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완성차 업계가 단순한 탈것의 경계를 넘어 하나의 거대한 플랫폼 시장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생성형 인공지능(AI)과 에이전트 기술이 차량에 직접 탑재되면서, 운전자의 지시 없이도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이는 기술들이 각광받고 있습니다. 이 흐름은 자동차를 넘어 인간의 일상 전반으로 확장되고 있으며, 완성차 업체들에는 차량 판매를 뛰어넘는 새로운 수익 방식도 열어주고 있습니다. 세 차례에 걸친 기획기사를 통해 자동차 산업의 대전환을 짚어봅니다._편집자 |
[뉴스토마토 표진수 기자] 자동차 산업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가고 있습니다. 자동차(Car)와 진화(Evolution)의 합성어인 ‘카볼루션(Carvolution)’ 시대가 본격화하면서, 차량은 운전자를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수단을 넘어 소프트웨어와 AI 중심의 스마트 디바이스로 탈바꿈하고 있습니다. 엔진 출력이나 연비가 차의 가치를 결정하던 시대는 저물고, 이제는 차 안에서 어떤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브랜드의 경쟁력을 좌우하는 시대가 됐습니다. 글로벌 소프트웨어 중심차량(SDV) 시장은 2023년 270억 달러에서 시작해 2034년에는 7000억 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자동차 산업의 패러다임 전환이 수치로 입증되는 셈입니다.
현대차그룹,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사진=현대차그룹)
탑승자 중심 ‘소프트웨어 AI’
이러한 변화의 핵심에는 탑승자 중심의 맞춤형 소프트웨어 AI가 있습니다. 특히 메르세데스-벤츠는 완성차 업계 최전선에서 이 흐름을 이끌고 있습니다. 자체 개발한 운영체제 ‘MB.OS’에 기반한 4세대 MBUX(Mercedes-Benz User Experience)는 마이크로소프트와 구글의 인공지능을 하나의 시스템에 통합한 최초의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으로, 개인화는 물론 운전자와 차량 간의 직관적인 상호작용을 새롭게 제시합니다. 단순한 기술 도입을 넘어, 차량을 하나의 연결된 AI 플랫폼으로 재정의하겠다는 선언입니다.
기존의 차량용 음성 인식 시스템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에어컨 켜줘”, “라디오 채널 변경해줘”와 같은 단순한 차량 제어나 미리 정해진 명령어 인식에 그쳤습니다. 조금이라도 다른 표현을 쓰거나 맥락이 바뀌면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습니다. 반면 새로운 시스템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빙 검색 엔진과 오픈AI 서비스의 챗GPT를 통합해 최신 정보를 검색하고 자연어로 응답을 생성하며, 사용자는 대중 문화·건강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 질문할 수 있고 시스템은 화자의 의도를 파악해 모호한 언어에도 적절히 응답할 수 있습니다.
운전 중 조작 방식도 진화했습니다. 음성 비서는 “헤이 메르세데스”라고 말하거나 스티어링 휠의 음성 버튼을 눌러 활성화할 수 있으며, 완전 핸즈프리로 작동해 운전 중 안전성을 확보했습니다. 이 기능은 MBUX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장착된 300만 대 이상의 차량에 무료 업데이트로 제공될 예정입니다. 새 차를 사지 않아도 기존 차량이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만으로 진화한다는 점에서, 자동차 소비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벤츠 MBUX 멀티미디어 시스템. (사진=벤츠 홈페이지)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은 “메르세데스-벤츠는 Chip-to-Cloud 구조로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혁신 주기를 분리하고, 모든 센서와 액추에이터를 중앙 제어·표준화해 소형차에서 대형차까지 확장 가능한 플랫폼을 추진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말하는 비서 넘어 ‘인포테인먼트 생태계’로
이번 AI 통합이 갖는 의미는 단순히 말 잘하는 비서를 탑승시키는 것에 그치지 않습니다. 운전자는 길 찾기, 냉난방 조절 등 단순한 수준을 넘어 공연 티켓을 예매하거나 여행 계획을 세우는 등 복잡한 명령을 처리할 수 있게 됐습니다. 기존에 스마트폰으로 처리하던 정보 검색, 일정 관리, 예약 등을 이제는 음성만으로 해결할 수 있게 됐습니다. 차량 안에서 모든 것이 완결되는 ‘인포테인먼트 생태계’가 현실화하고 있는 것입니다.
MBUX 버추얼 어시스턴트는 생성형 AI를 통해 차량과 운전자 사이의 관계를 혁신적으로 변화시켜, 복잡한 다 턴(multi-turn) 대화와 단기 기억도 가능합니다. 앞서 나눈 대화의 맥락을 기억하고 이어가는 방식으로, 차량 AI는 점점 대화 상대에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새로운 MBUX 가상 어시스턴트는 자연, 예측, 개인, 공감 등 4가지 성격 특성을 갖추고 있으며, 사용자에게 필요한 정보를 더 명확하게 제공하기 위해 되묻기도 합니다.
구글맵에서 제공하는 위성지도 시스템, (사진=벤츠)
벤츠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신형 CLA에 AI를 한층 고도화해 탑재했습니다. 구글 클라우드와 제휴해 구글 맵스 플랫폼과의 통합으로 2억5000만 개의 장소에 대한 방대한 데이터베이스에 실시간으로 접근할 수 있게 됐습니다. MBUX 슈퍼스크린에서는 스마트폰처럼 개별적으로 이름이 지정된 폴더로 앱을 그룹화하는 등 소비자 취향에 맞춰 화면을 구성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데이터 플랫폼’이 되다
카볼루션의 진화는 여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탑승자 맞춤형 AI가 자리를 잡으면, 차량은 자연스럽게 방대한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모빌리티 데이터 플랫폼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미 일부 차량은 운전자의 기분까지 파악해 적절한 조명과 음악을 제안하는 단계에 이르렀고, BMW의 iDrive 시스템은 운전자별 프로필을 저장해 시트 위치, 미러 각도, 선호 온도까지 자동으로 조정하며 가족 구성원마다 다른 설정을 기억하고 적용합니다. 차량이 탑승자를 가장 잘 아는 디지털 동반자로 거듭나고 있는 것입니다.
LG경영연구원은 보고서에서 “생성형 AI는 자율주행 경험을 고도화하고 운전 편의성을 향상시키며 차량 관리 및 엔터테인먼트를 최적화할 수 있다”며 “AI 기술의 빠른 변화를 지속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생성형 AI를 자동차 특성에 맞게 효과적으로 적용하기 위한 통합적 역량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2편에서는 생성형 AI를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물리적으로 행동하는 ‘피지컬 AI’가 자동차 산업과 일상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표진수 기자 realwater@etomato.com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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