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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악질경찰’, 부끄러움에 대한 직설화법
‘세월호’ 사건 통해 기성 세대 부끄러운 민낯 ‘고발’
‘외면’하면 편하고 ‘대면’하면 불편한 진실의 시선
2019-03-18 00:00:00 2019-03-18 00:00:00
[뉴스토마토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악질경찰은 분명히 상업 영화다. 오락성을 담고 있다. 논란까지는 아니다. 하지만 논쟁거리는 분명하고 명확하다. 가장 뜨거운 논쟁은 세월호. 배경 자체가 안산시이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는지 아니면 상업적 이용 방식인지는 관객들의 몫이 될 듯하다. 두 번째는 연출자 이정범 감독이다. 그는 영화 아저씨이후 우는 남자로 호기롭게 복귀했다. 하지만 처절한 실패를 맛봤다. 그리고 선택한 악질경찰이다. 기존 연출 제안을 받은 시나리오에서 몇 개의 기본 설정만 가져온 뒤 완벽하게 그의 손에서 탄생된 스토리다. 세 번째는 기대치다. 이정범이란 연출자의 이름은 무조건적으로 아저씨의 아우라를 따르게 만들 수 밖에 없다. 거기에 제목까지 악질경찰이다. 마초적이고 자극적이며 통렬한 방식을 예감케 한다. 이 모든 것을 충족시켜야 한다.
 
 
 
영화는 우선 간결하다. 이정범 감독이 아저씨이후 유지해 온 정서적 기반이 그대로 녹아 있다. 나쁜 형사 조필호’(이선균)의 내적 성장담이다. 그는 경찰이지만 경찰이라고 하기엔 질적 수준이 의심될 만한 나쁜 경찰이다. ‘나쁜이란 단어 자체에는 권력과 능력의 두 가지 측면이 녹아 있어야 한다. 조필호에겐 이 두 가지가 없다. 그는 그저 양아치일 뿐이다. 전과자 한기철(정가람)과 함께 잔잔한 비리를 저지르는 것으로 대신한다. ‘경찰 무서워 경찰이 됐다는 필호의 말이 그의 정체성을 확인시켜 주는 대목이다. 그는 경찰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그저 좀도둑질을 대신하는 범죄자에 가깝다.
 
자신의 비리를 뒤쫓는 내사과 형사 민재(김민재)의 압박에 필호는 크게 한 탕을 치고 경찰직을 그만두려고 한다. 목표는 경찰 압수물품 창고다. 기철은 필호의 지시로 창고에 침입한다. 하지만 문제가 발생했다. 이상한 낌새를 눈치 챈 필호가 창고 문을 여는 순간 거대한 폭발이 일어난다. 조금 큰 비리 행위가 단 번에 살인 사건으로 둔갑한 것이다. 문제는 더 있다. 창고 안에서 기철이 폭발 직전 누군가에게 동영상을 전송한 것이다. 도대체 무슨 내용이었을까.
 
영화 '악질경찰'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내사과와 검찰 그리고 경찰은 모두 필호를 유력한 용의자로 본다. 그의 평소 행적이 문제다. 꼬리는 이제 밟히기 직전이다. 하지만 폭발 사건의 거대한 실마리는 예상 밖의 지점에서 터져 나왔다. 죽은 기철의 애인이자 여고생인 미나(전소니)를 만나게 되는 필호다. 학교를 그만둔 미나는 세월호 참사로 죽은 친구의 츄리닝을 입고 다닌다. 맥주병으로 남자친구인 기철의 머리를 후려칠 정도로 깡다구까지 있다. 필호는 우연히 미나와 만나고 묘한 관심을 느끼게 된다. 그렇게 우연찮게 만난 미나가 바로 죽은 기철이 전송한 동영상이 담긴 핸드폰을 갖고 있었다.
 
