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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미나리’, 극화와 다큐 사이 어디쯤 존재하는 ‘특별함’
감독의 실제 자전적 스토리, 실제 이민자 삶 속에 존재한 자아 충돌
‘이민자의 나라’ 미국의 신드롬…부모세대 vs 자식세대 소통의 기회
2021-02-24 00:00:01 2021-02-24 00:00:01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왜 제목이 미나리일까. 미나리는 가장 척박한 땅에서도 씨만 뿌리면 자라는 여러해살이 풀이다. 질기고 질긴 생명력의 상징이다. 영화에서도 미나리는 실제 등장한다. 하지만 미나리가 얘기의 중요한 모멘텀을 지닌 영화적 장치는 아니다. 영화 자체에 변곡점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화는 그저 벌어지는 현상을 일정 거리를 유지한 채 바라보고 또 지켜볼 뿐이다. 고정 화면을 통해 카메라 화각(angle of view)을 유지하면서도 때때로 핸드헬드(handheld) 촬영을 통해 이런 감정을 전달한다. 화면 자체가 감정을 끌어 안고 배우들을 바라보니 영화가 만들어 내는 얘기가 스토리로 다가오지 않는다. ‘미나리가 극화된 드라마와 실제 기록 또는 현재 진행 중인 실제를 담아낸 다큐멘터리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강조하고 전달하려는 것도 이 때문일 듯 싶다. 결과적으로 미나리는 형식적으로도 고착화 된 영화 장르 형식 안에서 새로움을 전달하려는 도전의 함축적 의미 부여일 수도 있다. 물론 형식이 영화 목적성에 가장 크게 부합되는 얘기를 전달하는 가장 적절한 방식이라면 미나리는 우리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굉장히 낯선 경험이 될 것 같다.
 
 
 
미나리는 현재 국내에서 개봉 하지 않았다. 반면 북미 지역에선 열광을 넘어 신드롬의 주인공이다. 이 정도는 공감의 잣대가 아닌, 감정의 이입 단계를 넘어선 다른 지점이 작용한 결과다. ‘이민자의 나라미국에서 특히 미나리에 대한 열광은 광적이다. 실재하는 나, 집단에 속한 나 그리고 정체성을 고민하는 나. 미국 땅에 뿌리 내린 이민자들에게 항상 존재하는 자아의 개념이다. 시대를 넘어서 그들은 이 3개의 나를 통해 충돌하고 부딪치고 때론 투쟁하며 싸우고. 그런 현실 속에서 살아간다. ‘미나리가 미국 내 신드롬 주인공이라면 이 3개의 자아를 통해 삶의 본질을 매번 고민하고 공감하고 또 분석하는 문화적 이해 충돌의 핵심을 건드린 어떤 무엇에 흔들렸기 때문일 것이다.
 
영화는 간결하다 못해 건조하다. 연출을 맡은 미국계 한인 정이삭 감독 자전적 스토리다. 아칸소주 시골 배경으로 한 가족이 등장한다. 1980년대 배경. 그 시절 미국으로 이민을 온 가족.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란 삶의 목적으로 이민을 택한 그들. 아버지 제이콥(스티븐 연)은 아주 큰 농장을 만들 꿈을 꾼다. 아내 모니카(한예리)는 현실의 삶을 걱정한다. 바퀴 달린 트레일러를 보고 낙담하고, 현실이 막막하면서도 한 없이 추락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감 속에서도 남편을 믿어 보려 한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기대와 달리 현실은 더욱 더 암담하다. 늘어만 가는 빚 때문에 제이콥과 갈등을 겪는 모니카. 뭔가 가족을 위해 일궈내고 싶은 제이콥. 가족을 위한다지만 사실 그게 가족을 위한 것인지 자신의 고집인지 이젠 분간하기 어렵다. 현실의 문제는 가족간 불화로 이어진다. 그들은 이제 위태롭다. 불안하다. 그런 순간 모니카의 엄마 순자’(윤여정)가 한국에서 온다. 제이콥과 모니카 부부의 두 아이 데이빗을 돌봐주기 위해서. 제이콥은 더욱 더 농장 일에 매달린다. 모니카도 병아리 감별 공장에 취업해 굳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다.
 
