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 중심에 늘 '사람'을 놓았던 회장님…구자경의 삶
'기술' '인재' '혁신'경영의 전도사에서 은퇴 후 시골 농부로
입력 : 2019-12-14 14:21:03 수정 : 2019-12-14 14:44:05
[뉴스토마토 전보규 기자] "우물 안에 큰 고기가 없고, 새로 가꾼 숲에는 큰 나무가 없다.”
 
14일 타계한 구자경 LG그룹 명예회장은 경영의 중심에 늘 사람을 놓고 고민하던 기업가였다. 그가 일찍이 인재 경영에 힘쓴 것도, 고객을 위한 가치창출에 노력한 것도 사람 없이는 기업도 없다는 경영철학 때문이었다. 그것은 평생 철저히 현장을 중시해 온 사업 경험에서 비롯된다.
 
구 명예회장은 1950LG그룹의 모태가 된 락희화학공업사에 입사한 뒤 18년간 공장 생활을 했다. 공장 관리인으로 시작한 그의 직책은 이사였지만 현장 노동자들과 다를 바가 없었다. 공장 문을 열고 닫는 일은 늘 그의 몫이었다. 공장 가동부터 제품 판매까지 그가 직접 챙기지 않는 일은 없었다.
 
사무실 책상에 앉아 숫자만 바라보는 흔한 재벌 2세들의 경영 수업과는 전혀 달랐다. 국내 최초로 플라스틱 가공제품을 생산했던 락희공장 현장, 첫 라디오가 만들어졌던 금성사 공장 현장에 그가 있었다.
 
구 명예회장은 당시 현장을 경험하며 기술만이 모든 문제를 해결할 확실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특히 일제강점기를 경험했던 그는 일본을 이기기 위해서는 기술력뿐이라고 믿었다. 그는 LG그룹 회장으로 재임했던 25년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기술을 경영지표로 내세웠다. 많게는 그룹 총 매출액의 7.5%까지 연구개발비로 쏟아 부었다. 그의 과감한 투자는 현재의 LG가 있도록 만든 원동력이 됐다.
 
구 명예회장은 기술은 곧 사람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평소 국토가 좁고 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가 의존할 것은 오직 사람의 경쟁력뿐이라고 강조했다인재육성이 기업의 기본 사명이자 사회적 책임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고 구자경 LG명예회장(왼쪽)이 1999년 8월 아들인 고 구본무 회장과 이야기를 나구고 있는 모습. 사진/LG그룹
 
1974년 농업 근대화에 공헌할 인재를 키우기 위해 천안연암대학을 세웠고, 10년 뒤인 1984년에는 공업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연암공과대학을 설립했다. 각종 장학사업과 해외연구교수 지원 사업은 물론, 도서관과 공연장 등을 설립해 교육과 문화 사업에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의 서울 원서동 사저에 세워진 LG상남도서관은 과학기술 분야에 특화된 170만여건의 논문과 35만건 이상의 강의자료를 보유해 9만 명의 회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구 명예회장에게 따라다니는 또 다른 별칭은 혁신의 전도사였다. 그는 오직 이 길 밖에 없다며 경영혁신에 매달렸다. 80년대 후반부터 그는 임직원들에게 늘 혁신을 강조했다. 그 스스로 우리 그룹에서 가장 많이 변한 사람은 회장이라고 부르기를 소망할 정도였다.
 
이 같은 혁신정신을 바탕으로 구 명예회장은 1990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인간존중의 경영을 새로운 경영이념으로 선포했다. 당시 국내에서 소비자가 아닌 고객이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LG그룹이 처음이었다.
 
구 명예회장은 1969년 부친인 구인회 명예회장이 별세한 다음 해인 1970년 그룹 회장직에 올랐고 70세가 되던 1995년에 고 구본무 회장에게 자리를 물려줬다. 그는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70세가 되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겠다는 말을 주변에 하고 다녔는데 실천으로 옮긴 것이다. LG2대 회장으로 재임하는 동안 LG의 매출은 260억 원에서 30조 원대로 성장했고, 사원수도 2만 명에서 10만 명으로 증가했다.
 
구 명예회장은 경영에서는 엄격하고 냉정했지만, 인간적으로는 따뜻하고 소박한 사람으로 기억된다. 그의 호는 상남(上南)’이다. 그의 고향인 진주에 추억이 깃든 장소의 이름을 딴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늘 고향을 마음에 품고 살았던 사람이었다.
 
그는 은퇴 후 자신이 세운 연암대학이 있는 천안으로 내려가 분재와 난 가꾸기 등을 하며 시골 생활을 즐겼다. LG공익재단 이사장이라는 직함으로 외부활동도 했지만 대부분 속세를 떠난 조용한 삶이었다. 그가 세상을 떠나면서 가족장을 원한 것도 겉치레를 벗어나고자 하는 소박한 마음이 담긴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는 우리 경제성장의 산 증인이자 참 경영인이었던 고인이 마지막까지 재계의 큰 어른으로서 귀감을 남기고 가셨다며 애도했다
 
전보규 기자 jbk88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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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보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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