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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에 주식 산 새 주주가 전년 결산 승인?…"주총 내실화, 현실과 동떨어진 정책"
정관변경은 특별결의 "3월 주총에 맞춘 결산일정 바꾸기 어려워"
2019-04-25 16:38:49 2019-04-25 18:02:52
[뉴스토마토 신송희·이보라기자] 정부가 형식적으로 운영되던 주주총회의 내실을 기하기 위해 대책을 내놨지만 기업들 반응이 심상치않다. 현행법률과 정관 변경 등 기업의 어려움을 고려하지 않은 보여주기식 정책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박정훈 금융위원회 자본시장정책관이 지난 24일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금융위원회
 
지난 24일 금융위원회가 발표한 '주주총회 내실화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상장사들은 정기주주총회 소집 통지 때 사업보고서와 감사보고서를 함께 제출해야 한다. 이를 통해 그간 3월말 집중된 주총을 4월과 5월로 분산시켜 쏠림현상을 막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3월 주총에 맞춰 정관은 물론 관행처럼 굳어진 기업의 결산업무 사이클을 대대적으로 손질해야한다는 점에서 기업들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 제도의 정착까지 적지않은 진통이 예상된다.
 
기업들이 가장 먼저 지적하는 부분은 의결권 행사 기준일이다. 상법에 따르면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주주를 특정하는 기준일은 주총 개최일을 기준으로 3개월 전이다. 금융위 방안대로 기업들의 주총이 4월로 미뤄지면 주주명부 폐쇄도 기존(12월 말)보다 늦어진 2월이 된다. 문제는 한해의 성과를 결산해 나오는 배당 등 주주의 자격은 12월 말에 정하기 때문에 주주명부 폐쇄일과 괴리가 생긴다는 점이다. 1월에 주식을 매수한 새로운 주주가 전년의 재무제표를 승인하는 상황이 생길 수도 있다는 뜻이다. 
 
A상장기업 관계자는 "주총 안건에는 지난 회계연도 결산 승인이 필수로 들어가야 한다"며 "해당 회계연도에 주식을 1주도 보유하지 않았던 주주가 재무제표를 승인하거나 부결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재무제표 작성도 부담이다. 기존엔 주총에서 재무제표 승인이 이뤄졌지만, 주총의 승인을 받지 않은 재무제표가 나가면 이를 재차 수정할 일이 생길 수 있다. B기업 관계자는 "주주들이 배당을 더하자고 하면 이익잉여분 처분계산서가 바뀌고 재무제표도 변경해야 한다"고 말했다.
 
금융당국은 개별기업이 정관을 변경하면 제도에 적응할 수 있다고 하지만 기업들은 정관변경도 쉽지 않다고 항변한다. B기업 관계자는 "정관을 변경하려면 특별결의가 필요한데, 10% 미만의 지분만 가진 대주주도 많아서 정관을 변경하기 쉽지 않은 곳이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C기업 관계자는 "의결정족수를 채울 수 없어 주주들의 주총 참여 독려가 필요하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가능한지 따져봐야 한다"며 "상법을 개정해 의결 정족수 기준을 낮추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개인 주주들의 주총 참여를 독려하기 위해 전자투표 참여 요건 완화, 기념품 제공 등 인센티브 허용 방안에 대해서도 기업들은 냉소적이다. C기업 관계자는 "실무진들의 골칫거리인 '주총꾼' 문제는 해결 의지가 없고 오히려 주총꾼을 양성하는 방안만 내놨다"며 "단기투자자가 많은 국내 여건에서 인센티브를 제공한다고 주총에 참여할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기업 관련 단체들도 문제점을 지적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관계자는 "이번 개선방안이 통과되면 국내기업들은 당장 정관 변경을 위해 임시주총을 열어야 할 판"이라며 "의결정족수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 있어 임시주총에서 안건 승인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번 금융위가 제시한 대안책은 주총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금융위는 다음달 공청회를 거쳐 세부방안을 확정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금융위 관계자는 "주총이 특정일에 집중 개최되고, 참여가 활발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면서 "주총이 분산돼 열리는 것이 선진 자본시장의 흐름으로, 국내 기업문화도 기존의 관행을 바꿔나갈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신송희·이보라 기자 shw101@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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