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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창업국가로 가는 길
2019-02-19 08:00:00 2019-02-19 08:00:00
2019년 들어 대통령이 창업공간을 방문해 혁신 창업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실패를 두렵지 않도록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기업가 정신 연구 분야에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은 주요한 연구 주제이다. 실제로 창업자들 중 성공적인 사업가가 되는 비율은 매우 낮은 것이 현실이므로 창업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실패한 사업가들이 연쇄 창업을 하거나 다른 창업 기업에 가서 일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는것이 필수적이기 때문이다. 과연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고 창업국가로 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몇년 전 발표된 글로벌기업가 정신 모니터 결과에서 우리나라는 일본과 함께 창업기회 인식 수준이 OECD 회원국 중 최하위권이었다. 어느 국제회의에서 일본의 창업 관련 전문가가 실패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 발표하면서 사무라이의 할복 문화를 설명했다. 사무라이가 책임을 지거나 명예를 입증하기 위해 칼로 배를 가른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화가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그대로 이어져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매우 크고 결과적으로 창업에 어려운 환경이라는 설명이 이어졌다.
 
우리나라는 1990년대 인터넷 확산과 금융위기를 거치면서 사회 전반의 혁신적인 실험이 이뤄지고 실력 있는 인재들이 창업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지금 대학에서 보면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거나 또는 법학·의학 대학원에 진학하는 등 안정적인 직업을 얻으려는 준비에 바쁜 학생들이 많고 창업 동아리를 하는 학생들도 취직을 위한 스펙 쌓기로 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그렇다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해소하는 창업 교육은 어떻게 해야 할까. 초기 창업교육에 헌신한 하버드 경영대학원의 조지 도리오 교수는 본인이 2차 세계대전 중 병참 장교로 일한 경험을 살려 창업 스타트업 기회에 투자하는 최초의 벤처캐피탈을 설립했다. 전쟁 후 일자리를 찾지 못하는 젊은이들을 위해 자신의 명성과 돈을 모두 걸고 신생 창업기업을 만들고 초기부터 육성하였다. 마치 청소년기 아이를 돌보는 아버지와 같이 지켜보고 격려하며, 실패를 겪더라도 희망을 갖도록 하면서 사람과 기업을 키웠다.
 
스탠포드 대학의 프레데릭 터먼 교수는 미국 정부의 국방 사업을 통해 막대한 연구자금을 확보해 군에 납품할 최첨단 전파 기기를 연구 개발하였다. 최신예 신제품을 만들면서 뛰어난 연구 인력에게 도전과 실패는 당연한 것이라 교육했으며 그의 제자들에게 창업을 장려하며 대학 소유의 지적재산권을 창업하는 학생에게 이양하는 정책을 썼다. 그 중 수제자였던 휴렛과 패커드는 차고에서 창업하여 휴렛패커드(HP)를 만들었다. 그 후에 우리에게 잘 알려진 실리콘 밸리가 이곳에 만들어졌다.
 
과연 우리는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창업국가를 구현할 준비가 되어있을까. 정부는 올해 정책금융기관의 연대보증 전면 폐지, 창업기업 부담 완화, 혁신 모험펀드 조성, 메이커 스페이스 전국 확대 등의 방안을 제시했으나 창업국가로 전환하기에는 제도적인 문제가 있다. 동국대 이영달 교수의 연구에 의하면 우리나라 법과 제도는 여전히 20세기 패러다임에 묶여 있어 상법, 민법, 공정거래법, 자본시장통합법 등 기업활동 관련 법제가 복잡하게 혼재되어 창업 기업가는 법을 위반할 다수의 위험에 처해있다. 미국, 중국, 일본, 한국 중 기업법 또는 회사법이 단행법전화 되지 않은 나라는 한국이 유일한데, 사업가의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가해자 입증 및 무고죄 균형이 전제가 된 영미식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돼야 한다.
 
또한 창업기업의 성장을 위해 정부와 공공이 혁신의 유효 소비시장 역할을 해야 한다. 실리콘 밸리의 혁신 기업들이 대부분 민영이지만 초기 생성 시기를 보면 30여년간 정부 및 군의 신기술 연구개발 납품이 주를 이루었다. 반면 우리나라 정부 및 공공부문의 사업은 혁신 창업기업의 유효시장이 되지 못하고 있는데, 이는 오랜 실적과 관계를 가진 회사들이 납품을 하게 되어 스타트업이 이 시장을 발판으로 삼아 성장하기는 매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한국 정부가 일자리 창출과 경제 활성화를 위해 쓰고 있는 창업 관련 예산은 창업 기업 수만 늘릴 뿐 결국 스타트업들 상당수가 정부 지원 예산에 의존한 '좀비' 기업이 되는 것이다.
 
현 정부 들어 노동자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에 대한 논의는 많아지고 있으나 혁신 창업 사업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에 대해서는 개념조차 정립돼 있지 않다. 우리는 혁신 창업에 도전하는 사업가들에게 할복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전성민 가천대 경영대학 글로벌경영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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