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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노년층이 가난에서 탈출하는 법
2018-11-13 06:00:00 2018-11-13 06:00:00
지난달 한국 전체인구 중 65세 이상이 차지하는 비율이 14%(711만5000명)를 넘어 ‘고령사회’가 되었다. 지난 2000년 이른바 ‘고령화사회’로 진입한 후 17년 만의 일이다. 한국의 고령화 속도는 전 세계에서 유례없이 빠르다. 이 같은 속도는 고령화 진행이 제일 빠르다고 정평이 난 일본(24년)도 앞지르는 수준이다.
 
고령사회는 어찌보면 국민의 수명이 길어졌다는 이야기니 박수치고 환영할 일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마냥 그렇게 받아들일 수만은 없다. 노인의 빈곤화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기 때문이다. 전체 한국 노인 50% 이상이 빈곤 속에 살고 있다는 통계도 있다. 그렇다면 이 절반은 어떤 노인들인가. 이들에 대한 연구를 서두르고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프랑스도 고령사회로 진입한지 오래다. 프랑스 국립통계연구소에 따르면 2018년 65세 이상 프랑스인은 19.6%(1317만 여명)로 20년 전(15.6%)보다 4%포인트 증가했다. 흔히 프랑스는 우리보다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는 나라로 알려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고령화사회의 노인빈곤은 우리만큼 심각하다.
 
일간지 르 피가로(Le Figaro)가 프랑스 보건부 통계국의 연구 자료를 입수해 보도한 것을 보면, 53~69세 프랑스인 중 1400만 명이 직장이나 퇴직연금도 없이 가난의 문턱에서 허덕이고 있다. 이 연구에 따르면 빈곤의 수렁에 빠진 노인층 중 3분의 2가 여성이고, 이들의 평균 연령은 58세다. 건강 상태도 문제다. 29%가 건강이 나쁘거나 아주 좋지 않고, 30%는 장애인 판정을 받았다. 게다가 그들 중 절반은 졸업장이 없거나 오직 초등학교 수료증만을 가지고 있고, 27%는 일을 하고 있지만 대부분 육아보조나 가사 도우미를 하고 있다. 그리고 40%는 퇴직을 했고 13%는 실업자다. 이 연구는 이들이 “노동시장으로부터 멀어진 걸 느끼고, 크게 낙담하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일도 없고 연금도 없는 이들은 아직 직장을 다니고 있거나 퇴직을 한 사람들보다 빈곤에 더 노출돼 있다. 이들은 매달 1265 유로(한화 162만원) 이하의 수입으로 살고 있는데 이 중 정부로부터 매월 받는 생활보호비가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는 직장을 다니고 있는 시니어들(2090유로·한화 약 236만원)과 퇴직자들(1860유로·한화 약 210만원)보다 훨씬 적다.
 
반면 프랑스 노인층 중 4분의 1은 최상위층 세대의 40%를 차지한다. 부양해야 할 자녀가 없는 60대의 기혼 여성, 그리고 자격증을 가지고 있는 여성은 대부분이 주택 소유주이고, 건강도 양호하다는 사실을 이 연구는 밝혀냈다.
 
이처럼 프랑스에서도 노인층의 양극화가 심각한다. 가난한 노인들은 학력이 낮거나 자격증이 없는 여성들, 특히 혼자 사는 여성들이 상당수를 차지한다. 결국 빈곤의 수렁에 빠지지 않고 한 평생을 살기 위해서는 배우고 자격증을 따는 길이 최선임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최근 프랑스에서는 40·50대, 심지어 60대에도 다시 배움의 길을 걷는 움직임이 한창이다. 직업을 바꾸기 위해, 전문성을 높이기 위해, 새로운 능력을 쌓아 일자리를 찾기 위해서 등 다시 공부를 시작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다시 말해 생활을 바꾸거나, 회사를 바꾸거나, 직업을 바꾸고 싶어 다시 배움의 길로 들어서는 것이다.
 
혹자는 ‘50대 이후 공부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과연 좋은 생각일까’라고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프랑스의 연구에 따르면 50대가 넘으면 다양한 사회생활 이력으로 노동시장도 잘 알고 자신에 대한 통찰력이 더 높기 때문에 너무 많은 환상을 갖지 않는다. 따라서 노년층은 보다 구체화된 공부를 다시 할 기회를 포착해 직업이나 인생궤도 수정을 하는데 유리한 안목을 가지고 있고, 50대는 20대와 달리 직장생활 말년에 새로운 방향전환을 하려는 목적이 있어 학업 동기가 더욱 높다고 한다.
 
이들은 수업료를 내고 집에서 우편이나 이메일, 전화, 스카이프를 이용해 공부하며 저녁에는 시청에 나가 무료강좌를 듣기도 한다. 또한 국가 공인단체에서 제공하는 양질의 각종 연수를 받거나 구직센터가 제공하는 교육을 받는다.
 
한국도 고령사회의 빈곤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 각종 처방전을 서둘러 내놓을 때다. 정부의 노인빈곤 정책개발에는 시니어들이 100세 시대를 그나마 좀 여유롭게 살 수 있도록 재교육을 통해 직업 전환을 할 수 있는 각종 전문교육 프로그램이 포함되어야 한다.
 
한국에서는 사설학원이나 대학 내 특수대학원·평생교육원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고 진로변경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곳은 비용이 너무 많이 들어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없는 폐단이 있다. 지자체 차원에서 양질의 무료 강좌를 개설해 노년층이 원하면 누구나 무료로 공부할 수 있는 시설을 조성하라. 교육은 젊은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이든 사람에게도 가난을 구제하는 가장 큰 수단이다. 이 점을 명심해 정부는 노년층 교육에 많은 투자를 하기 바란다.
 
최인숙 고려대 평화와민주주의연구소 연구교수·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sookjuliette@yahoo.fr)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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