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신병남 기자]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 한 주요 은행의 요구불예금이 한 달 사이 15조원 증가했다. 요구불예금은 대기자금 성격을 지닌 금융상품으로, 언제든 인출이 가능해 사실상 현금으로 분류된다. 코로나19 재확산과 글로벌 경기 불확실성 확대로 증시가 힘이 빠지고 부동산 시장 규제 강화로 관망세가 짙어지면서 개인들의 투자가 주춤했고, 기업들도 현금 보유 성향이 강해졌다는 분석이다. '빚투(빚내서 투자)'로 급증하던 개인 신용대출 수요도 꺾였다.
6일 국민·신한·하나·우리·농협 등 5대 은행의 지난달 요구불예금 잔액(MMDA 제외)은 533조4096억원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14조9370억원 증가했다. 이들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올 들어서만 90조2594억원 늘어나 지난해 같은 기간 증가치(24조8167억원)의 3.6배를 기록했다.
5대 은행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지난 6월에만 23조1256억원 증가했으나, 7월 9조9449억원이 빠졌다. 이후 8월 13조7254억원, 9월 14조9370억원으로 연이어 상승했다. 7월 하락에는 대형 공모주 이슈 등과 맞물려 연초와 같이 개인들의 증시에 대한 관심이 증가한 영향으로 풀이된다. 7월 개인들이 순매수한 해외 주식과 채권만 4조6000억원 수준으로 파악됐다.
그러다 8월 중순 이후 광화문발 코로나 확진자가 대거 발생하고, 사회적 거리두기가 강화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향후 경기를 우려하는 기업들의 시각도 늘어, 전달 한국은행이 발표한 '9월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조사에 따르면 기업들의 체감 경기는 9월부터 하향 전환했다. 이 기간 코스피가 주춤하고, 거래량도 덩달아 감소했다. 금융권에선 활황이던 증시가 8월 중순부터 조정국면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
3월부터 빠지기 시작한 정기예금은 이때부터 다시 늘고 있다. 5대 은행의 정기예금 잔액은 8월 9547억원, 9월 7조1762억원 증가하면서 두 달 연속 상승했다. 0%대 정기예금 상황을 감안했을 때 은행권에선 개인들은 요구불예금으로, 기업은 요구불예금과 정기예금으로 돈을 쌓는 것으로 본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개인보다는 기업의 정기예금 수요가 늘어나는 추세로 보인다"면서 "다만 분기 말 결제성자금 증가를 대비해 요구불예금이 증가하는 경향도 감안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늘어난 불안심리는 개인신용대출 잔액 변화로도 나타났다. 4조원으로 사상 최대 증가 폭을 보였던 개인신용대출 잔액은 지난달 반토막이 났다. 5대 은행의 잔액은 126조3868억원으로 전월 대비 2조1121억원 늘었다. 이는 급증세를 우려해 금융당국과 은행권이 지난달 말부터 한도 축소, 금리 인상 등 대책을 마련한 영향도 있다. 저금리로 낮아진 금리가 빚투·'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매매' 등을 조장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실제 지난달 농협은행이 대출 우대금리 폭을 줄였고, 우리은행은 최고 우대금리를 낮추면서 대출 금리를 높였다. 국민은행은 우대금리 축소와 신용대출 최대한도를 줄였다. 그럼에도 6월과 7월의 신용대출 잔액 증가폭이 각각 2조8374억원, 2조6810억원임을 감안하면 여전히 수요가 적지 않는 분석이다.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감소세가 줄어들긴 했으나 정책에 따른 유의미한 감소라고 말하기에는 시기가 이를 것"이라면서 "투자·부동산 매매 수요 외에도 전세자금 상승에 따른 대출 증가 등 신용대출 증가 요인을 면밀히 볼 필요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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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병남 기자 fellsick@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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