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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칼럼)솜방망이 처벌은 또다른 불법을 부추길 뿐
2019-10-24 06:00:00 2019-10-24 07:56:27
꽉 막히는 간선도로를 이용해 출퇴근하고 있다. 운전하다 욕을 하는 성격은 아닌데 유독 특정한 상황을 만나면 화가 나곤 한다. 정체도로에서 멀쩡하게 뒤따라오다가 갓길이나 우합류 도로를 이용해 치고나가 저 앞에서 끼어드는 차량을 발견할 때다.
 
그런데 이들만큼이나 화를 유발하는 이가 있으니, 차간 거리를 넓게 벌려 그런 새치기를 다 받아주는 운전자들이다. 새치기 차량에게 자리를 내주는 그 운전자는 스스로 너그러운 아량을 베풀고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하지만 그 뒤에 줄지어 선 차량 행렬의 운전자들도 그렇게 생각할까? 실제로 그런 분들 때문에 특정 구간에서 새치기하는 차량이 늘어나고 있는데 이걸 인정이나 아량으로 볼 수 있을까.
 
MBC 시사프로그램 PD수첩이 스폰서 검사를 다루며 시대의 문제아로 떠오른 검찰의 민낯을 다시 드러냈다. 남에게는 무서울 정도로 엄격한 검사들이 자기들끼리는 너무나도 관대하더라는 내용이었다. 힘깨나 쓸 것 같은 집안사람과 일반인에게 매겨지는 검사의 구형을 봐도 그렇다. 상식적으로 죄질의 경중이 확연하게 차이 나는데 처벌은 거꾸로 된 경우도 많다. 몰랐던 바 아니지만 볼 때마다 화가 난다. 검찰이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온전히 자신들 탓이다. 
 
금융투자업계 안에서 벌어지는 일이라고 다를 것도 없다. 최근 모 증권사 리서치센터 연구원이 선행매매 혐의로 잡혔는데 그에 대한 처벌 수위는 어떨까? “이번이라고 다르겠어?” 이게 투자자들의 솔직한 심정이다. 
 
내부자정보 이용 등 불법 주식거래는 시장에서 빈번하게 벌어지는 것으로 의심되는데, 잡기가 어려운 건지 ‘잔챙이’들까지 잡을 여력이 없어서인지 그중 일부만 검거돼 처벌받는 것 같다. 하지만 잡혀도 처벌 수위가 그리 세 보이진 않는다. 오죽하면 ‘한탕 크게 하고 교도소 다녀와 평생 잘 사는 게 낫겠다’는 말이 나올까.
 
삼성물산 분식회계에 대한 증권선물위원회의 제재 내용이 뒤늦게 보도됐다.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SDS 주식의 주가 하락 손실을 반영하지 않아 1조6000억원대 분식회계를 저질렀는데 증선위가 금융감독원이 정한 제제 수위를 크게 낮췄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 정도면 ‘조 단위 분식회계 해도 별 탈 없다’는 말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금감원이 제재하면 증선위가 ‘어루만지는’ 이런 일은 한두 번 있었던 게 아니다. 삼성바이오로직스 분식회계 혐의에 대한 제재가 대표적이다. 이를 두고 증선위와 금감원이 갈등할 정도였으나 결국 증선위가 이겼다. 
 
한국투자증권이 발행어음 자금을 특수목적법인을 통해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빌려준 일은 금감원이 알아서 제제 강도를 줄였고, NH투자증권이 인도네시아 해외법인 대출에 지급보증한 건도 증선위가 제제 수위를 낮출 것이란 말이 나온다. 종합편성채널 MBN이 출범할 당시 분식회계를 저질렀다는 혐의도 금감원은 검찰고발 등을 건의했으나 증선위는 종편 재승인 심사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며 고심하는 눈치다. 어쩐지 결론을 알 것도 같다. 
 
솜방망이 처벌은 또 다른 불법의 가이드라인이 되고 그로 인한 피해는 선의의 투자자에게 돌아간다. 
 
밀리는 길 차안에 갇혀 함께 불편한 건 참을 수 있다. 하지만 새치기는 용서 못하겠다. 새치기를 부추기는 행위도 똑같이 비난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새치기를 보는 마음이 그럴 진데 금융당국, 검찰, 법원을 향한 시선은 어떻겠는가. 앵그리버드라도 된양 화가 난다, 화가 나.
 
 
김창경 증권부장/재테크전문기자 ckkim@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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