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기도하는 남자', 우리에겐 감당할 시련이 주어지는가
개신교 이면의 담겨 있는 사회적 불합리
입력 : 2020-02-19 19:28:32 수정 : 2020-02-19 19:28:32
[뉴스토마토 신상민 기자]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준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다. 힘든 시기에는 다들 죽을 만큼 힘들다. 하지만 그 시기를 넘어선 뒤 돌이켜 보면 그래도 버틸 만 했다고 생각한다. 신은 모두에게 공평하니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시련을 줄지 모른다. 하지만 사회적 시스템은 사회 구성원들에게 감당할만한 시련을 줄까?
 
영화 기도하는 남자의 외피만 보면 경제난에 허덕이는 개척 교회의 목사 태욱(박혁권 분)의 신념과 현실 사이의 갈등으로 비춰진다. 태욱은 점차 극한으로 내몰리면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기에 이른다. 영화는 신실한 믿음을 가진 태욱이 신념과 현실 사이에서 갈등을 하고 결국 신념보다는 현실을 택하며 변화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더구나 태욱의 감정선을 따라가다 보면 기독교인이라면 불편할 법한 이야기들이 나오기도 한다. 종종 뉴스 사회면에 등장하는 한국 대형 교회의 세습 문제를 기도하는 남자에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개척교회를 운영하는 와중에 장모(남기애 분)의 수술비가 필요해진 태욱은 우연히 동현(김준원 분)을 만나게 된다. 동현은 대형 교회 목사를 아버지로 둔 덕에 말끔하게 차려 입고 고급 차량을 타고 있다. 허나 동현의 행실을 보면 과연 목사가 맞는 걸까라는 의심이 들게 한다.
기도하는 남자 사진/랠리버튼
 
기도하는 남자는 대형 교회를 쫓아가는 성도들의 행태를 보여주기도 한다. 태욱은 지하에 마련된 교회에서 설교를 한다. 그의 앞에는 10명도 되지 않는 성도들이 전부다. 그마저도 이사를 하게 되면서 더 이상 교회에 나오지 못한다고 이야기를 한다. 태욱이 이사를 하게 됐다는 성도를 다시 마주하게 된 곳은 큰 규모로 잘 지어진 동현의 교회 앞이다. 태욱과 그를 떠난 성도는 서로 불편한 만남에 어색해 한다.
 
태욱은 점차 극한에 몰리면서 해서는 안 될 행동까지 하게 된다. 태욱은 신에게 감당 가능한 시련을 준다고 했는데 얼마나 더 감당을 해야 하냐고 울부짖는다. 태욱에게 내려진 시련은 결국 감당 가능한 시련이 아니었다. 영화는 태욱에게 펼쳐진 고난을 태욱 스스로 극복하기 보다는 동현과 같은 세습의 형태로 해결하는 방식을 취한다.
 
기도하는 남자 사진/랠리버튼
 
세습’, 예나 지금이나 가장 빠른 성공의 길이다. 이는 분야를 가리지도 않는다. 직장에서도, 예술 분야에서도, 심지어 기도하는 남자에서 보여준 종교 분야에서도 세습 받은 자와 그렇지 못한 자의 출발 선은 너무나 다르다. 더구나 이러한 세습은 알맹이보다 외형이 더 그럴 듯 하다. 허름하지만 나름 굳건한 믿음 가진 태욱과 겉은 화려하지만 믿음이 없는 동현. 하지만 성도들은 태욱의 마음속 믿음보다는 동현의 화려한 교회 건물에 현혹된다. 그렇기 때문에 선대로부터 쌓아온 영향력을 세습 받지 못한 자가 신념만을 가지고 성공하기란 쉽지 않다. 이러한 사회적 구조는 가지지 못한 자에게 감당 불가능한 시련을 계속해서 내려준다. 결국 태욱처럼 극한으로 몰려 감당할 수 없는 시련에 파멸을 하는 경우가 많다
 
과거와 달리 대다수가 개천에서 용이 난다라는 말을 믿지 않는다. 오히려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고 비꼬기까지 한다. ‘기도하는 남자는 이러한 사회적 인식을 개척교회 목사 태욱의 시점으로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사회에서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부모가 흘린 피 위에 자신의 신념을 세워야만 성공할 수 있는 현실을 보여준다. 그렇기에 영화 말미에 태욱이 산에 올라 구토를 하는 장면이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그렇기 때문일까. 태욱의 헛구역질 소리는 불합리한 사회적 시스템에 대한 감독의 구토처럼 들린다
기도하는 남자 사진/랠리버튼
신상민 기자 lmez0810@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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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상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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