과 관심이 불편하다. 과거의 잘못을 관심으로 용서 받을 수 있다고 판단한단 것이 코너 입장에선 혐오스럽다. 물론 재키도 과거 잘못을 뉘우치고 있다. 그저 되돌리고 싶을 뿐이다. 그렉 역시 아내 재키의 그런 노력을 알고 있지만 몸이 따르지 않는다. 그렉의 집안은 도시의 어수선함만큼 불안하다.
영화 '아이 씨 유'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주)
그런 그렉의 집안에 며칠 전부터 이상한 기운이 감돈다. 평소 이들 가족이 자주 사용하던 컵이 사라진다. 부엌의 은제품 식기류가 고스란히 사라진다. TV는 저절로 켜지기를 반복한다. 조용하던 집안에 턴테이블이 혼자 돌아간다. 재키는 불안하다. 가족들에 대한 미안함을 떨쳐내는 것도 버거운데 뭔가 이상한 기운이 돌고 돈다. 그렉과 아들 코너는 그런 재키의 태도가 더욱 더 못마땅하다. 스크린에는 알 수 없는 누군가의 시선이 군데군데 느껴지고 또 존재한다. 분명히 집안에는 그렉 가족 외에 누군가가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사고가 터진다. 재키의 과거 연인이자 불륜 상대가 가족 몰래 찾아온다. 당황한 재키와 연인은 관계 회복을 위해 실랑이를 한다. 하지만 그때 2층 창문에서 컵 하나가 떨어져 재키의 불륜 상대 머리를 때린다. 큰 상처를 입은 그는 재키의 안내로 집안 지하 창고로 향한다. 그곳에서 치료를 받고 잠시 대기 하던 중 누군가가 그를 살해한다. 집안에서 벌어진 살인 사건, 꼼짝 없이 재키가 범인으로 몰릴 위기에 처했다. 그렉은 아동 실종사건으로 정신이 없다. 코너는 엄마에 대한 반감으로 더욱 더 스스로를 고립시켜 나간다. 집안에서 그렉과 재키 그리고 코너, 세 명의 가족은 각자의 공간에 더욱 더 고립이 된다. 어떤 보이지 않는 힘에 그들 각자가 이끌려 간 것처럼.
영화 '아이 씨 유'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주)
‘아이 씨 유’는 묘하단 단어로는 설명하기 불가능한 그 뒤에 덧입혀 진 많은 게 존재한다. 우선 표면적인 스토리와 플롯은 단순하다. 하나의 사건과 그 사건에 관계된 한 가족의 얘기가 있다. 이 가족에게 어떤 문제를 덧씌운다. 관객은 전체 사건과 함께 이 가족에게 얽힌 사건에 집중한다. 두 사건의 인과관계에 대한 추론과 추측을 이어가면서 영화 속에 등장하는 다양한 장치와 설정 그리고 트릭을 해석해 나간다.
‘맥거핀’이란 단어를 들어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전체 줄거리에 영향을 주지 않지만 의도적으로 관객의 시선을 묶어 둠으로써 관객에게 궁금증을 유발하는 장치다. 이 장치를 가장 잘 써온 감독이 바로 히치콕이다. 최근에는 ‘떡밥의 제왕’으로 불리는 J.J 에이브럼스 감독도 있다. 하지만 ‘아이 씨 유’ 속 ‘맥거핀’은 순수하게 온전한 ‘맥거핀’으로만 존재한다. 영화적 스포일러와 재미 그리고 흥미를 위해 오롯이 밝힐 수는 없지만 영화 시작 후 중반 너머까지 존재하고 직시했던 모든 장면이 사실상 완벽한 ‘맥거핀’에 해당한다.
영화 '아이 씨 유'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주)
때문에 이 영화는 두 개의 시선이 존재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의도적이다. 이후 설명돼야 할 모든 지점이 완벽한 스포일러에 해당된다. 이 점을 위해 감독은 스토리의 구성 즉, 플롯의 치밀함을 면밀하게 계산했을 것이다. 영화 시작부터 전개 그리고 결말까지 이어지는 장면과 장면, 컷과 컷 사이 여백의 배치를 고민했을 것이다. 쉽게 말하면 A를 공개하고 이어 B를 드러낸다. 결국 C가 해답이라고 관객들에게 인식시킨다. 하지만 중반 이후 반전에서 드러나는 비밀은 충격적이다. 사실은 A와 B 사이에 관객은 전혀 알 수 없는 D가 존재한 것이다. 결국 C자체가 처음부터 끝까지 이 영화를 지배하는 ‘맥거핀’의 ‘맥거핀’이었던 셈이다.
영화 '아이 씨 유'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주)
이런 계산된 연출과 편집은 쉽게 말하면 ‘반전’이다. 하지만 시선과 관점의 차이를 두고 스토리를 끌고 가면 전혀 다른 장르와 플롯의 이종교배다. 한 작품 안에서 이런 시도를 했고, 또 유려하게 흐름을 붙여 버린 감독의 연출 솜씨가 눈을 번뜩이게 만든다.
중반 이후까진 장르 영화의 흐름과 그 흐름에 시선을 사로 잡힐 수밖에 없는 장치(맥거핀)가 차고 넘친다. 그게 장치인지도 모르고 넘어갈 정도다. 하지만 중반 이후 드러나는 반전에 앞선 흐름의 정교한 설계가 오금을 저리게 만든다. 물론 중반 이후 드러난 반전이 ‘아이 씨 유’는 킬링 포인트는 아니다.
영화 '아이 씨 유' 스틸. 사진/그린나래미디어(주)
‘아이 씨 유’의 진짜 킬링 포인트는 ‘관객을 쥐고 흔들어 버리는’ 영화적 장치의 능수능란함이다. 이 정도면 알고도 당할 수 밖에 없다. 개봉은 3월 11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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