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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반백살에도 '세기말 전사' 글레이…꿈과 자유, 젊음의 음악
데뷔 25년 만에 KBS아레나홀서 첫 내한…2000여 한·일 관객들 점프 뛰며 열광
2019-07-02 17:45:38 2019-07-02 17:45:3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세기말 전사 느낌의 헤어스타일과 쉴새없이 때려대는 파괴적인 베이스 슬래핑 주법, 멜로디컬한 코드와 묵직한 쇳소리를 오가는 두 대의 전자 기타….
 
지난달 30일 서울 강서구 화곡동 KBS아레나. 일본 록 밴드 글레이(GLAY)는 반백살을 앞두고도 여전한 '청춘'이었다. 데뷔 25년 만에 처음 밟은 한국 땅에서 그들은 화려하게 물들인 머리를 휘날리며 꿈과 자유, 낭만의 언어들을 쉼 없이 연주하고 노래했다. 한일 양국에서 모여든 2000여 관객들이 이 반백의 네 청춘<테루(보컬)·타쿠로(기타)·히사시(기타)·지로(베이스)> 앞에 경의의 주먹을 힘껏 치켜 들었다. 
 
지난달 30일 데뷔 25년 만에 KBS 아레나홀에서 첫 내한 공연을 펼친 일본 밴드 글레이. 사진/피알비즈
 
글레이는 1990년대 제이록(J-Rock) 부흥기를 주도했던 팀. 엑스 재팬(X JAPAN)의 히데와 요시키 눈에 들어 메이저 밴드로 올라 섰고, 세기말 비주얼록(70년대 글램 록의 영향으로 일본에서 유행한 장르로 음악 자체를 넘어 화장이나 의상 같은 화려함이 특징)의 명맥을 충실히 계승했다. 
 
대표 곡으로는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하웨버(However)'를 비롯 '소울 러브(Soul Love)', '윈터 어게인(Winter, Again)' 등이 있다. 지난 1999년 개최된 콘서트 '글레이 엑스포 99 서바이벌(Glay Expo’99 Survival)'에는 20만명을 동원, 일본 공연사에 희대의 기록으로 남기도 했다. 
 
서태지와 자우림, 김재중 같은 국내 뮤지션들과 교류를 이어오는 등 한국 음악에 대한 애정도 각별하다. 다만 이들이 왕성하게 활동하던 90년대에는 일본 대중문화의 개방이 이뤄지지 않았던 시기. 지난 2013년 계획됐던 내한공연마저 취소되면서 팬들은 이번 공연까지 기약 없는 기다림을 가져야 했다. 
  
기타리스트 히사시. 사진/피알비즈
 
이날 공연장을 찾은 대부분은 30대에서 40대로 보이는, 그들의 오랜 팬들이었다. 밴드의 패션을 따라 비주얼 록 의상을 입거나 화려한 화장 등의 차림새를 한 이들도 쉽게 눈에 띄었다. 이 일본의 국민 밴드는 화려한 머리칼과 블랙 계열의 의상을 입고 무대 위로 등장했다.
 
무대 좌우에 설치된 거대 사각 화면은 1994년 결성 당시부터 1999년의 서바이벌 공연, 그리고 현재의 모습들을 흘리며 시간을 되감았다. 눈과 라벤더의 땅 홋카이도에서 음악을 시작한 네 청춘이, 그들이 끝내 달성한 꿈이 2000명을 단숨에 일으켜 세웠다. 목소리를 긁는 테루의 샤우팅은 손악기들이 빚어내는 현란한 사운드와 함께 마샬 앰프 6개를 타고 폭발할 듯 홀을 진동시켰다.
 
'자신의 꿈을 버리는 것이 올바른 일이라 할 수 있을까'
 
첫 곡 '서바이벌'로 무대를 연 밴드는 "헤이, 헤이, 헤이"하는 테루의 추임새를 시작으로 관객들과 함께 했다. '모어 댄 러브', '영 오! 오!'로 이어지는 광속의 연주에 '멋진 꿈을 세다 화려한 꽃이 되겠다'는 그들의 다짐이, '슬퍼서 견딜 수 없는 밤을 흘려야 했던 젊음의 날들'이 오르내렸다. 
 
보컬 테루. 사진/피알비즈
 
주로 타쿠로가 주축이 돼 쓰는 이들 곡엔 꿈과 자유, 젊음의 심상이 부표한다. 이날도 밴드는 관객들과 '무심하게 얼굴을 감추는 행복'에 아파하고, '빛나는 영광의 날들'을 바라보며, '꿈과 자유를 말할 수 있다면 그걸로 오케이'라 외쳤다. '얼어버릴 것처럼 차가운 세상사에서, 꿈과 자유로 미래를 열자'며 노래했다. 
 
묵직한 쇳소리와 멜로디컬한 울림 사이로 그들이 나고 자란 훗카이도가 보였다. 겨울이면 혹독한 시련의 눈밭이 여름이면 향긋한 꿈의 라벤더로 변하는 곳. 그 도시의 변화무쌍한 심미적 감성이 록과 발라드를 오가는, 이들의 조요한 사운드에 진하게 묻어 나왔다.
 
데뷔 25년 만에 KBS아레나홀에 모인 2000여 한·일 관객들. 사진/피알비즈
 
무대 위 퍼포먼스는 가히 25주년을 맞은 록 밴드다웠다. 단상을 밟고 올라가 연주하거나 소주병을 통째로 원샷하는 패기의 밴드. 전자기타와 어쿠스틱 기타를 어깨에 동시에 메고 속주를 펼칠 땐 객석에서 탄성이 절로 나왔다.
 
앙코르는 사전에 꼭 불러준다고 했던 'HOWEVER'를 포함한 총 네 곡. 
 
묵묵히 연주하고 노래하던 그들이 '와줘서 고마워'라 적힌 플래카드를 보며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리더 타쿠로는 멤버들이 모두 퇴장할 때까지도 90도로 몸을 굽힌 채 망부석처럼 서서 감사를 표했다. 
 
무대 위로 서서히 켜지는 노란 조명이 그들과 팬들 사이 교감을 따스히 비춰주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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