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승원 기자] 코로나19 사태로 얼어붙은 투자심리에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가 불발되면서 유가가 급락을 거듭하고 있다. 그럼에도 국내 주유소에서 판매하는 휘발유값은 과거와 마찬가지로 국제유가의 하락 속도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10일 한국석유공사 등에 따르면 국제유가는 9일(현지 시각) 20% 이상의 대폭락을 기록했다. 이날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4월 인도분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는 전 거래일보다 배럴당 24.6%(10.15달러) 하락한 31.13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장중엔 27% 폭락한 배럴당 30.00달러까지 밀렸다. 런던 ICE 선물거래소의 브렌트유 선물은 장중 30% 폭락한 배럴당 31.02달러까지 주저앉았다. 이는 각각 1991년 걸프전 이후 최대 일일 낙폭이다.
전국 기름값이 5주째 하락세를 이어가는 1일 서울 한 주유소에서 직원들이 차량에 주유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하지만 국제유가의 대폭락이 정작 국내 주유소에서는 와닿지 않는다. 한국석유공사 오피넷에 따르면 10일 기준 국내 휘발유값은 1506원으로 올해 1월3일(1571원) 이후 하락세이긴 하지만 하락 폭이 국제유가의 하락 폭과 비교했을 때 훨씬 작다. 1월3일부터 3월9일까지 WTI는 배럴당 63.05달러에서 31.13달러로 50.62% 하락했지만 같은 기간 동안 국내 휘발유값은 고작 4.13%(65원) 떨어졌다.
반면 과거 국제유가의 '오름세'는 국내 휘발유 가격에 그 이상으로 반영됐다. 지난해 3~5월, 북아프리카의 산유국인 리비아의 내전이 장기화됨과 동시에 OPEC의 감산정책 기조의 유지로 국제유가가 2개월가량 급등했다. 당시 (3월5일~5월2일) WTI는 배럴당 가격이 9.22% 상승했고, 두바이유와 브렌트유도 각각 9.28%·7.73%씩 올랐다. 당시 같은 기간 국내 휘발유 값은 10.08% 상승했다.
조상범 대한석유협회 팀장은 "국제유가의 큰 하락이 주유소 휘발유·경유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가 국내 정유사들이 정하는 휘발유·경유 가격이 실질적으로 국제유가가 아닌 국제석유제품가격에 따라 정해지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원유가 거래되는 것처럼 휘발유와 경유도 거래되는 별도의 시장이 있는 것이다. 아시아 지역을 맡는 휘발유·경유 현물 거래시장은 싱가포르에 있다.
한국이 국제석유제품가격에 따라 휘발유·경유 가격을 정한 것은 1997년 4월 이후다. 이 전까진 정부가 휘발유·경유 가격을 국제유가와 연동해 일방적으로 고지하는 '고시가격 체제'였다. 고시가격 체제는 석유산업의 자유화와 함께 없어지고 당시 선진국들이 주로 택했던 방식인 국제석유제품가격에 따른 휘발유·경유 현물 거래시장을 통해 가격이 정해졌다.
또 국제유가의 하락이 실제 주유소 기름 가격에 그대로 반영되지 않는 이유에는 유류세도 있다. 현재 휘발유 가격의 60% 이상을 차지하는 유류세는 국제유가 하락 시에도 변하지 않고 가격에 포함되기 때문에, 원유 가격이 하락해도 그만큼 주유소 기름값이 하락할 수 없는 것이다. 지난해 5월 국제유가 상승률을 상회했던 국내 휘발유가격 상승도 유류세 환원이 큰 이유였다. 5월 이전 15%까지 낮췄던 유류세가 5월에 8%, 9월에 7% 다시 오르면서 국내 휘발유 가격이 국제유가보다 큰 폭으로 상승했다.
한편 조 팀장은 이번 주요 산유국들의 감산 합의 실패에 따른 국제유가 폭락이 정유사에 미칠 영향에 대해 "1분기 실적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단기간에 유가가 급락하면서 정유사들이 비축해놨던 휘발유·경유의 평가 금액이 낮아지고, 결국 비싸게 샀던 것을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그는 "특히 지금은 코로나19 사태로 석유 수요 자체가 위축됐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불확실성에 휘발유·경유가 팔리지도 않고, 마진마저 하락하는 설상가상의 상황"이라고 말했다.
최승원 기자 cswon8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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