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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조성진 “코로나19 사태, 음악 삶에 필요한 존재임 느꼈다”
지난달 28일 ‘세계 피아노의 날’ 집콕 라이브…“베를린 생활 좋은 기회 많아”
“클래식 대중화 아닌 대중이 클래식화 돼야…하루 4∼5시간 연습 여전”
여행, 와인 컬렉팅, 맛집 탐방 즐겨…무대 오를 땐 생각 비운다
2020-04-17 00:00:00 2020-04-17 00:00:00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뒤 피아니스트 조성진(27)의 5년은 쏜살같았다. 도이치 그라모폰(DG)과 5년 전속 계약, 뉴욕 카네기홀 데뷔, 베를린 필하모닉 협연…. 검은 머리를 찰랑이며 세계를 놀라게 한 이 앳된 청년도 내년이면 20대 후반이다.
 
오는 5월8일 도이치그라모폰에서 네 번째 앨범 ‘The Wanderer(방랑자)’를 발표한다. 19세기 유행한 낭만주의 시대의 주 키워드 ‘방랑’을 앞세워 비슷한 시기 작곡된 곡들을 엮었다. 슈베르트 ‘방랑자 환상곡’과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S.178’, 베르크 ‘피아노 소나타 Op.1’. 지금까지 쇼팽, 드뷔시, 모차르트 등 한 작곡가의 작품만 녹음해오던 것과 비교하면 큰 변화다. [뉴스토마토 14일자 기사 참조, (인터뷰)조성진 “30분 곡 한 번에 녹음…슈베르트 상상력에 초점”]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13일 서면으로 만난 그는 슈베르트를 보며 끝없는 자극을 받고 있었다. 슈베르트가 ‘방랑자 환상곡’ 모티프를 19세에 떠올렸다면 조성진은 이 나이 때 세계적 피아니스트로서의 ‘방랑길’에 올랐다. 파리 유학을 시작으로 프랑스, 한국을 오갔다. ‘어디가 집인지’ 모를 정도로….
 
2017년부터는 독일 베를린에 정착해 살고 있다. 베를린의 이점이 뭐냐는 질문에 그는 “기회가 많은 도시”라고 답했다.
 
“외국인부터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기회가 많아요. 꼭 음악만이 아니더라도 예술에 대해 열려 있고요. 다른 독일 도시와 달리 활기찬 느낌도 있고. 제 음악적인 것에 직접적 영향을 끼치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여기 오면 편한 느낌은 있어요.”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코로나19로 전 세계 공연계가 얼어붙은 상황. 조성진 역시 지난달 28일 ‘세계 피아노의 날’을 맞아 무관중 생중계 공연으로 관객들과 만났다. 독일 바리톤 마티아스 괴르네와 슈베르트 가곡으로 합을 맞췄다. 베를린 집에서 홀로 피아노 독주를 펼치는 장면도 따로 방영됐다. 그는 “괴르네가 (온라인 공연) 아이디어를 줘서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베를린에 살다보면 이런 좋은 기회가 온다. 그 역시 커리어 30년 만에 이런 경우(코로나19에 따른 공연 중단 사태)가 처음이라더라”라고 했다.
 
조성진이 자신의 집에서 연주한 걸 보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는 “처음에는 어색했지만 오프라인 콘서트처럼 에너지를 느꼈다”며 “(집) 피아노를 조율한지 오래돼 소리가 조금 아쉬웠다”는 아쉬움도 털어놨다.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힘든 시기 음악의 역할을 묻자 “음악은 삶에 필요한 존재구나 느꼈다”고 했다.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늘면서 음악을 많이 들었어요. 마땅히 할 게 없거나, 위로가 필요할 때나, 즐기려고 할 때나, 우리가 살아가는 데 음악은 꼭 필요하죠. 이번 사태 때문에 음악의 중요성을 느끼게 됐어요.”
 
