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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성 소장 "헌법재판권, 권력으로 생각하면 오만·과욕"
재판관 5인 동시 퇴임…"보람·걱정·아쉬움"
김창종 재판관 "재판 폭증…대책 마련해야"
2018-09-19 15:30:19 2018-09-19 15:30:19
[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이진성 헌법재판소장과 김이수·김창종·안창호·강일원 재판관 등 헌법재판관 5명이 19일 6년간의 임기를 모두 마치고 퇴임했다. 이날부터 헌재는 후임 재판관들에 대한 임명 지연으로 4인 체제가 됐다. 전원합의부 평의가 불가능한 상황으로 사실상 헌재 기능이 정지된 것이다. 
 
이날 퇴임한 헌법재판관들은 헌법재판소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헌법재판의 독립을 강조하는가 하면, 정당해산심판·탄핵심판 등 국가적으로 심대한 사건을 유난히 많이 다뤘던 임기 기간 동안의 소회를 털어놨다. 
 
이진성 헌법재판소장이 19일 헌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퇴임사를 하고 있다. 사진/헌재
 
이 소장은 이날 헌재 대강당에서 열린 퇴임식에서 헌법재판소의 권력화를 경계했다. 그는 “헌법재판소가 헌법재판권을 가진 기관이지만 그것은 권력이나 권한일 수 없다“면서 ”재판다운 재판을 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이자 책임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권력으로 생각하는 순간 삼가지 못하고 오만과 과욕을 부릴 수 있고 자신의 논리만을 고집하며 그 논리에 갇혀 있을 수 있다“며 ”헌법을 거울삼아 우리의 마음을 열어 국민들의 목마름을, 간절한 마음을 가슴으로 느꼈으면 좋겠다“고 헌재 구성원들에게 당부했다.
 
이 소장은 또 “헌법재판소는 재판관 구성에 관해 어떠한 권한도 없어, 헌재가 지명 권한을 가진 국가기관의 입김에 흔들릴 것을 염려하는 시각이 있지만, 이 때문에 다른 기관과 구성에 관해 협의할 일이 없다”고 지적하고 “오직 재판관들이 재판소 구성권자와 결별하겠다는 의지를 굳건하게 지님으로써 헌법재판의 독립은 확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독립성을 바탕으로 불완전한 민주주의를 완성시키는 나침판 역할을 하는 헌법재판을 더욱 발전시켜 달라”고 강조했다.
 
김이수 재판관
소수의견, 진보적 의견을 많이 피력한 김이수 재판관은 “취임 시 국민의 세미한 목소리에도 귀 기울이겠다, 헌법재판이 소수자를 배려하고 사회적 약자의 안전망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약속했지만, 회고해보면 쉽지 않은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특히 “한국사회에서 입지가 미약했던 진보정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고뇌의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대통령탄핵 사건의 변론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팽팽한 긴장의 시간들도 있었다”면서 “그밖에 다른 사건들에서도 저의 능력의 한계로 잠을 이루지 못한 날도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헌법재판소는 30년의 연륜이 쌓이면서 이제 헌법의 최종적 해석자, 수호자로서 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상징으로 자리매김을 하고 있지만 아직도 우리 사회는 차별과 편견 그리고 소외로 인해 그늘진 곳이 있다”고 지적하고 “헌법의 따뜻한 기운이 어둡고 그늘진 곳에도 고루 퍼져나가 이 나라가 더욱 건강하게 발전하기를 간절히 원한다”고 밝혔다.
 
김창종 재판관
김창종 재판관은 이미 수용 한계를 넘긴 헌재 사건처리에 대한 대책마련을 촉구했다. 김 재판관은 “지난 6년 동안 5기 재판부가 처리한 사건을 정리해 보니, 총 접수건수가 무려 1만3009건이었고, 그 중 3215건을 전원재판부에서 종결 처리했다”고 밝히고 “제가 주심으로 처리한 사건이 1671건이고, 그 중 380건을 전원재판부에서 종결 처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사건 수가 이처럼 많은 것을 보면, 국민들이 헌법재판을 통한 기본권 보장을 얼마나 열망하고 있는지를 쉽게 짐작할 수 있지만 담당한 사건이 많다 보니, 어떨 때는 좀 더 신중히 숙고하고 연구하여야 할 사건을 시간에 쫓겨 서둘러 처리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남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김 재판관은 이어 “앞으로 날로 증가하는 사건을 어떻게 하면, 선택과 집중으로 적정한 기간 내에 효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을지에 관한 진지한 연구와 명백히 이유 없거나 이미 부적법 각하된 바 있었음에도 계속, 반복적으로 같은 내용의 헌법소원을 제기하는 남소를 방지할 대책을 조속히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창호 재판관
재판관들 중 유일하게 검찰 출신이었던 안창호 재판관은 국민을 향한 자신의 꿈을 이야기 했다. 그는 “갈등과 반목의 골이 평탄케 되고 마음이 상한 분들이 치유함을 얻고 국민 모두가 서로 사랑하는 공동체에 대한 꿈, 우리 구성원 모두가 자유롭고 평등하며 안전하고 행복하며 도덕적으로는 수준 높고 물질적으로도 풍요로운 그런 국가공동체에 대한 꿈이 있다”고 믈했다. 
 
안 재판관은 특히 “이제 북한 땅에서도 자유롭게 원하는 것을 말하고, 자유롭게 신앙하며, 결핍과 공포로부터 자유로운 그런 곳이 되는 꿈이 있다”고 밝히고 윤동주 시인의 서시를 낭독하며 퇴임사를 맺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 주심을 맡았던 강일원 재판관은 왕성했던 국제 활동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강 재판관은 "지난 6년간 많은 국제행사에 참석에 참석하면서 분명하게 확인한 것은 정말 우리나라가 우리 스스로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전세계에서 아시아 최고의 헌법재판소이고 아시아에서는 가장 발전한 민주주의 국가라고 인정받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강일원 재판관
그러나 그는 "다만, 아쉬운 것은 세계최고는 아니라는 것"이라며 "경제적인 면에서 세계 최고가 되려면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자유, 평등, 정의를 추구하고 실현하는 데는 그저 우리의 의지, 그리고 공동체 의지 하나만 있으면 된다"고 강조했다.
 
27년간 법관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헌법재판관이 된 그는 이날 퇴임한 헌법재판관 중 유일하게 "멀리서 찾아와 주신 법원 가족여러분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말로 퇴임사를 맺어 눈길을 끌었다.
 
앞서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 8월21일 두 후보자를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지명하고 이들에 대한 인사청문요청서를 지난 8월27일 접수한 국회에 접수했다. 그러나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지난 10일과 11일 이석태·이은애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각각 연 뒤 14일 전체회의를 개최할 계획이었으나 자유한국당 등 야당의 반대로 회의 자체를 열지 못했다.
 
법사위는 오는 20일 전체회의를 다시 열 예정이지만 이들 두 후보자와 함께 유남석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와 김기영·이종석 헌법재판관 후보자 등에 대한 인사청문경과보고서 채택까지 몰리면서 후보자 전체 통과가 불투명한 상황이다.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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