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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법농단 특별법' 표류…결국 법관이 법관 재판?
수사 마무리 단계 불구 법사위 여전히 '검토 중'…재판 '공정성' 의문 제기
2018-09-27 02:00:00 2018-09-27 02:00:00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사법농단 의혹’ 사건 재판을 특별재판부가 아닌 지금의 일반 형사재판부가 맡을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비록 법원이 기각했지만, 수사 중 첫 구속영장 청구대상이 확정되면서다. 허경호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추석 연휴 전인 지난 20일 공무상비밀누설 및 직권남용 등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유해용 전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에 대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를 기각했다.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으로 재직하면서 사법농단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 유해용 전 대법원 선임재판연구관이 영장실질심사를 받기위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출석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피의자 구속 최장 20일
 
 
비록 기각됐지만 유 전 재판연구관에 대한 검찰의 사전 구속영장 청구는 이번 수사와 재판과 관련해 상당한 의미를 갖는다. 형사소송법상 공안사범 외의 피의자에 대한 구속기간은 최장 20일이다. 최초 구속수사 10일 이후 구속 상태 유지가 요구된다면 한 번 더 연장할 수 있는데, 그 최장기간이 10일이다. 
 
결국, 검찰이 사법농단 수사와 관련해 특정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하고, 영장이 받아들여진다면 구속기간이 만료되는 최초 구속일로부터 늦어도 20일이 지나기 전에 구속피의자를 기소해야 된다. 재판 절차 상 피의자가 기소되면, 1심 법원(이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법)에서는 이 사건을 심리할 재판부를 선정해 배당하게 된다. 그 기간은 불과 2~3일이다. 유 전 재판연구관이 구속됐다면 10월 중순쯤에는 기소돼 10월 하순에 ‘사법농단’ 첫 재판이 열리는 것이 산술적으로 가능했다는 것이다.
 
"대법원장 조치, 공정성 확보 부족" 
 
현재 사법농단 의혹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를 받거나 수사선상에 오른 법원관계자들은 대부분 형사 재판부에 근무 중이다. 김명수 대법원장이 사법농단 의혹 연루 법관들을 재판업무에서 제외시켰지만 공정성을 확보할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법조계 시각이다. 
 
기업총수들이 비리사건으로 기소되는 경우 우선적으로 찾는 것이 담당 재판부와 관련이 있는 변호사들이다. 혈연·지연·학연 등에 기대보자는 시도다. 전관예우 문제가 생기는 것도 여기서 부터다. 한 고위 검찰출신 변호사는 “현직 형사재판부 법관들에 대한 재판을 동료법관들에게 맡기는 것은 넌센스”라고 지적했다.
 
의원 56명 8월17일 특별법 발의 
 
이런 모순을 해결하기 위한 ‘특별재판부 구성’의 필요성은 지난 7월30일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재야 법조계에서 처음 제기했다. 서울지방변호사회(회장 이찬희)가 주최한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 공청회’에서다.  
 
이후 박 의원 등 의원 56명은 지난 8월17일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기간 중의 사법농단 의혹사건 재판을 위한 특별형사절차에 관한 법률안'을 발의했으나 소관회의인 법제사법위원회에 회부된 뒤 두 달 넘게 진전이 없다. 제정안에는 특별재판부가 기소 후 본안사건 뿐만이 아니라 기소 전 구속영장에 대한 심리도 맡도록 돼 있다. 언제든 재판이 열릴 수 있는 상황에서 결국 멈춰 있는 특별법 제정이 검찰수사의 발목을 잡고 있는 셈이다. 추석 연휴가 끝났지만 10월10일부터 국정감사가 예정돼 있어 10월 내 처리가 불투명하다.
 
법원 "위헌시비 발생 우려"
 
법원은 국회의 입법작용에 대한 문제인 만큼 입을 다물고 있다. 내부에서는 특별재판부 도입을 두고 찬반이 엇갈리지만 특별법의 위헌성을 공통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류영제 춘천지법 판사는 지난 7월30일 열린  ‘사법농단 특별법 제정 공청회’에서  “특별재판부 구성은 셀프재판을 벗어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지만 헌법 규정상 법관 아닌 사람이 구성되는건 힘들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또 “국민참여재판 의무화도 공감하는 바가 크지만 국민참여재판 도입 사법제도 개혁추진위원회가 강제주의랑 신청주의를 고민하다가 신청주의를 채택했다"면서 "강제주의가 무조건 위헌이라는게 아니라 위헌시비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10월 내 처리도 불투명 
 
검찰 수뇌부 출신의 한 변호사는 “특별법 제정이 빨리 해결됐더라면, 이번 사건 수사와 재판이 훨씬 빨리 진행됐을 것”이라며 “검찰로서는 수사와 공소유지에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검찰은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대검찰청의 한 고위 간부는 “아직 수사 중인 상황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검찰은 지금 있는 시스템 하에서 움직인다. 수사로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 위해 노력할 뿐”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이 간부는 “검찰이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성격의 사건이 아니다. 국회가 작동돼야 한다. 법원도 스스로 개혁적 의지를 보여야 한다”면서 “상당한 기간이 지난 다음에 이 문제가 지적되고 있는 것은 안타깝다”고 했다. 
 
수사팀은 특별법 제정 등은 염두에 두고 있지는 않다는 입장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원칙에 따라 수사할 뿐이다. 다만, 공정한 판단이 이뤄지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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