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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종이꽃’, 오늘이 소중하듯 내일도 그리고 또 내일도
상처 입은 사람들 통해 전하는 삶에 대한 소중함 그리고 또 소중함
인간 존엄성, 그리고 삶의 진정성…죽음을 마주한 ‘장의사’의 시선
2020-10-19 00:00:00 2020-10-19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체코 출신으로 생존 작가 가운데 세계 최고 대문호로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밀란 쿤데라는 최근 몇 년 동안 발표한 작품을 통해서 일관된 메시지를 담아내 왔다. 인간의 삶 자체가 사실 보잘 것 없는 축제의 단편이란 얘기를. 그래서 누구라도 알 고 있는 얘기 하나는 명확해질 뿐이다. 죽으면 그냥 썩어 없어 질 뿐이라고. 영화 종이꽃에서도 나온다. 수백만 원짜리 최고급 오동나무 관도 그저 땅 속에 들어가면 썩어 없어질 뿐인데. 삶의 색깔이 어떻게 채워지고 그려진다고 해도 죽음 앞에서의 대면은 그저 같을 뿐이다. 그럼에도 그 색깔을 정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죽음의 반대편에서 그것을 바라보는 삶의 목적성이다. 살고 싶기에 죽고 싶단 얘기를 쏟아내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으니, 그것을 바라보는 삶의 고통이야 오죽하랴. 사실 그렇게 보면 명확한 것은 분명해질 뿐이다. 진짜는 살고 싶은 것인데 말이다. 삶의 소중함은 죽음 앞에서 드러나게 된다. 그 죽음의 색깔은 모두가 같다. 그 색깔을 정하는 것은 숨을 쉬고 있는 삶의 동안이 정하는 게 아닌데 말이다. 영화 종이꽃의 마음이고 색깔이며 또 얘기가 잔잔한 호수에 던져진 돌멩이의 출렁임을 만들어 낸다.
 
 
종이꽃은 죽음과 너무도 가까운 얘기다. 죽음이 드리운 광경이고, 또 풍경이다. 죽음과 함께 하는 장의사 성길(안성기)은 진짜 죽음과 함께 하는 듯 고통스럽고 힘겹다. 사고로 장애를 얻은 하나 뿐인 아들 지혁(김혜성)은 삶에 의지를 잃었다. 누군가 죽어야만 살 수 있는 성길에게 진짜 죽음이 함께 하고 있는 셈이다. 모두가 포기한 지혁이다. 오늘도 간병인이 떠나간다. 살고자 하는 사람도 힘겨운 싸움이다. 죽고 싶은 지혁을 돌보는 건 그저 죽음과 마주한 일상이다. 성길은 집에서도 밖에서도 죽음만을 함께 하고 있다. 고요한 집, 적막한 가게. 사실 성길이 더 위험하다. 살아야 할지, 죽어야 할지도 모르겠다.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스튜디오보난자
 
친구 가족의 장례식장, 대규모 상조 회사 관계자가 성길에게 인사를 한다. 장의업계도 생존 경쟁이다. 수십년 장의사로 일해 온 성길의 실력을 알아 본 상조 회사 관계자의 스카우트 제안이다. 성길은 아들을 살리기 위해 또 자신도 살기 위해 무언가 변화가 필요하다. 죽음 앞에 경건해야 할 장의사의 본분을 버려야 한다. 죽음을 돈으로만 따지는 상조 회사의 시선이 불편하다. 하지만 성길은 이제 살고 싶다. 이런 식의 삶은 삶이 아니다. 상조 회사의 시선에 점차 녹아든다. 가난한 고객의 죽음에 종이꽃을 채워 마지막 가는 길의 아련함을 대신해 주려는 성길의 경건함은 상조 회사의 시선에선 오만이고 건방진 독선이다. 성길이 바뀌었다기 보단 성길이 바뀜을 선택한 것이다. 그도 지쳤다. 삶이 지친 것이다.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스튜디오보난자
 
