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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석)“음악은 감성 매개, 또 다른 자기 표현”…패션 입는 대중음악 시장
음악 전문가들과 협업하는 온라인 쇼핑몰, ‘음악 플랫폼’으로 진화 중
뮤지션 뮤비부터 티셔츠 제작까지 “대중음악 물성 흐름 반영”
전시공간에 빌리 아일리시 티셔츠 진열하는 음반 유통사
시그니처 향수, 의류 제작하는 밴드들…“또 다른 자기 표현”
2020-02-19 16:33:04 2020-02-19 17:12:52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8비트 게임 같은 색감의 캐릭터들이 넘실댄다. 복실한 머리카락과 늘 물고 다니는 종이팩 음료수, 시크 나른의 표정들…. 화면 스크롤을 내리면 비행 헬멧을 장착한 이 캐릭터들이 우주 공간을 헤쳐간다. 핫도그에 뿌려 먹을 핫소스 찾아 멀리멀리. 맵고 짭조름한 여정에 어찌 음악이 빠질쏘냐. 아방가르드 디스코가 뿅뿅 튀기며 축포를 터뜨린다. 이 복고적인 디자인, 영상 콘텐츠는 한 온라인 쇼핑몰과 밴드 향니가 함께 기획한 최신 뮤직비디오(곡 ‘핫소스’)다.
 
최근 대중음악 시장이 패션 부문과 접점을 늘려가고 있다. 단순 의류 협찬 같은 표면적 개념을 넘어 패션 자체를 ‘음악 중심의 콘텐츠’로 해석, 확장하는 분위기다. 쇼핑업체들은 애니메이션, 뮤직비디오, 티셔츠를 직접 제작하고 심지어 ‘취향 뮤지션’까지 골라준다. 음반 유통사는 패션브랜드까지 론칭해 별도의 오프라인 전시 공간도 마련한다. 트렌드에 민감한 두 부문의 공통성이 취향 중심의 콘텐츠, 새로운 문화 현상을 낳고 있다.
 
온라인 쇼핑몰 29CM와 음악콘텐츠기업 패쓰바이가 최근 밴드 향니, 비주얼아티스트 람다람과 기획한 캐릭터. 사진/29CM·패쓰바이
 
음악 플랫폼으로 진화 중인 쇼핑몰…취향 뮤지션 추천까지
 
“향이의 특징은 복실 복실한 머리카락과 나른해 보이는 눈. 시그니처는 메롱하고 내민 혀입니다.”  
 
귀여운 그림을 설명하는 문구가 한 눈에 들어온다. 밴드 향니의 멤버들을 복고 캐릭터 ‘향이’, ‘준이’로 재해석한 웹 페이지다. 사방으로 걸린 ‘향이’, ‘준이’ 그림이 밴드 향니 음악의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제22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 가창상 등의 이력 소개부터 ‘삐삐밴드와 로리앤더슨을 불러다 댄스음악 터치를 넣은 음악’이라는 평론가 코멘트는 흡사 음악 매거진 같다. 향니가 직접 참여한 인터뷰, 비주얼 아티스트 람다람과의 협업으로 제작된 ‘핫소스’ 뮤직비디오까지 수록돼 있다. 
 
음악콘텐츠기획사 패쓰바이(PATHX)가 온라인쇼핑몰 29CM와 공동으로 진행 중인 이 컬처프로젝트는 기존의 음악, 패션 간 협업 개념을 허문다. 단순 의류 협찬 같은 표면적 개념을 벗어나 실제 음악 전문가, 뮤지션들 참여로 이뤄지고 있다. ‘음악을 중심으로 다양한 콘텐츠를 기획’ 한다는 게 포부다.
 
