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양지윤 기자]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4월 8일 새벽(한국시간) 미국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다.
조 회장은 1949년 3월8일 인천광역시에서 조중훈 한진그룹 창업주의 첫째 아들로 태어났다. 조 회장은 서울에서 경복고등학교를 수학한데 이어 미국으로 유학해 미국 메사추세츠 주 쿠싱 아카데미(Cushing Academy)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이어 인하대 공과대학 학사, 미국 남가주대 경영대학원 석사, 인하대 경영학 박사 학위 등을 취득했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에 몸 담은 이래로 반세기 동안 '수송보국' 일념 하나로 대한항공을 글로벌 선도항공사로 이끄는데 모든 것을 바쳤다. 또 대한민국 항공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과 비전을 제시하고,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위상을 제고하는 등 대한민국 항공산업의 선구자 역할을 해왔다.
조 회장은 1974년 대한항공 입사 후 45년간 정비, 자재, 기획, IT, 영업 등 항공 업무에 필요한 실무 분야들을 두루 거쳤다. 이 같은 경험은 조 회장이 유일무이한 대한민국 항공산업 경영자이자, 세계 항공업계의 리더들이 존경하는 리더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던 원천이었다.
그는 1992년 대한항공 사장, 1999년 대한항공 회장, 2003년 한진그룹 회장 자리에 올랐다. 조 회장은 재직기간 중 대한민국의 국적 항공사였던 대한항공을 전 세계에서 주목하는 글로벌 선도 항공사로 거듭나는 발판을 마련했다.
조 회장이 대한항공에 몸을 담은 이래 회사의 존폐를 흔드는 위기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조 회장은 세계 항공업계 무한 경쟁의 서막을 항공동맹체인 '스카이팀' 창설 주도로, 그리고 전 세계 항공사들이 경영 위기로 움츠릴 때 앞을 내다본 선제적 투자로 맞섰다. 결국 대한항공은 결국 이들 위기를 이겨내고 창립 50주년을 맞을 수 있었다.
조양호 회장이 지난해 열린 임원세미나에서 발언을 하고 있다. 사진/대한항공
조 회장은 위기의 순간을 기회로 만들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당시 자체 소유 항공기의 매각 후 재 임차를 통해 유동성 위기를 극복했다. 1998년 외환 위기가 정점일 당시에는 유리한 조건으로 주력 모델인 보잉737 항공기 27대를 구매했다. 또한 이라크 전쟁, 사스(SARS) 뿐만 아니라 9.11 테러의 영향이 아직까지 남아있어 세계 항공산업이 침체의 늪에 빠진 2003년 조 회장은 이 시기를 차세대 항공기 도입의 기회로 보고, A380 항공기 등의 구매계약을 맺었다. 결국 이 항공기들은 대한항공 성장의 기폭제로 작용했다.
조 회장은 전 세계 항공업계가 대형항공사와 저비용 항공사(LCC)간 경쟁의 패러다임으로 전환하는 시대의 변화를 내다보고 이를 받아들였다. 그리고 대한항공과 차별화된 별도의 저비용 항공사 설립이 필요하다고 확신했다. 이를 토대로 새로운 수요가 창출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이에 따라 조 회장은 2008년 7월 진에어를 창립했다. 진에어는 저비용 신규 수요를 창출, 대한민국 항공시장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대한항공은 올해 창립 50주년을 맞았다. 대한항공은 1969년 출범 당시 8대뿐이던 항공기는 166대로 증가했으며, 일본 3개 도시 만을 취항하던 국제선 노선은 43개국 111개 도시로 확대됐다. 국제선 여객 운항 횟수는 154배 늘었으며, 연간 수송 여객 숫자 38배, 화물 수송량은 538배 성장했다. 매출액과 자산은 각각 3500배, 4280배 증가했다.
양지윤 기자 galile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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