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9명 선남선녀가 등장한다. 그들이 만들어 내는 4개의 에피소드가 있다. 대부분 말랑거리고 설레임을 자극한다. ‘나도 저랬는데’ ‘나도 저럴 뻔 했었지’ ‘맞아 그랬어’란 공감을 요구한다. ‘그럴 수도 있고’ 또 ‘아닐 수도 있다’가 딱 반반이다. 옴니버스 형식의 구성이 만들어 낸 9명의 네 남녀가 만드는 다양한 에피소드는 깊을 수가 없다. 분량 문제다. 양이 적으니 맛이 깊게 들어갈 ‘가능성’이 떨어진다. 양이 맛을 결정하는 ‘절대치’의 기준일 수는 없다. 하지만 맛을 녹이고 숙성시키고 또 뜸을 들여야 하는 기승전결의 흐름이 꽤 압축돼 있다. 선택과 집중의 문제라고 한다면 반박할 논리는 없다. 차라리 로맨틱 장르보단 장르적 특성이 강력한 공포나 스릴러 혹은 SF에서 이런 구성은 빛을 발한다. 로맨틱 옴니버스의 교본이 된 ‘러브 액츄얼리’를 꿈꿨다지만 이미 18년 전 감성이다. 감성도 트렌드다. ‘새해전야’는 제목의 시의성이 절대치로 작동될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진짜’는 그 안에 투영된 감성의 문제였다. 물론 그 문제를 모두 덮어 버릴 만큼의 배우 비주얼 잔치는 ‘새해전야’의 가장 화려한 진수성찬이다.
이른바 ‘전야 시리즈’를 선보이고 있는 홍지영 감독의 ‘새해전야’는 전작 ‘결혼전야’에 이은 두 번째 ‘전야’다. 새해를 앞두고 인생 비수기를 끝내고 싶은 네 커플이 각자 보내는 일주일의 시간을 담아 냈다. 각자 취업, 연애, 결혼, 이혼 등을 안고 있다. 우리 모두가 무조건 한 번쯤은 겪어 봤고 마주해 봤던 고민거리들이다. 결과적으로 ‘새해전야’는 소재를 통한 공감에 방점을 찍고자 노력한다.
이혼 4년 차 강력반 형사 지호(김강우)는 뜻하지 않은 사고로 민원실 좌천을 통보 받는다. 어느 날 난데없이 들이닥친 효영(유인나). 그는 자신의 신변보호를 요청한다. 이혼 소송 중인 남편으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단다. 지호와 효영은 앙숙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과정은 시작을 달달하게 녹인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스키장 비정규직 직원 진아(이연희)는 연인(최시원)으로부터 이별 통보를 받는다. 연인은 이별 통보에 한 없는 지질함을 더해준다. 일도 연애도 되는 것 하나 없는 진아는 모든 것을 훌훌 털어 내고 지구 반대편 아르헨티나로 도피성 휴가를 떠난다. 그곳에서 와인 배달원 재헌(유연석)을 만난다. 두 사람 역시 티격태격으로 시작하지만 이내 와인 한 잔의 달콤함 그리고 이국적인 공간에게 지배된 감정으로 인해 묘한 공감을 나누게 된다. 여행사를 운영 중인 용찬(이동휘)은 중국인 연인 야오린(천두링)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하지만 문화 차이에 따른 의견 충돌 그리고 용찬에게 닥친 황당한 사고(?)로 인해 미래가 암담하다. 용찬과 야오린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용찬의 누나 용미(염혜란)의 ‘짠내’나는 노력도 공감대를 끌어 올리는 장치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장애인 스노우보드 국가대표 래환(유태오)과 그의 연인이자 원예사인 오월(최수영)은 장애와 비장애에 대한 세상의 편견 그리고 그보다 더 두터운 자신들의 편견이 문제다. 세상의 시선도 신경 쓰이지만 사실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이었다.
9명의 배우가 만들어 낸 4개의 에피소드는 약간의 특별함 그리고 아주 많은 분량의 평범함을 뒤섞어 놓았다. 9개의 에피소드가 가느다란 씨줄로 연결돼 있지만 두터운 날줄로 단단히 묶여 있지도 않다. 결과적으로 4개의 에피소드는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고 각자의 색깔만 반짝거린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이른바 ‘옴니버스’ 스타일로 따라가는 ‘전야 시리즈’이지만 ‘옴니버스’ 특유의 독립성과 하나의 주제로 묶이는 것도 힘들다. 단지 ‘새해를 앞둔 남녀 커플들의 현실적인 문제, 그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 만 집중할 뿐이다. 때문에 재미는 한계에 부딪치고, 4개의 에피소드를 묶어 주는 씨줄과 날줄로 엮여야 할 주제는 휘발된다.
사실 ‘새해전야’를 통해 예비 관객들이 느끼고 싶어하는 감성을 꼽자면 ‘러브 액츄얼리’가 담아 낸 그 지점을 일 듯하다. 이뤄질 수 없는 것에 대한 바람을 완성시켜주는 크리스마스의 마법. ‘새해전야’도 낡은 것은 버리고 새 것을 맞이하고자 하는 모두의 바람이 바로 예비 관객들의 바람일 것이다. 지극히 현실적인 4개의 에피소드가 반대로 영화적인 판타지 감성을 씻어낸다. 때문에 인물들의 깊이와 감정에 공감할 여지가 줄어든다. 시작과 과정 그리고 결말 등은 각각의 에피소드가 완벽하게 예상 가능한 결말로 흘러간다.
영화 '새해전야' 스틸. 사진/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새해전야’가 잡아낸 미덕이라면 4개의 에피소드를 만들어 낸 9명의 화려한 배우들일 뿐이다. 한 자리에 모으기 힘든 배우들이다. 그리고 한국영화 최초로 스크린에 담아낸 이과수 폭포의 절경. 아쉽지만 이 두 가지만이라도 잡아낸 게 ‘새해전야’의 가장 큰 미덕이라면 미덕이다. 개봉은 2월 10일.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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