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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으면 뭐하나...디지털 성범죄 '솜방망이 처벌' 논란
명확한 적용 법령 없고 양형 기준 마련돼 있지 않아
대법원 양형위, 다음달 20일 관련 양형기준 논의 예정
2020-03-25 16:55:12 2020-03-25 16:55:12
[뉴스토마토 왕해나 기자] 메신저 텔레그램에서 여성들의 성착취물을 제작·유포한 조주빈으로 인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처벌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동안 디지털 성범죄 처벌의 근거가 명확하지 않았고 양형기준도 마련되지 않아 '솜방망이 처벌'이 이어지는 바람에 더 큰 범죄가 일어났다는 지적이 나오면서다.
 
서울중앙지법 형사13단독 박영수 판사는 25일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 중 불법촬영에 관한 3건에 대한 선고를 연이어 내렸다. A씨는 피해자들의 의사에 반해 신체를 촬영한 혐의로 벌금 300만원을, B씨는 29회에 걸쳐 불법촬영을 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C씨는 피해자의 신체를 18회 촬영한 혐의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3명 모두 재범이었다. 재판장은 "요즘 텔레그램 N번방 사건, 약간 다르긴 하지만 몰래카메라와 같은 사건들을 지속적으로 엄격하게 처벌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가 높다"면서 "이번에 한해서는 집행유예를 선고하지만 앞으로는 점점 더 엄히 처벌하게 되는 만큼 재범하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종로경찰서 앞에서 조주빈 및 텔레그램 성착취자의 강력처벌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손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뉴시스
 
법적 처벌 기준 자체는 낮지 않다. 현행법상 '카메라 등을 이용한 촬영죄'에 대해서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 벌금형이 내려진다. 하지만 여성변호사회에 따르면 1심 기준 징역형 선고는 5%에 그친다. '아동·청소년 이용 음란물 제작·수입 또는 수출' 역시 무기징역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해지는 중한 범죄다. 하지만 여성가족부의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발생추세와 동향분석 결과'를 보면 20%만이 징역형을 선고받는다. 이마저도 최저형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는 평균 2년형이 선고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텔레그램 음란동영상 사건과 유사한 대법원 판례를 살펴보면 2018년 24세 대학생이었던 D씨는 고등학생에게 카카오톡 메신저를 이용해 피해자에게 돈을 주겠다고 말한 피해자의 스마트폰 카메라로 피해자를 대상으로 한 음란행위 장면을 촬영하도록 지시, 전송받았다. D씨는 동영상 파일을 저장하거나 유포하지 않았다면서 아동·청소년이용음란물의 제작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주장했지만 법원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대법원은 2년6개월의 원심을 확정했다.
 
솜방망이 처벌이라는 비판이 지속되는 이유는 디지털 성범죄에 적용할 만한 명확한 법령이 없고 그마저도 이곳저곳에 흩어져 있기 때문이다. 카메라촬영과 유포의 경우 성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14조와 13조(통신매체를 이용한 음란행위), 아동과 관련된 범죄는 아동·청소년성보호에 관한 법률, 음란물 유포는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에 근거해 각각 처벌된다. 디지털 성범죄 전문가 김현아 변호사는 "디지털 성범죄의 경우 처벌 근거 법령이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라면서 "디지털 성범죄에 특화될 수 있고 특수성을 반영할 수 있는 새로운 법체계가 만들어져야 한다. 기존 법을 계속해서 수정·개정만 해서는 발달하는 인터넷 사회를 따라갈 수 없다"고 말했다.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 기준이 정립돼 있지 않다는 점도 또 다른 이유다. 살인과 뇌물, 성범죄, 횡령·배임 등 20개 중요 범죄에 대해서는 형량의 상한이나 하한이 제시돼 있어 판사들이 개별 범죄에 대해 어느 정도의 형량을 부과할지 참고할 수 있다. 하지만 디지털 성범죄에 대해서는 그 기준이 없어 "피고인이 반성한다"거나 "피해자와 합의했다"는 이유로 가벼운 형량이 구형·선고되는 일이 많았다. 이에 관련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다음달 20일 101차 양형위원회를 열어 디지털 성범죄에 대한 양형기준을 논의할 계획이다. 양형위는 새 양형기준의 명칭과 형량의 감경·가중 사유, 아동·청소년 대상 음란물 범죄는 별도의 기준을 설정할 것인지 등 여부를 놓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대법원 관계자는 "양형 기준을 정함으로써 형사재판 전체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라면서 "디지털 성범죄와 관련해서도 기준을 높인다면 처벌 강화 효과가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텔레그램에 '박사방'을 열고 미성년자를 포함한 여성들을 대상으로 성착취 범죄를 저지른 조주빈이 검찰로 송치되고 있다. 사진/뉴시스
 
왕해나 기자 haena0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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