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먼 길에 두손 가득 짐은 필요없다
입력 : 2020-08-13 15:07:32 수정 : 2020-08-13 15:07:32
국내 제약업계 대표적 거성 중 하나로 꼽히던 임성기 전 한미약품그룹 회장이 지난 2일 별세했다. 작은 약국에서 시작해 연 매출 1조원이 넘는 국내 대표 제약사를 키워낸 제약업계 큰 별의 타계에 업계 안팎에서 명복을 비는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임 전 회장은 공격적인 R&D 투자에 각별히 공을 들인 인물이다. 매년 업계에서 최상위권에 해당하는 매출액 대비 R&D 투자를 집행해왔고, 이는 국산 파이프라인의 대형 기술수출 시대 포문을 연 혁신의 원동력으로 작용했다. 
 
하지만 지난 13일 한미약품그룹이 신임 회장으로 송영숙 고문을 추대한 것은 혁신과 다소 거리가 있어보인다. 송 여사는 임 전 회장의 부인이다. 지난 2017년부터 한미약품 고문(CSR 담당)을 맡아왔고, 임 전 회장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며 한미약품그룹 성장에 조용히 공헌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적합성에 대해선 의문 부호가 붙는다. 혁신을 지향하는 기업의 새 시대를 이끌 수장 보다는 다음 세대로의 부드러운 승계를 위한 조력자로 해석된다. 
 
한미약품그룹은 현재 소유와 경영의 표면적 분리상태다. 핵심계열사인 한미약품의 경영은 전문경영인인 우종수·권세창 대표이사 사장이 담당하고 있다. 하지만 한미약품의 최대주주인 지주사 한미사이언스 지분의 절반 가량을 오너일가가 보유하고 있고, 임 전 회장의 자녀들이 한미사이언스, 한미약품의 사장, 부사장직을 유지하고 있다. 사실상 경영과 소유가 분리됐다고 보기 어려운 상태다. 
 
소유·경영 동시 체제가 반드시 단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1개의 파이프라인 개발에 최소 10년 이상, 1조원 이상의 투자가 필요한 제약업계 특성상 기업 지배권을 쥔 경영자가 신속하고 과감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한미약품의 이번 회장 선임 역시 이 같은 장점을 살리기 위한 것으로 풀이도 가능하다. 
 
다만 한동안 뜸했던 한미약품에 비해 최근 잇따른 대형 기술수출을 성사시키며 신흥 기술수출 명가로 떠오른 유한양행의 사례를 참고할 필요는 있어보인다. 유한양행은 창업주 별세 이후 유한재단과 유한학원을 통해 오너 일가가 지배권을 놓지 않으면서도 이사장을 통해 경영을 완전히 분리시킨 구조를 구축했다. 이후 유연한 오픈이노베이션을 통해 혁신적인 성과를 연달아 도출하고 있다. 오너 중심 리더십을 통한 성과 만이 해답은 아니라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소유를 기반으로 행할 수 있는 것들은 많고, 결코 부정적인 요소라 보기 어렵다. 하지만 불행히도 국내에서 개인의 기업 소유는 독점의 형태로 귀결되기 쉽다. 그리고 독점은 다양한 부작용을 낳아 왔다. 이는 전통 재벌기업들의 숱한 승계과정 속 나타난 부정적 사례들에서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 한미약품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비록 최근 몇 건의 기술수출 품목이 반환되며 다소 빛이 바랐지만, 임 전 회장 별세 이후 약 일주일만에 과거 반환된 파이프라인이 재수출에 성공하며 혁신을 핵심 가치로 삼았던 고인의 판단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때문에 그 어느 때보다 혁신을 통한 또 한번의 도약이 절실한 시기다. 혁신으로 향하는 길은 멀다. 먼 길을 굳이 소유와 경영 모두 움켜쥐고 갈 필요는 없다.
 
산업 2부 정기종 기자 hareggu@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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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기종

궁금한게 많아, 알리고픈 것도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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