패쓰바이가 기획한 향니 티셔츠와 로고 스티커 등 굿즈. 사진/29CM·패쓰바이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백현진, 최낙타, 오왠, 불고기디스코…. 지금까지 선택된 뮤지션들 면면을 보면 장르 음악 뮤지션들이 다수다. 페이지는 직접 곡을 쓰고 공연장 라이브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이 뮤지션들의 음악 소개부터 가사, 삶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다루는데 집중한다. 쇼핑몰인 만큼 자체 제작 굿즈도 선보이지만 주 초점은 결국 뮤지션들, 음악에 관한 이야기다. 
 
프로젝트를 진행 중인 김철희 패쓰바이 대표는 “최근 대중음악 시장의 소비는 단순히 듣고 보는 것을 넘어 입고, 쓰는 물성의 영역으로 확장되고 있다”며 “소비자들과 음악을 공유하는 다양한 방식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 장기적으로는 인디뮤지션의 굿즈부터 여러 정보를 소개하는 ‘플랫폼’ 역할을 고민 중”이라고 설명했다.
 
17일 29CM 사이트에 공개된 밴드 불고기 디스코 인터뷰. 사진/29CM·패쓰바이
 
전시장으로 옮겨진 빌리 아일리시 “음악은 감성 매개”
 
음악 중심의 콘텐츠가 패션과 깊게 연결되는 최근의 흐름은 쇼핑몰 외의 영역에서도 출현하고 있다. 
 
최근 해외음반유통사 유니버설뮤직코리아는 수면브랜드 시몬스와 경기도 이천에 ‘HIP-POP: 힙팝’ 전을 열었다. 오는 6월28일까지 세계적인 팝스타들의 패션부터 음악, 메시지를 조망하는 무료 전시회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올해 만 18세 나이로 그래미어워즈 본상 4개(올해의 레코드상, 올해의 노래상, 올해의 앨범, 올해의 신인상)를 싹쓸이한 빌리 아일리시 티셔츠가 반겨준다. 데이비드 보위, 투팍, 에미넴, 드레이크, 위켄드, 할시, 저스틴 비버, 아리아나 그란데, 트로이 시반…. 세계적인 뮤지션들의 앨범 아트워크, 음원, 뮤직비디오도 설치됐다. 
 
유니버설뮤직X시몬스 ‘HIP-POP’ 전시회장 내부. 사진/유니버설뮤직코리아·시몬스
 
전시는 동시대의 팝, 록 음악이 패션, 영상, 철학과 어떻게 상호작용하는지 돌아보고자 기획됐다.
 
이주연 유니버설뮤직 뉴 비즈니스·브랜드 부서 과장은 “오늘날 음악은 패션, 시각이미지와 결합하며 소비자 아이덴티티를 끌어내는 감성적 매개 역할을 하고 있다”며 “티셔츠, 뮤직비디오 같은 콘텐츠는 단순 청취의 경험을 넘어선다. 오감을 활용한 요소로 음악을 더 친밀하게 느끼게끔 했다”고 기획 배경을 설명했다.
 
해외에서는 자신들의 음악 정체성을 잘 드러낼 수 있는 브랜드를 직접 선정, 유명 디자이너와 의류를 직접 기획, 제작하는 흐름도 활발하다.
 
지난해 데뷔 10주년을 맞은 밴드 더엑스엑스(TheXX)는 세계적인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 의류에 본인들의 상징 'X'를 새겨 넣은 바 있다. 밴드의 국내 음반 유통을 담당하는 강앤뮤직 측은 "라프 시몬스가 밴드의 의류제작 뿐 아니라 곡 'I Dare You'의 컨셉 디렉터로 참여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음악이 감성의 매개로써 패션, 시각 이미지를 활용한 구체적 사례다.
 
