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현의 러시아 재발견 8화)나나이족 마을 시카치알랸으로 가는 길
입력 : 2019-11-11 00:00:00 수정 : 2019-11-11 00:00:00
어느 크리스마스 날 저녁, 낫과 망치와 별이 그려진 소련의 국기가 내려가고 러시아의 삼색 국기가 올라갔다. 지난 세기 인류는 사회주의 혁명의 성공을 경험했지만 그 세기가 저물 무렵 이 첫 실험의 실패도 목격해야 했다.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이 사라지고 새로운 러시아가 역사에 등장했을 때, 타국의 사람들은 충격과 호기심으로 이 세계사적 사건을 지켜보았고 러시아인들은 혼돈과 기대, 희망과 절망의 시간 속에 던져져 있었다. 강산이 두세 번 바뀔 동안 커다란 변화를 겪어온 러시아인들, 그들은 지금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남은 이야기
 
이제 오랫동안 얘기해 온 데르수도 꼬르폽스키 마을도 헤어질 때가 되었다. 사실 데르수의 기념비가 세워진 장소는 그 근처일 뿐 그가 살해당해 묻혔던 곳은 아니다. 기차역 철길 주변 어느 지점으로 추정되지만 개발로 인해 그가 매장된 곳이 유실되었기 때문이다. 1908년 봄 데르수의 시체가 묻히던 걸 보았던 아르세니예프가 1910년 겨울 다시 꼬르폽스까야역을 찾았을 때, 역 근처에는 마을이 들어서고 삼림벌채가 한창이어서 아르세니예프가 표식으로 기억해 둔 시베리아소나무도 잘려나가고 없었다(아르세니예프 지음, 김욱 옮김, <데르수 우잘라>, 서울: 갈라파고스, 2005, 359쪽).
 
목공소의 알렉세이 씨는 ‘숲 사람들’(소수민족)이 말하는 흥미로운 전설이라며, 아르세니예프가 데르수의 죽음 이후 산 속에 들어가 그에게 바치는 ‘토템 장소’를 만들었다는 얘기가 있고 또 그곳이 데르수가 인삼을 재배했던 곳이라는 말도 있다고 했다. 데르수는 중국인 노인을 구해주고 그에게서 인삼재배법을 배워 숲속에 인삼을 심었는데, 자신의 전 재산인 그것을 감사의 뜻으로 아르세니예프에게 주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앞의 책, 275~276쪽). 아르세니예프의 ‘토템 장소’가 사실이든 아니든, 중요한 것은 이 러시아인과 나나이인이 나눈 우정이 전설을 만들어낼 만큼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었다는 점이다.
 
전설로 내려오는 아르세니예프의 '토템 장소'에 대해 설명하는 알렉세이 씨. 사진/필자 제공
 
러시아 가양주 ‘사마곤’, 여름 음료 ‘크바스’와 찬 수프 ‘아크로쉬까’
 
목공소를 떠나기 전 알렉세이 씨가 작업장 지하에 보관해 둔 ‘사마곤’(‘가양주’라는 뜻)과 자작나무 수액, 전통 음료 ‘크바스’를 꺼내와 맛을 보여준다. 마을의 한 할아버지로부터 샀다는 사마곤은 보드카만큼이나 독하다. 사마곤은 설탕이 들어간 전분 물질을 발효, 증류해 만든다. 몇 년 전 러시아에서 보드카의 가격 인상과 위조 보드카의 확산 때문에 가양주의 인기가 높아지고 가정용 양조기계 판매도 급증했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가양주 판매는 불법이지만 마을에서 사마곤을 만들어 파는 할아버지가 있다는 얘기에 문득 떠오르는 기억이 있다. 소련 붕괴 이후 혼란스럽던 1990년대의 러시아에는 흉흉한 말들이 많이 떠돌았다. 그중 하나가 돈 없는 사람들이 메틸알코올을 보드카 대신 마시고 죽는다는 소문 아닌 소문이었다. 사는 게 팍팍하던 시절이었다.
 
알렉세이 씨가 목공 작업장 지하에 보관 중인 크바스, 사마곤, 자작나무 수액을 꺼내오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크바스는 엿기름, 보리, 호밀 등을 발효시켜 만든 여름용 음료인데, 때때로 허브나 꿀이 첨가되기도 하고 과실로 만들기도 한다. 이 크바스를 기초로 해, 잘게 썬 고기 또는 생선, 야채, 각종 허브를 넣어 만든 차가운 수프가 아크로쉬까인데, 고기나 생선 대신 소시지(깔바사)를 넣기도 하고, 절인 오이, 양파, 감자, 순무 등등 원하는 대로 넣어 만든다. 하바롭스크로 돌아오는 길에 알렉세이 씨가 선물로 준 크바스 한 병과 자작나무 수액 한 병을 들고 왔다. 그가 만든 크바스는 이 자작나무 수액에 다른 재료를 가미한 것으로, 수액은 시큼하고 크바스는 달콤하다. 하바롭스크로 돌아가는 버스 안에서 부자가 된 느낌이다. 
 
알렉세이 씨가 점심으로 싸와 식사 중이던 아크로쉬까를 보여주고 있다. 사진/필자 제공
 
시카치알랸 마을로 향하다
 
데르수에서 시작한 관심은 나나이족 마을 한 곳을 방문하는 것으로 다음 일정을 짜게 했다. 이름이 좋아서 끌린 ‘다다’ 마을과 고대의 암각화를 볼 수 있는 시카치알랸 마을, 두 곳에 다 가고 싶었지만 숙박이 어려운 시골이라 당일치기로 한 곳만 다녀와야 했으므로 후자를 선택했다. 시카치알랸은 하바롭스크에서 약 75km 떨어져 있는 나나이족 마을로, 총인구가 300명이 채 못 되는 작은 마을이다. 아무르 강가에 있는 암각화들을 보기 위해 관광객들이 방문하지만, 보통 단체 투어로 러시아 여행사들을 통해 미리 마을과 접촉하고 방문하다보니 혼자 가는 게 쉽지 않아 보인다.
 