카메라는 영화 전반에서 이들 가족의 현실과 고민 그리고 감정 충돌을 직시했다면 후반 이후 순자가 등장하면서부턴 스크린을 경계로 관객과 인물 얘기의 거리를 쥐락펴락한다. ‘능수능란하다는 표현의 다른 말이 아니다. 스크린 너머 인물들이 만들어 가는 얘기의 색깔에 따라 카메라의 거리는 멀어졌다 가까워짐을 반복한다. 카메라가 감정을 만들어 내는 방식을 택한다. 관람의 호흡을 조절하는 것이다. ‘미나리가 극화와 다큐 중간 어디쯤에 존재하는 이제까지 본 적 없는 이질적인 화각을 통해 만들어 낸 화면은 그래서 미나리그 자체로 존재하게 만든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순자와 데이빗 그리고 앤이 함께 하는 장면은 이채롭다. 제이콥과 모니카 그리고 두 아이가 함께 한 전반이 극화 흐름을 띄고 흘러간다면 순자가 존재하는 순간부턴 극화 경계를 넘어선다. 감정 굴곡이 드러나지 않는다. 일상의 호흡이 극단적으로 강조된다. 순자와 아이들이 고스톱을 치는 장면을 보라. 그 장면에서 순자의 대사 그리고 아이들의 호흡과 대사. 그 세 사람이 만들어 내는 관계의 설정과 흐름. 감정으로만 느낄 수 있는 극화가 만들어 내는 벽이 허물어지는 순간이다. 미숙해 보일지 모를 데이빗과 앤의 연기, 그 연기를 받아 넘기는 순자윤여정의 연기. 연출의 역할과 개입이 아닌 오롯이 세 사람이 만들어 낸 흐름의 방식이다. 단순한 텍스트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지점이다.
 
가족 얘기가 흘러가니 신파곡조는 불가분이다. 하지만 미나리는 그걸 빼버린다. 사실 미나리에 신파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배우들의 내밀한 감정 조절은 장르 영화에 익숙한 관객들에겐 감각적으로 습득하기 힘든 지점일 수 있다. 이건 감독 스스로가 전하기 위해 연출한 방식이 아닌 관객 스스로가 알아채 주길 바란 디렉팅의 방식이다. ‘미나리는 감정을 공감하게 만들지 않았다. 감정을 공유할 때 미나리가 이민자의 얘기가 아닌 바로 나와 당신과 우리 모두의 얘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의 문을 제시한 것이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순수하게 미나리가 담고 있는 것은 1980년대 미국 대륙에 안착하길 바랐고, 처절하게 버티고 또 그러길 바랐던 이민자들의 삶이다. 실재하는 나, 집단 속에 속한 나, 그리고 정체성의 고민에 허우적대는 나. 3개의 자아가 혼돈하는 삶은 오롯이 지금까지도 이민자들의 삶을 지배하고 흔드는 아쉬움이다. 이민자가 만들어 간 개척의 시대, 그 시대에 처절할 정도로 안간힘을 끌어 내면서 버티고 버텨 온 우리 부모세대의 삶. 그 세대와 단절된 소통의 방식. ‘악착 같이를 삶의 방식으로 택하고 살아온 부모들, 온택트를 넘어 언택트 시대를 맞이한 지금 현실에서 관계의 방식을 새롭게 정립해 나아가는 그 다음 세대들. ‘미나리는 두 세대 격차가 가진 이유와 원인을 담아내면서 공감을 강요하지도 원인을 일깨워주려 하지도 않았다.
 
영화 '미나리' 스틸. 사진/판씨네마(주)
 
사실 여기까지 넘어간다면 미나리가 담아낸 진심을 대부분 받아 들인 셈이다. 물론 그 받아 들임의 몫은 관객 자신의 가슴과 머리에 굳게 잠긴 문과 열쇠를 어떻게 사용할지에 달려 있다. 1980년대 미국 이민자들의 삶 속에서 지금 우리가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알아야 할지를.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받아 들임의 자세다. 제이콥과 모니카 가족이 서로를 구원하기 위해 택했던 그 시절 현실도, 삶의 황혼 속에서 미나리의 생명력을 빗대어 소중함의 가치를 일깨워 준 순자의 시선도. 사실 모두가 선택의 문제이고 받아 들임의 자세일 뿐인데.
 
그 받아 들임이 국내 관객들의 굳게 닫힌 문을 열 열쇠가 될지, 그 문을 더욱 더 굳게 걸어 잠글 빗장이 될지는 개봉 이후 평가에 달렸다. 다음 달 3일 국내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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