힘든 시기를 겪고 있을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음악으로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 같다”면서도 최근 에밀 길레스, 브론프만 등의 연주자를 거론했다. “브론프만과는 작년 말에 처음 만났어요. 인간적으로도 좋아하게 됐죠. 지난해 말 뉴욕필과 협연한 베토벤 4번이 너무 좋아서 라이브를 듣고 있어요.”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조성진은 언뜻 클래식 대중화를 이끄는 연주자처럼 보이지만 “클래식 대중화를 위해 노력 하고 있지 않다”는 의견을 피력해온 것으로도 유명하다. 줄곧 “클래식이 대중화 되면 본질이 흐려진다. 대중이 클래식화 돼야 한다”고 말해왔다.
 
“사람들이 연주회를 찾아주고 음반을 들어주고 음악을 알게 되면 클래식 연주자로서 제겐 그것만큼 기쁜 일이 없을 거예요. 하지만 클래식 음악이나 고전 음악은 팝이나 케이팝처럼 많은 사람들이 즐기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어요. 바로크 음악부터 현대음악까지 다 들어보고 취향대로 대중들이 선택하는 흐름이 인다면, 그것이 대중이 클래식화되는 거예요. 많은 크로스오버 음악가들도 존중하지만, 더 많은 사람들이 말러, 스트라빈스키, 모차르트, 베토벤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면 좋겠어요.”
 
예술가로서 반드시 포기할 수 없는 것으로는 ‘쉬는 시간’을 꼽았다. 음악을 하려면 음악과의 적당한 거리감이 필요하며 그것이 다시 음악에 “프레시(Fresh)한 느낌”을 주기 때문이란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로도 무대에서의 만족스런 연주, 여행과 함께 휴식시간을 꼽았다.
 
조성진. 사진/Christoph Köstlin, DG
 
청년 조성진은 여느 20대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면이 있었다.
 
그는 와인 시음과 컬렉팅, 맛집 탐방, 친구들과 즐기는 시간을 좋아한다면서도 그 외에 특별한 취미는 없다고 했다.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연주하고 여행하다 보면 물리적 시간이 없어서란다.
 
그럼에도 하루 피아노 연습시간은 5시간을 넘기지 않는다는 원칙을 고수한다. 어릴 때부터 이 습관을 견지해온 그는 “5시간을 치면 녹초가 된다”며 “꾸준히 4시간안에 효과적으로 하려한다”고 했다. 최근에는 손과 건강관리를 위해 “추울 때 장갑끼는 버릇, 스트레칭도 하고 잠도 많이 잔다” 했다.
 
지난해 그는 경남 통영의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깜짝 지휘자로 데뷔하기도 했다. 피아노 의자에 앉는 대신 그는 이날 선 채로 손을 들어 오케스트라 음악을 시작했다. 향후 지휘자로서의 꿈은 어떻게 되냐는 질문에 그는 “피아노 콘체르토의 경우 제안이 들어온다면 2~3년 안에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며 “하지만 아직 지휘자가 되겠다는 생각을 깊이 해본 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덧붙여 40~50대에는 “건강했으면 좋겠고, 살아서 피아노를 계속 칠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부상 당하지 않고 꾸준히 가려면 운도 필요한 것 같다. 그렇게 되기를 바라면서 노력할 것”이라 했다.
 
조성진의 삶의 모토는 ‘생각을 너무 많이 하지 말자’다. 역설적으로 평소 생각을 너무 많이 하기 때문이란다. 중요한 선택이나 결정을 할 땐 최대한 머리를 비우려 한다. 음반사, 매니지먼트, 연주곡 매 순간 결정 때 그 방편이 결과가 더 좋았다.
 
무대에 오를 때도 마찬가지다. 많은 생각을 비운다. “음악이 주저하는 느낌이 들거든요. 자신감 있는 음악이 되려면 생각과 마음을 많이 비워야 하죠. 자신과 얘기하듯 하는 게 중요합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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