꼬르폽스키에서 하바롭스크로 돌아오는 버스의 차장이 끊어준 티켓으로, 시외구간인데 42루블(약 800원)이다. 버스 차장은 중년 여성이 많았는데 이번엔 청년이다. 사진/필자 제공
 
저녁이 다가올 무렵 하바롭스크로 돌아오자마자 문을 연 여행사를 찾아갔지만 일요일이라 투어 담당자는 없고 다른 근무자들만 있다. 별 수 없이 다음날 아침 담당자의 연락을 부탁해두고 그들에게 꼬르폽스키산 크바스와 자작나무 수액을 대접하니 기뻐한다. 다음날 아침이 되었지만 휴대폰 심(SIM)카드 상의 문제로 결국 여행사와는 연결이 되지 않았고 버스로 그 마을에 가기에는 이미 늦었다. 같은 호스텔에 묵고 있던 한국인 여행객 박효정 씨가 온라인 택시 예약 서비스로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날 시카치알랸 마을을 방문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을 안내해 주는 여행가이드로 일하는 효정씨는 처음 방문한 러시아에서 러시아어를 못해도 씩씩하게 잘 다니고 누구에게나 쾌활하게 인사한다. 그런 그녀가 의아해하며 내게 질문한 게 있다. “기차에서 러시아인들과 말을 해보려고 미소를 짓고 인사를 해도 인사를 잘 받지 않아요. 왜 그런가요?” 물론 그녀가 영어로 말을 거니 언어문제 때문에 대답을 안 하거나 못 한 것도 있겠지만, 러시아인들의 첫 인상이 무뚝뚝하고 무표정해 보인다는 것은 종종 듣는 얘기다. 
 
무뚝뚝한 러시아인의 진심
 
1992년 2월 러시아에 처음 도착해 일 년이 지나도록 기숙사에서 친구를 사귀지 못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한국 학생들이 주로 모여 사는 기숙사도 아니고, 외국인 학생들을 위해 낡은 기숙사를 수리해 만든 이른바 ‘호텔’층 기숙사도 아닌, 일반 층에서 러시아 학생들과 함께 지냈는데도 말이다. 일 년이 지나고 나서 깨달은 사실은 내가 먼저 말을 걸지 않는 한 러시아 학생들과 친구 되기는 어렵겠다는 것이었다. 수업 때 만난 동유럽 출신 학생들과 인사말을 나누는 사이는 되었지만 러시아 여학생 레나와 ‘절친’이 되는 데는 나의 노력이 있었음을 이번에 다시 만난 레나가 상기시켜 주었다. “성현, 그때 네가 수업 끝나고 내게 말을 걸어왔잖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러시아인들은 미국인들처럼 아무라도 눈만 마주치면 미소 짓고 인사하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들의 무표정한 모습을 보고 화가 난 게 아닌지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들도 아는 사람, 친한 사람에게는 미소를 짓는다. 즉, 가식적 내지 형식적인 인간관계보다 ‘진짜’ 인간관계를 중시한다고 볼 수 있겠다. 당시 한국인 유학생들끼리 하던 말로, 러시아 사람은 무뚝뚝해 보여도 밤새 보드카를 함께 마시고 노래 부르고 얘기하다보면 속을 다 털어놓는 사이가 된다고 했다. 깊은 정이 있는 것이다. 러시아인들로부터 종종 듣던 표현에 ‘인간적으로’, ‘인간적으로 말하자면’ 같은 것이 있었던 것도 아마 그런 맥락이었지 않을까. 물론, 사회주의 체제에서 단련된 ‘불친절’이 몸에 밴 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고, 먹고 살기 힘든 때라 외국인에 대한 반감을 표시하는 극단적 민족주의자들도 생겨나던 때이긴 했다.
 
시카치알랸에 도착한 모바일 앱 택시. 차에는 얀덱스라 쓰여 있지만 막심 택시 서비스로 예약한 차량이다. 사진/필자 제공
 
아르바이트 택시 기사 로만 씨
 
러시아에서 대표적인 온라인 택시 예약 서비스로는 얀덱스와 막심이 있다. 효정씨가 불러 준 것은 막심이고 기사도 막심 택시 예약으로 왔다고 하는데 택시 차체에는 얀덱스라 쓰여 있어 혼란이 온다. 가면서 물어보니 정확한 대답은 피하는데, 내부 인력끼리 상부상조하는 시스템이 있는 듯싶다. 어쨌든, 이후에는 내 전화기도 기술적인 문제가 해결되어 두 택시의 모바일 앱을 다 사용할 수 있어 급할 때 도움이 되었다.
 
시카치알랸으로 가는 동안 택시를 운전하는 로만 씨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는 두세 명의 직원을 두고 설비 관련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데, 아르바이트로 택시 운전을 한다고 했다. 자기 사업을 하는데 아르바이트 운전이라니, 처음에는 뜻밖이다 싶었지만 영세업자에겐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로만 씨의 외할머니는 우크라이나에서 극동지역으로 이주해 하바롭스크에 정착했다. 그러니 그에게 우크라이나는 연고가 없는 낯선 곳이 아니고 먼 친척도 있는 곳이지만, 그가 그다지 우호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우크라이나에 한 번도 가본 적이 없고 가고 싶은 마음도 없다고 했다. 크림반도를 둘러싼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사이의 분쟁, 갈등의 역사 때문일까?
 
박성현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 역사학 박사(perceptio@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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