펄펄 끓는 하드록으로 관통한 한국사회
“음악인들 거울 같은 존재…있는 그대로 현실 반영하는 게 할 일”
"70~90년대 록 역사 음악적 뿌리로"…신중현 아들 신윤철, 기타 연주 도움
2020-06-04 00:00:00 2020-06-04 00:00:00
지난달 27일 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 건물 지층에서 밴드 ABTB의 일부 멤버들을 만났다. 왼쪽부터 박근홍(보컬), 강대희(드러머), 장혁조(베이스). 뒤로는 사운드가든 리드 보컬 크리스코넬의 흑백 사진이 걸려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인터뷰)ABT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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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관악구 신림동의 한 주택 건물 지층은 때때로 가상의 ‘득음(得音) 폭포’로 변한다. 물줄기 소리만 없다 뿐이지 거센 한국어가 방구석 사방에 내리 꽂힌다. 흡사 영화 ‘서편제’를 보는 듯한 절경. 주택은 위치도 산중턱에 홀로 떨어져 있다. 창문만 닫는다면 이보다 근사한 방음 공간이 없다.
수직 폭포수 같은 사운드에 각진 자음들이 탄알처럼 후드득 쏟아진다. 명창의 득음이나 귀신 기운이 한껏 서린 것 같은 한국적 록의 탄생. 
지난달 27일 밴드 ABTB의 일부 멤버들[박근홍(보컬), 강대희(드러머), 장혁조(베이스)]과 2집 ‘daydream’의 기초공사를 했다는 이 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보컬 박근홍의 실제 자택이자 제 2의 스튜디오. 실제 녹음 스튜디오에 입성 전, 그러니까 ‘가녹음’은 거의 이 곳에서 진행된 편이다.
2014년 세 사람은 ‘도원결의’ 하듯 ABTB를 결성했다. “전대미문 하드록 사운드를 해보자”는 다짐을 가슴 깊이 새겼다. 게이트 플라워즈 출신의 박근홍, 한음파 출신의 장혁조, 쿠바와 썬스트록 출신의 강대희는 당시 홍대를 누비던 음악의 고수들. 셋은 결성당시 70년대 하드록부터 80년대 메탈, 90년대 그런지로 이어지는 록 역사 자체를 자신들의 음악적 뿌리로 삼기로 했다. 뒤늦게 비슷한 취향의 96년생 기타리스트 두 명(황린, 곽상규)이 들어오면서 지금의 진영이 갖춰졌다.
지난달 3년 만에 낸 정규 2집에서 음악 접근법은 더 거대해졌다. 멤버들은 마치 소설 작가나 영화감독이 돼 10개의 곡 곳곳을 누빈다. 핑크 플로이드나 드림 시어터 같은 콘셉트 음반 형식의 작법을 도입했다. 대형 시놉시스, 시나리오를 짜고 어울리는 가사를 입히는 방식. 수록곡 전체는 “2016년부터 지금까지의 변화무쌍한 한국사회”를 관통한다.
첫 곡 ‘Nightmare’부터 앨범은 펄떡이며 광화문 대로변 한복판으로 향한다. 곡의 시적 화자는 최인훈 소설 ‘광장’의 주인공 같은 이다. 버스에 앉은 화자는 모세의 홍해처럼 좌우로 갈린 정치세력을 보고 염증을 느낀다.
7분48초의 압도적 길이의 이 대곡은 기승전결식으로 전개된다. 의외로 다소 느린 템포, 부드러운 멜로디가 주를 이루는 초중반부를 넘어서면 절규와 매서운 드럼 난타, 소용돌이 같은 기타 리프가 맹렬히 질주한다. 기타 두 대가 허공을 휘감는 듯한 리프를 주고받는 약 3분여간의 후주에 이르면 시적 화자는 ‘백일몽’으로 침잠한다.
“메타적 관점에서 이 시대를 보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떤 쪽을 선택하라는 강요를 받고 있진 않나. 왜 선택해야만 하나. 중립적 가치는 왜 인정받지 못하나. 그런 것들에 관한 질문입니다.”
백일몽에 빠진 화자는 우리 시대상이 아른거리는 캐릭터들을 마주한다. ‘세상은 바뀌지 않으니 체념하라’는 보수주의 꼰대(‘My people’), 소셜미디어(SNS) 상에서 세치 혀를 놀리는 지식인(‘인정투쟁’).
이들은 “음악은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반영일 뿐,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며 “거울처럼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반영하는 게 우리 음악인들이 할 일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19 사태 직전 작업이 완료돼 이를 담지 못한 것은 아쉽다”고도 했다.
힙합과 댄스, 전자음악이 득세하는 이 시대에 흔히 하드록은 저물었다고들 한다. 하지만 이들은 이러한 상황을 역으로 이용, 대중과 가사로 호흡한다. 시대를 거울처럼 담아낸 노랫말들은 사운드를 든든히 받쳐주는 제 2의 악기, 일종의 공감장치다.
 곡 ‘daydream’의 2분여 도입부는 신중현의 아들인 기타리스트 신윤철이 도움을 보탰다. “우리나라에서 ‘아름다운 기타’를 치는 사람 중 최고라고 생각했습니다. 솔로 같으면서도 백킹 같은 오묘하고 아름다운 멜로디 라인을 보내주셔서 감사했습니다.”(대희)
파열음, 된소리, 거센소리가 파편처럼 튀는 한국어 가사는 ABTB 음악 만의 묘미다. 여기에 넝쿨처럼 얽히고설킨 날 것의 사운드는 오와 열을 맞춘 오늘날 수많은 공장식 음악들과 차별화를 이룬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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