그런 성길 앞에 은숙(유진)과 노을(장재희) 모녀가 나타난다. 성길의 집 앞에 이사를 왔다. 혼자 딸 노을을 키우는 은숙은 대책 없이 밝고 또 대책 없이 긍정적이다. 사연이 있는 듯하다. 그의 얼굴 한쪽에 그려진 흉측한 흉터. 하지만 그건 중요한 게 아니다. 은숙과 노을은 일 순간에 성길과 지혁의 삶을 바꿔 놓는다. 우선 모두가 진저리를 치는 지혁의 간병인을 자처하는 은숙이다. 일자리가 필요헀던 은숙이고, 사람이 필요했던 성길이다. 은숙은 성길의 집에서 지혁을 돌본다. 꽉 막혔고, 세상과 대화를 거부하던 지혁은 점차 은숙의 밝음에 녹아 들어간다. 사실 은숙도 삶을 포기하고 싶던 순간이 있었다. 그 사연은 고통스럽다. 하지만 밑바닥까지 떨어져 본 사람만이 그 밑바닥에 무엇이 있는지 안다. 그래서 은숙은 지혁의 마음을 읽었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알아 본 것이다. 비가 내리는 날은 비가 내려서 좋고, 햇볕이 좋은 날은 그래서 좋았다. 사실 지혁은 누구보다 살고 싶었는데 말이다. 은숙은 그 속마음을 어루만져 줬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청했던 지혁이었다. 그걸 알아 보지 못했던 성길도 자신의 시선이 다른 곳을 보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동네 무료 급식소 사장의 죽음, 그 죽음에 고통스러워하는 노숙자 동료들. 하지만 공무원들과 상조 회사 관계자들의 냉담한 시선. 죽음 조차 값어치로 따지는 세상의 시선은 성길이 스스로 선택했던 시선이었다. 어린 노을이에게 고양이의 죽음 앞에서조차 경건함을 전하고, 삶의 자세를 가르쳐 준 무서운 할아버지는 이제 없다. 성길은 죽기 위해 발악하던 아들 지혁이 이젠 살기 위해 세상을 향해 한 발짝 내 딛는 모습을 통해 스스로도 내 딛는다. 진짜 세상을 향해.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스튜디오보난자
 
종이꽃은 장의사 성길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는 죽은 이들의 그 길을 위해 전하는 인사다. 손으로 곱게 접어 집어 넣는 종이꽃 뭉치는 삶과 죽음에 대한 자세와 예의 그리고 인생에 대한 성찰을 담은 행위다. 상조 회사 직원의 옵션타령에 세상은 그렇다고 곁눈질하고 있다. 지금도 그렇게 곁눈질만 한다. 있는 사람의 죽음과 없는 사람의 죽음은 처음과 끝의 모습이 분명히 달라야 한다고 말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마지막에 그저 땅 속에서 썩어 없어지고 그렇게 돌아가는 덧없는 마침표 일진데 말이다.
 
종이꽃속 모두는 상처를 안고 산다. 성길이 그렇다. 지혁도 그렇다. 은숙과 노을 모녀도 그렇다. 무료 급식소 사장조차 그랬다. 그들은 모두가 상처를 안고 산다. 공교롭게도 상처를 안고 사는 그들만 세상의 상처를 바라본다. 밑바닥으로 떨어져 본 경험만이 그 밑바닥에 무언가 존재하는지 알 수 있단 은숙의 말이 그랬다. 그들은 상처를 안고 아파했고, 또 아프기 때문에 안다. 그렇지 못한 다른 그들은 그걸 모른다. 그들이 안다면 얼마나 좋을까. 세상은 조금 더 좋은 색깔일까. 세상은 조금 더 밝은 내일이 될까. 세상은 조금 더 포근한 바람처럼 모두를 감싸고 있을까.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스튜디오보난자
 
비가 오는 날은 비가 와서 좋고, 햇볕이 비추는 날은 햇볕이 따사로워서 좋은 법이다. 일상은 그렇게 모이고 또 모여서 하루가 되고, 하루는 모이고 또 모여서 삶이 된다. 그 삶은 그렇게 쌓이고
쌓여서 죽음이 된다. 우리 모두가 결코 거부할 수 없는 처음이고 과정이며 끝이다. 모두가 같은 길을 걷게 될 뿐인데 말이다.
 
영화 '종이꽃' 스틸. 사진/(주)스튜디오보난자
 
종이꽃은 그렇게 조용하고 잔잔하지만 우리 가슴에 던져진 돌멩이 하나가 만들어 낸 출렁임을 남긴다. 오늘이 소중했으니, 내일도 소중할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날도. ‘종이꽃한 송이가 그 소중함의 향기를 담아 우리에게 다가올 삶의 기쁨을 전한다. 오는 22일 개봉.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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