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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도체 공장 근무하다 혈액암 사망…법원 "업무상 재해"
법원 "다른 작업에서 발생한 유해물질 노출 가능성…발병에 충분한 시간"
2020-06-07 06:00:00 2020-06-07 06:00:00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반도체 관련 부품 업체에서 근무하다가 혈액암에 걸려 숨진 노동자에 대해 법원이 산업재해를 인정하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다.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재판장 유환우)는 반도체 부품업체에서 일하다가 혈액암으로 숨진 A씨 유족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취소해달라"면서 낸 소송에서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산재 유가족, 재난·안전사고 피해 가족 공동 기자회견'에서 삼성반도체 백혈병 사망자 고 황유미의 아버지 황상기씨가 발언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2011년 3월부터 반도체 부품업체에서 일한 A씨는 2014년 8월 혈액암의 일종인 '비호지킨림프종' 진단을 받았다. 이후 곧바로 수술을 받았으나 보름 만인 그 해 9월 사망했다. A씨는 평소 흡연과 음주를 하지 않았고 건강에도 이상이 없었다. A씨 유족은 이듬해인 10월 근로복지공단에 유족 급여 및 장의비 지급을 청구했다. 근로복지공단은 A씨가 담당한 펀칭 공정이 화학물질을 취급하지 않았고, 인근 공정에서 사용하는 화학물질에 노출됐더라도 기간이 짧고 역학적 근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유족급여 및 장의비 부지급 처분을 했다.
 
유족은 "A씨가 사업장에서 펀칭 공정 업무만을 수행하지 않았고 2015년 작업환경이 달라졌음에도 역학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면서 "클린룸 공조시스템에 의해 전체에서 나오는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됐고 2교대 근무 및 연장근무 등을 지속적으로 수행해 과로했다"면서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A씨는 사업장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지속적으로 노출돼 병이 발병했고 병이 악화돼 사망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면서 "A씨의 사망과 업무 사이에 상당한 인과관계가 있다"고 판단했다. A씨가 사망한 지 6년 만에 내려진 판결이었다.
 
재판부는 "A씨가 근무한 펀칭공정은 이전 공정에서 사용하거나 발생하는 유해물질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면서 "각 공정의 작업 장소들은 층별로 하나의 공조시스템을 사용하고 있어 클린룸 특성상 다른 작업 장소에서 발생한 유해물질에 함께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이어 "3년5개월 근무하는 동안 계속 교대근무를 하면서 1일 최대 14.5시간 근무를 지속했으므로 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된 기간이 발병하기에 짧다고 단정하기 어렵다"면서 "A씨는 근무 당시 개인보호구가 지급되지 않아 노출수준이 높았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법원은 역학조사 결과가 A씨 근무 당시 작업환경의 유해성 여부를 판단하기에 한계가 있다고도 했다. 재판부는 "역학조사와 작업환경측정 결과에서 확인되는 유해화학물질 수치는 허용 기준 범위 안에 있으나, 이 기준은 단일물질에 노출됨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여러 물질에 복합적으로 노출되거나 주야간 교대근무 등 유해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할 경우는 반영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역학조사 시에는 펀칭 공정이 1층에서 2층으로 변경돼 A씨가 근무할 당시의 유해 인자에 대해 판단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고 덧붙였다.
 
노동자 인권단체 '반올림' 측은 "특정 화학물질과 특정 질환의 관련성, 복합적인 유해요인 노출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 등은 아직 과학적 지식이 부족해 명확한 답을 내릴 수 없는 문제"라면서 "우리 사회는 피해자(유족)에게 엄격한 입증을 요구하고 피해자가 입증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산재를 승인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근로복지공단은 산재 판단 과정에서 적용되는 것은 과학적 인과 관계가 아니라 법적, 규범적 인과 관계라는 것을 원칙으로 확인해주길 바란다"고 촉구했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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