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기 기자
(피플)20년 영어강사와 개발자의 만남…"말문 트이는 모바일 학원 합작"
김태윤 영어강사·백성남 유봇 대표
2018-09-21 06:00:00 2018-09-21 06:00:00
[뉴스토마토 박현준 기자] 평균적인 한국인이라면 초·중·고를 거치며 12년간 영어를 공부한다. 하지만 막상 외국인을 만나면 입을 떼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말하기 교육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입을 모은다. 한국의 영어 교육은 전통적으로 읽기와 쓰기, 듣기 중심으로 진행됐다. 교과서의 원문을 읽고, 교사의 설명을 듣고, 시험 문제를 푸는 방식이다. 영어 공부의 1차 목적은 원하는 대학 진학을 위해 수학능력시험 외국어영역에서 고득점을 받는 것이다. 이후에는 취업을 위해 토익에서 고득점을 올리는 것이 새로운 목표가 된다. 그래서 또 다시 읽기와 듣기 공부에 집중한다. 말하기 교육은 또 뒷전이 된다. 최근 몇 년 사이 학원과 영어 학습 서비스 기업들이 말하기 교육을 선보였지만 오랜 기간 학교에서 익힌 전통적인 영어 공부 방식을 떨치기 쉽지 않다. 듣기와 읽기에는 익숙하지만 직접 말하기는 여전히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익훈어학원' 시절 토익과 말하기 명강사로 이름을 날린 영어강사 김태윤씨는 20년간 오프라인에서 영어 말하기 수업을 하며 수강생들이 말을 하는 능력을 기르도록 하기 위해 힘을 쏟았다. 김씨는 많아야 수십 명에게 강의를 할 수 있는 오프라인의 한계를 뛰어넘고 싶었다. 그런 고민 끝에 떠올린 것이 모바일이다. 고민이 깊어지던 지난해 여름, 그는 챗봇 전문기업 '유봇'과 인연이 닿았다. 
 
김태윤 영어 강사가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사무실에서 스피킹 매트릭스 앱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박현준 기자
 
2년간 서비스 개발…"오프라인 수업을 모바일로"
 
김씨가 모바일로 영어 말하기 수업을 구현하는 것에 대해 고민하자 그의 수강생인 모바일 스타트업 홍보 담당자가 챗봇 전문 기업을 제안했다. 홍보 담당자와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유봇'이었다. 김씨는 흔쾌히 제안에 응했고 지난해 8월 백성남 유봇 대표와 만났다. 당시 유봇은 교육 챗봇 서비스를 하고 있었다. 학원 수강생들이 챗봇을 통해 시험을 보고 결과를 취합하는 역할을 하는 서비스였다. 말하기 수업을 모바일로 구현하는 것은 백 대표에게도 새로운 도전이었다. 오프라인의 말하기 수업을 시스템화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 대표도 양질의 말하기 수업을 더 널리 공급하자는 취지에 공감하고 김씨와 모바일 영어 말하기 학원을 만들자고 뜻을 모았다.
백 대표는 "일상과 직장 생활에서 일어날 수 있는 각 경우를 시나리오로 만들어 각 학습단계에 제시한다면 스스로 영어 공부를 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당시 유봇은 기존의 챗봇에 말하기 기능이 추가된 스피킹 봇을 개발하고 있었다. 약 1년6개월에 걸쳐 개발된 스피킹 봇에 김씨의 말하기 공부 방법 '스피킹 매트릭스'를 적용하는데 약 6개월이 소요됐다. 스피킹 봇과 스피킹 매트릭스 적용 기간을 합쳐 총 2년의 개발 기간이 소요됐다. 김씨는 앞서 스피킹 매트릭스를 책으로 내기도 했다. 유봇의 음성을 인식하는 부분에는 구글의 음성인식 플랫폼이 적용됐다. 음성 데이터를 분석하고 공부 방향을 제시하는 등의 판단을 하는 것은 유봇이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지능(AI) 플랫폼이 맡았다. 
 
두 사람은 모바일 영어 말하기 학원을 만들자는 목표는 같았지만 강사와 개발자의 입장 차이도 있었다. 말하기를 유도하기 위한 서비스의 방향을 제시한 김씨의 의견과 실제로 사용자들은 다른 방향으로 서비스를 주로 이용한다는 백 대표의 의견이 갈리기도 했다. 김씨는 "오프라인 강의에서는 수강생들의 표정이나 행동을 보면 얼마나 이해했는지, 어떤 상태인지 알 수 있지만 모바일은 그게 어렵다"며 "수업의 방향과 사용자들이 원하는 방향의 접점을 찾고자 노력했다"고 말했다. 
 
