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태의 경제편편)회계법인의 일탈
2020-11-18 06:00:00 2020-11-18 06:00:00
삼성그룹 총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삼성 경영권 불법 승계 의혹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지난달 22일 첫 재판이 열렸다. 이 부회장의 국정농단 뇌물사건 파기환송심 재판도 지난 9일 재개됐다. 2가지 재판을 동시에 받게 됐으니 본인도 이를 지켜보는 사람도 모두 마음편치 않다.
 
경영권 승계 의혹 재판은 검찰이 지난 9월1일 자본시장법상 부정거래행위 및 시세조종, 업무상 배임 등 혐의로 이 부회장을 불구속 기소하며 시작했다. 이 부회장 신청에 따라 열린 수사심의위원회는 수사를 중단하고 재판에 넘기지 말라고 대검에 권고했다. 그렇지만 검찰은 숙고를 거듭한 끝에 수용하지 않았다. 경영권 불법승계 의혹을 이대로 덮어버릴 수는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사건이 간단하지 않기에 수사기간이 제법 길었다. 재판도 아마 오래 걸릴 것 같다. 두번째 재판이 내년 1월 열린다고 하니 1심 마무리까지 수년 걸릴지도 모르겠다. 재판이 다소 길어지는 한이 있더라도 진상이 보다 명확히 밝혀질 것으로 기대된다. 이 부회장 본인을 비롯해 '주연' 역할을 맡은 삼성 관계자의 책임도 가려질 것이다.
 
그런데 '조연' 역할을 한 회계법인의 책임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비율 산정이나 삼성바이오에피스의 회계처리 변경 과정에서 회계법인이 책임질 일이 없는지 분명히 규명돼야 한다. 이 역시 결코 사소한 것은 아니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회계법인 딜로이트안진은 합병비율 산정과정에서 삼성측의 요구에 따라 검토보고서를 허위로 작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삼성이 설정한 합병 비율이 적정하다는 결론을 미리 내려두고 이에 맞춰 보고서를 써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제일모직에 유리한 정보를 과다 계상한 반면 삼성물산에 유리한 정보는 고의로 누락시켰다. 그 결과 이 부회장이 최대주주였던 제일모직 주가가 정상보다 높아진 반면 삼성물산 주가는 부당하게 하락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검찰의 이런 조사결과가 사실이라면 이는 "회계사들이 공정하고 성실하게 직무를 행해야 하며, 고의로 진실을 감추거나 허위보고를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 공인회계사법을 어긴 것이다. 아니 법 이전에 직업적 책임을 망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삼성바이오의 회계 감사를 맡았던 회계법인 삼정KPMG도 책임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삼성바이오는 2011년 미국 바이오젠과 합작 계약을 통해 에피스를 설립했다. 당시 계약에는 바이오젠이 삼성바이오로부터 에피스 지분을 50% - 1주까지 매입할 수 있는 콜옵션과 52%로 가중된 주주총회 의결요건 등이 포함돼 있었다. 삼성바이오는 애초부터 에피스에 대한 지배권을 가진 적이 없었다. 따라서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도 역시 '종속회사'가 아닌 '관계회사'로 돼야 했다는 게 검찰의 판단이다.
 
그러나 삼정KPMG는 가만히 있었다. 합병이 마무리된 후 2015년 9월에야 콜옵션이 회계처리에서 누락됐음을 지적한 것으로 조사됐다. 뒤늦게 콜옵션을 부채로 판단하고 삼성바이오의 재무제표를 2012년까지 모두 소급해 수정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것이다. 이에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6일 삼정KPMG와 회계사 2명을 불구속기소했다.
 
검찰 공소장에 삼성KPMG의 이름은 2차례만 언급된다. 이에 비해 딜로이트안진은 25회나 등장한다. 그럼에도 검찰은 안진에 대한 처리를 아직 고심 중인 모양이다. 그 이유가 무엇 때문일까 궁금하다.
 
금융감독원의 움직임도 궁금해진다. 주어진 직업적 책무를 다하지 않은 책임을 묻고 재발방지를 위한 본보기를 세울 것인지 주목된다. 지난달에는 감사를 맡은 회사의 재무제표를 대리작성해준 회계법인들이 감사업무 정지 등 제재를 받았다. 지난 8월 숨진 CJ택배 노동자의 산재보험 적용 제외 신청서는 대리점 측 회계법인이 대필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모두가 시장경제의 건실한 발전을 위협하는 일탈행위들이다.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 나온다. 그러니 이제 그런 일탈행위들은 일어나지 않을 때가 됐다. 필자가 이미 몇 차례 지적했듯이 회계법인은 현대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파수꾼이다. 기업과 국가경제가 건실하고 투명하게 발전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기업의 건실한 성장과 국가의 신인도는 이들 회계사와 회계법인에 의해 좌우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계법인과 회계사들이 맡은 소임은 그만큼 엄중하다. 이들이 책임을 다하지 않았을 때 냉정한 조치가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검찰과 금융감독원의 향후 움직임을 유심히 바라봐야 하겠다.
 
차기태 언론인(folium@nat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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