이제 필호 그리고 창고 폭발의 배후에 있는 거대 비리 재벌의 하수인 태주(박해준)은 미나를 먼저 잡아야 한다. 필호는 자신의 누명을 벗어날 유일한 방법이다. 태주는 자신의 주인을 위해 모든 것을 치워 버리는 해결사다. 그의 눈에 미나가 걸려 들었다. 그리고 앞길을 가로 막는 유일한 인물 필호가 걸린다. 두 사람은 이제 생사를 건 추격과 도망을 시작한다. 여기에 미나는 알 수 없는 이상한 행적들을 보이며 두 사람을 아슬아슬하게 피해 다닌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악질경찰은 사실 지금의 이야기는 아니었다. 지금보다도 더 선이 굵고 거친 면이 많은 스토리였다. 이정범 감독과는 2015년 후반쯤 만난 이야기다. 당시 이 감독은 세월호 사건에 대한 관심과 기성 세대로서의 죄책감과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었단다. 그 시절 악질경찰의 원안을 만나게 됐고 원안 속 배경인 안산시와 경찰 이야기 등 거의 기본적인 설정만 가져온 채 완벽하게 다른 흐름을 창조해 냈다. 하지만 문제는 투자와 캐스팅이었다. 대통령 탄핵 이전 시절이다. 어느 누구도 투자에 선뜻 손을 내밀지 않았다. 침몰했던 세월호도 인양되기 전이다. 우여곡절 끝에 워너브라더스 코리아가 투자를 결정했다. 그리고 영화 크랭크인을 앞둔 고사날이었다. 거짓말처럼 세월호 인양 소식이 뉴스를 통해 보도됐다. 거짓말처럼 인양이 불가능하다는 뉴스 보도가 뒤집힌 날이다. 그렇게 쉽게 가능했던 불가능이었다. 사실 일어나면 안될 존재해선 안될 일이었다. 그럼에도 어른들은 고개를 돌리고 있었고 외면했고 분노하지 못했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그래서 악질경찰은 더욱 더 악을 쓰고 달려드는 지도 모른다. ‘조필호는 악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악을 통해 진짜 세상의 악이 무엇인지 마주했다. ‘너희도 어른이냐며 날 선 비수처럼 쏟아낸 미나의 일갈이 필호의 가슴을 후벼 팠다. 사실 따지고 보면 필호가 악질이라기 보단 세상이 악질이었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기 위해 스스로를 악으로 끌어 내린 필호의 발악을 미나는 세상에 대변해 준 것이다. 그 외침에 필호는 부끄러웠다. 그는 매번 분노했었다. 삶에 분노했었다. 자신의 비루한 삶에 분노했었다. 경찰이지만 경찰 무서워 경찰된 사람이 바로 나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하했고 본질을 외면하고 있었다. 미나의 외침은 그의 잘못된 시선을 바로 잡아주는 길라잡이였다.
 
악질경찰은 단순하다. 이정범 감독은 아저씨’ ‘우는 남자를 통해 여성을 구원의 대상으로 기성 세대를 뉘우침의 피의자로 바라보고 있었다. 세상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구조다. 그 안에서 분노는 자연스럽게 끌어 오르게 된다. 그 분노가 어디로 향하는 것인지에 대한 간결하고도 뚝심 있는 방식을 세상은 당연히 모르고 있다. 불편함 때문이다. 외면하면 편할 뿐이다. 그래서 필호도 분노를 토해냈고 그 분노가 악질로 변모됐지만 외면하고 있었다. 그는 이제 세상과 마주보게 되는 용기를 얻게 됐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이정범 감독의 의도가 분명하지만 그것이 만약 의도가 아니라도 악질경찰외면대면의 차이를 명확하게 짚었다. 그 동안 왜 우리가 스스로도 알지 못했고 정말 모르고만 있었던 그 외면이 왜 그렇게 악질이었는지. 그래서 바라보라고 한다. 필호의 애인(이유영)은 말한다. “저 아이 표정, 살려달라고 그러고 있잖아라고. 제대로 쳐다 보라고.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하는 어른의 책임 회피가 오늘날의 아픔을 만들어 냈다. 최소한 그 잘못을 잘못이라고 인정하고 제대로 쳐다볼 용기도 없다면 그게 어른일까. ‘악질로 불리던 필호조차 자신의 외면에 부끄러움을 느꼈다. 우리는 최소한 악질이란 단어로도 포장되기 힘든 어른이었다. 이 영화는 그 부끄러움을 일깨워 준다.
 
영화 '악질경찰' 스틸. 사진/워너브라더스코리아
 
물론 그게 세월호란 소재 때문만은 아니다. 이정범 감독은 진짜 진심을 담아 냈다. 개봉은 오는 20.
 
김재범 대중문화전문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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