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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마스크의 흑마법
2020-03-13 06:00:00 2020-03-13 06:00:00
마스크 5부제가 시작되기 며칠 전 병원에서 처방된 약을 조제 받기 위해 약국에 들렀다. 10여분을 기다리는 사이 예닐곱명이 들어왔다 나갔다. 약국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마스크가 있는지를 물었다. 직원은 오늘 물량이 모두 떨어졌고 내일 들어오는 데 몇시에 올지는 알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다. 약국 문에는 '마스크 품절'이란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조제약을 받아 나오는 길에 옆 약국을 보니 마스크를 사려고 20여명 정도가 줄을 서 있었다. 약국 안에서 한 어르신이 약사를 향해 화를 내는 듯한 모습이 보였다. 말이 정확히 들리지는 않았지만 마스크 구매와 관련된 불만을 쏟아내는 것 같았다.
 
책임이 없는 일로 거친 말을 들어야 하는 약사의 억울함도 코로나 19로부터 자신을 지키고 싶은 어르신의 간절함도 느껴졌다.
 
코로나19 사태 초기부터 마스크는 건강을 지키기 위한 필수품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수요가 늘면서 구매가 점점 어려워지기는 했지만 불과 몇 주 전까지만 해도 지금 같은 수준은 아니었다.
 
'마스크 대란'은 지난달 하순 이후 대구를 중심으로 확진자가 급증하고 특정 장소나 지역에서 마스크를 사려는 인파가 장사진을 이룬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통해 빠르게 확산하면서 벌어졌다.
 
한층 자극된 코로나19에 대한 공포와 보호 본능이 마스크 수요를 폭발시켰기 때문이다. 마스크 구매 욕구 폭증은 마스크 부족을 부추기고 다시 코로나 19에 대한 공포를 확산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형성했다.
 
정부가 마스크 5부제 카드를 꺼냈고 시민사회에서 자발적인 마스크 양보 운동도 벌어지고 있지만 공급이 절대 부족한 구조를 깨기는 힘이 부족하다. 
 
마스크는 '귀한 몸'으로 자리매김하면서 불만과 불편을 야기하는 대상이 됐다. 구매자는 코로나19가 두려워도 감염 노출 위험을 감수하면서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고 그나마도 헛걸음하면 다른 약국을 찾아 떠돌아야 한다.
 
약국은 마스크 판매 때문에 다른 일을 처리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마스크 제조업체들은 야근이 일상화됐다. 군인과 사회복무요원들은 부족한 일손을 메우기 위해 본래의 일과는 거리가 먼 마스크 공장과 약국에 가서 일해야 한다.
 
이렇게 쌓인 불편과 불만은 사회 구성원 모두를 피곤하고 예민하게 만들고 있다. 불안과 피로, 날카로움은 보통 내가 아닌 누군가에 대한 비난과 비판으로 터져 나온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는 정부가 주로 그 대상이 된다. 감염병과의 싸움은 아무리 최선의 노력을 해도 항상 부족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어쩔 수 없다. 아니라면 모두가 어려운 틈에 막대한 이득을 챙기는 누군가가 있을 것이란 상상으로라도 풀어내려 한다. 구체화된 상상은 의혹이란 꼬리표를 단 음모론으로 퍼진다.
 
마스크와 관련해서는 유통업체가 폭리를 취한다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조금만 생각해도 조잡하고 허술해 사실이라고 보기 어려운 얘기다. 음모론의 사실 여부를 떠나 더욱 중요한 것은 이런 얘기나 정부가 무조건 잘못했다는 식의 생각에 빠지는 게 순간적인 감정의 해방구가 될지 몰라도 결국은 스트레스만 더 쌓이게 할 뿐 실제로는 아무 도움도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직 공개적으로 말할 단계는 아니지만 독감일 뿐이다. 경계심은 유지하되 공포만 이겨내면 아무 문제 없다."
 
신종플루가 한창 유행할 당시 한 의료진에게 들은 말이다. 과도한 공포와 불필요한 두려움에 자신을 더 고단하게 하는 우를 범하지 말자.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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