세계적인 디자이너 라프 시몬스와 협업한 더엑스엑스 멤버 로미 메들리 크로프트 의류. 밴드를 상징하는 X로고 안에 라프시몬스를 상징하는 RS가 새겨져 있다. 사진/강앤뮤직
 
시그니처 향수·옷 제작하는 밴드들 “또 다른 자기 표현”
 
최근 라이브 무대 위주로 활동하는 국내 뮤지션들도 음악관을 더 다양하게 표현하는 용도로 패션을 적극 활용하는 분위기다. 단순 고가의 명품을 협찬 받는 것이 아닌 시그니처 아이템들의 기획, 협업에 직접 나서며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지난 8~9일 서울 블루스퀘어 아이마켓홀에서 열린 밴드 혁오의 공연은 파격적이었다. 인디언 깃털 형상의 헤어피스를 쓰고 무대에 오른 멤버들은 막이 새롭게 오를 때마다 강아지 모형 모자, 주름 잡힌 긴 치마 같은 파격적인 패션 아이템을 올리며 홀 내부를 ‘런웨이’로 만들었다. 
 
아시아 다양성을 포용하는 디자인 브랜드 커미션 NYC의 작품과 세계적 패션 아티스트들(토미히로 코노, 신 무라야마, 에밀리 남)과의 협업. 이날 공연장에서 밴드가 두른 패션은 최근 발표한 새 EP ‘사랑으로(through love)’의 사운드적 파격과도 상당부분 닿아 있었다. 
 
혁오와 함께 호흡을 맞춰 이번 협업을 진행한 김예영 스타일리스트는 “평소 혁오 멤버들이 좋아하는 요소를 결합시켜 이번 무대 의상을 제작했다”며 “지금까지 혁오가 유스 컬쳐를 대변하는 밴드였다면 이제는(이번 앨범부터는) 서서히 그 틀을 깨고 혁오만의 새로운 컬처를 만들어 가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그 변화를 담았다”고 설명했다.
 
디자인 브랜드 커미션 NYC와 무대 의상을 직접 기획한 밴드 혁오. 패션은 최근 발표한 새 EP ‘사랑으로(through love)’의 사운드적 파격과도 상당부분 닿아 있었다. 사진/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매년 연말 즈음 브랜드 콘서트 ‘CHRISTMAS IN NELL’S ROOM’을 여는 밴드 넬은 국내 뮤지션 최초로 공연장에 후각적 요소까지 도입했다. 장내에 들어서면 은은한 로즈향이 풍기고 공연의 기승전결에 따라 폭죽향, 시원한 쿨워터향이 교차한다. 지난해 연말 공연에서는 공연 조향사와 함께 룸 스프레이까지 굿즈로 기획, 제작했다. ‘청각, 시각 뿐 아니라 후각도 만족시켜주고 싶다’란 아이디어로 시작됐다는 게 넬 멤버들의 설명이다.
 
넬 멤버들은 “개인적 경험으로 후각이 시간을 되돌리는 것에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 적이 있다”며 “콘서트를 찾아줬던 팬들이 공연이 끝난 후에도 원한다면 잠시나마 그 시간으로 돌아 갈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 공연에 대한 넬의 가치관이 협업으로 구현된 좋은 케이스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향까지 신경 쓰는 이들의 ‘상품’은 언뜻 음악을 더 잘 표현하기 위한 또 다른 ‘음악’ 같기도 하다. 이에 대해 밴드 멤버들은 “음악, 패션, 영상, 글 등 소위 우리가 말하는 창작 활동을 ‘해당 아티스트의 생각과 가치관을 표현하기 위한 행위’ 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그것은 ‘또 다른 음악’ 이라기 보단 ‘또 다른 자기 표현 수단’ 이라고 하는 게 더 적합할 것 같다”며 “다만 이를 ‘문화 상품’이란 관점에서 본다면 ‘또 다른 음악’이란 표현 역시 틀리지 않은 것 같다”고 답했다.
 
지난해 연말 밴드 넬의 브랜드 콘서트 ‘CHRISTMAS IN NELL’S ROOM’ 현장. 눈이 오는 날에도 밴드의 시그니처 룸스프레이를 사려는 이들로 이날 공연장 현장은 3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다. 사진/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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