스피킹 매트릭스 앱에서 사용자가 말한 것에 대한 평가를 해주는 화면(왼쪽)과 공부한 양을 보여주는 그래프 화면. 사진/유봇
 
4개월 만에 3000명 유료 가입자…반드시 영어로 발음해야 다음 단계로
 
그렇게 탄생한 것이 스피킹 매트릭스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소프트웨어나 앱의 서비스를 구독하는데 돈을 지불하는 것에 신중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김씨와 유봇은 올해 5월 출시된 앱으로 약 4개월만에 약 3000명의 유료 가입자를 모았다. 두 사람은 이같은 성과에 대해 말을 유도하기 위한 서비스의 목표에 소비자들이 호응한 것으로 평가했다.
스피킹 매트릭스 앱은 ▲인풋 ▲아웃풋 ▲트레이닝 등 3단계로 구성됐다. 인풋에서 하나의 표현에 대해 김씨가 음성으로 설명해주는 1분간의 동영상 강의가 나온다. 가령 '일어나다'라는 뜻의 'get up'이란 표현에 대해 김씨가 설명을 해주면 사용자가 직접 스마트폰의 마이크에 대고 표현을 말을 해야 한다. 반드시 말을 해야 다음 단계로 넘어갈 수 있다. AI 플랫폼은 사용자의 발음을 듣고 원어민이 얼마나 이해했는지를 수치로 보여준다. 아웃풋에서는 인풋에서 배운 표현과 표현을 이어 문장 단위로 직접 말해보는 훈련을 거친다. 자신이 원하는 문장을 말하면 이에 대한 평가도 내려준다. 트레이닝 과정에서는 표현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 때까지 훈련을 반복한다. 일상과 직장에서 쓸 수 있는 표현을 중심으로 한 720개의 시나리오가 마련됐다. 스피킹 매트릭스는 사용자가 3개월 내에 약 1분간 자신이 원하는 말을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김씨와 백 대표는 스피킹 매트릭스와 다른 영어 학습 서비스의 차별점을 공부하도록 유도하는 점을 꼽았다. 김씨는 "인풋만 많이 하고 아웃풋을 하지 않는다면 마치 선생님이 잔소리를 하듯이 아웃풋을 해보라는 알림을 준다"며 "어떤 표현을 떠올렸을 때 한국어와 영어가 동시에 떠오르는 단계까지 이르도록 도와준다"고 말했다. 백 대표는 스피킹 매트릭스를 에스컬레이터에 비유했다. 에스컬레이터에 오르면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위로 올라간다. 스피킹 매트릭스 서비스를 이용하기 시작하면 공부를 하도록 이끌어간다는 의미다.
 
김씨는 오는 10월부터 유튜브 방송도 시작할 계획이다. 스피킹 매트릭스로 공부하는 사용자들의 발음을 직접 듣고 바로 조언을 해주는 온라인 강의다. 그는 "진짜 말하기를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유도해주기 위해 방송을 준비했다"며 "몇몇 사람들의 발음을 듣고 평가하면 이를 듣는 다른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피킹 매트릭스 3000명의 유료 가입자의 연령대는 30대부터 60대까지 다양하다. 김씨와 백 대표는 다양한 연령대에서 영어로 말하고 싶은 욕구가 크다는 것을 느꼈다. 김씨는 "꼭 전문적으로 영어 말하기를 잘하는 수준까지는 아니더라도 1분 정도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상 대화를 할 수 있는 능력을 기르고 싶다는 욕구가 많았다"고 말했다. 
 
스피킹 매트릭스에는 한 사용자당 하루에 약 10분 분량의 음성 데이터가 쌓인다. 보통 한국인들의 영어 발음이 담긴 음성 데이터다. 스피킹 매트릭스만이 보유한 데이터로, 이는 향후 서비스 고도화에 필요한 소중한 자산이다. AI 플랫폼이 이 데이터를 바탕으로 학습하며 진화한다. 이동통신사와 제조사 등 정보통신기술(ICT) 기업들은 양질의 데이터에 목 말라있다. 유봇의 음성 데이터가 AI 고도화뿐만 아니라 새로운 사업기회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이유다. 
 
스피킹 매트릭스의 목표와 향후 계획은 보다 많은 이들이 영어로 말하도록 하는 것 밖에 없다. 두 사람은은 "한국인이 영어로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도록 할 것"이라며 "스피킹 매트릭스가 말문을 트이도록 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박현준 기자 pama8@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

지난 뉴스레터 보기 구독하기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