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VE다이어리)폴리스 결성하던 27세 스팅이 거기 있었다
2019년 10월5일|불꽃축제 시즌 밤은 겨울이 된다|"스팅과는 잘 만나셨나요?"
입력 : 2019-10-10 20:06:34 수정 : 2019-10-10 20:30:11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LIVE다이어리: 일기처럼 ‘생생한’ 공연 리뷰. 실제 일기처럼 날짜를 적고, ‘나’를 주어로 내세워 공연에서 보고 느낀 감정들을 풀어갑니다. 딱딱한 형식의 공식 리뷰를 벗어나 음악과 공연을 즐긴다는 것. 그 즐거움을 함께 공유하고 싶습니다.
 
"스팅과는 잘 만나셨나요?"
 
지난달 21일 낮 2시 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인근. 친분 있던 한 공연기획자가 근황을 물었다. 농담 반 섞은 질문에 농담으로 응수했다. "아주 좋은 시간이었죠. 우린 둘도 없는 펜팔 친구인걸요."
 
만나긴 만났다는 것은 팩트다. 지난달 일흔을 앞둔 그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질문지 전달 마감날. 나는 온갖 머릿 속 상상력을 동원했다. 밥 먹을 때도, 화장실에서도 고민 또 고민했다. 어떤 질문을 던져야 좋은 기사가 나올지. 그를 대면하지 못하는 한을 그 질문지에 다 털어놓을 요량이었다.
 
다행히 '타임머신'에 관한 내 회심의 질문에 '전설'은 전설 같은 답을 해줬다. [뉴스토마토 9월20일자. (인터뷰)스팅 "호기심 좇다 나온 짜릿한 음악, 내 인생 최고의 장면" 참조] 
 
그러나 이 전설은 나머지 대답에 호락호락 응하지 않았다. 심혈을 기울여 총 12개의 질문을 던졌는데, 돌아온 답변지엔 빨간 펜이 벅벅 그어져 있었다. 장르의 벽을 완전히 해체시킨 그의 도전 정신과, 폴 매카트니로부터 받은 칭찬에 대한 생각, 사회 활동가로서의 생각을 물어봤는데 모조리 편집 당했다. 이 첨삭당한 질문지의 기준을 나중에 어떤 방식으로든 그를 만나면 꼭 물어보고 싶다.
 
스팅. 사진/프라이빗커브
 
어쨌든 '절반의 대화'에 성공한 그를 봐야겠다 싶었다. 지난 5일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88잔디마당에서 열린 '슬로우 라이프 슬로우 라이브' 페스티벌 현장으로 갔다.
 
스팅이 서울에 오는 것은 1996년 이후 이번이 여섯번째. U2 같은 전설적 밴드가 올해 처음 한국에 오는 것에 비하면 뭐 거의 밥 먹듯 오신 셈이다. 그럼에도 나는 그를 실물로 보는 게 처음인지라 무척이지 궁금했다. 질문들이 머릿 속을 배회했다. 이 전설의 무대는 어떨까, 스피커는 몇대나 올릴까, 노래는 잘 부를까 등.
 
아일랜드 밴드 코다라인이 그에 앞서 무대를 가졌다. 이들은 콜드플레이를 잇는 차세대 밴드로 최근 전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팀이다. '하이 홉스(High Hopes)'라는 대표곡을 들어보면 이 팀이 어떤 음악을 하는 팀인지 감이 온다. 새벽이나 노을 감성 같은 몽환적인 사운드. 공교롭게 노을을 배경으로 무대에 오른 팀은, 예쁜 소리들로 페스티벌 현장을 동화 같은 마을로 만들었다. 그리고 보컬 스티브 개리건이 건넨 마지막 말은 이날 페스티벌 안 모든 이들의 목표 의식을 명확하게 짚어냈다. 
 
"여러분 늦게까지 즐기세요. 곧 스팅이 나올겁니다. 그는 전설이죠."
 
스팅. 사진/프라이빗커브
 
어둑해진 밤, 이 날의 주인공이 올랐다. 그는 타임테이블에 명시된 자신의 할당 시간을 처음부터 명확히 지켰다. 저녁 8시20분, 그가 멤버들을 대동해 무대에 올랐다. 손에 들린 수천개의 네모 화면들이 깜박대며 무대 위의 그를 찍었다.
 
그래미상을 18번이나 들어올린 전설은 탁 트인 잔디마당에서 위대한 연주를 시작했다. 직접 메고 나온 베이스를 두드리니 그의 뒤 설치된 거대 스피커 4대에서 심장 고동 같은 사운드가 요동쳤다. 베이스엔 나무결이 일부 쪼개져 있었는데, 그로부터 그의 연륜이 느껴졌다. 그리고 그 '무기' 같은 걸 하늘 높이 치켜 든 순간, 그제야 실감이 났다. '나는 드디어 스팅을 봤다.' 
 
3번째 곡 'Englishman in New York' 때부터 공연장은 터졌다. 자신을 잃지 말라는 이 언어를 모여있던 관중들이 목놓아 부르기 시작했다. 영화 레옹 OST 'Shape of My Heart'의 고독한 전주 한 마디로도 관객들은 열광했다. 50~60대 팬들은 'Every Breath You Take'의 노스탤지어틱한 선율 만으로도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났다. 한 50대 후반 관객이 말했다. 
 
"젊었을 때 라디오에서 흐르던 노래예요. 우리 세대들은 다 아는. 근데 어쩜 저렇게 목소리가 똑같지? 목소리엔 세월 없네."
 
목소리 뿐만은 아니었다. 탄탄한 근육질 몸매, 착 달라붙는 스키니진, 베이스를 뚱땅 거리며 잠시 턱을 괴는 멋드러진 퍼포먼스. 
 
난 이제 막 밴드 폴리스를 결성했던 27세, 치기어린 스팅을 거기서 보고 왔다.
 
 
스팅. 사진/프라이빗커브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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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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