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노엘 갤러거, '아름다운 세계'로의 초대
관객 4700명과 음악으로 교감…"한국 팬들 보고 싶었다"
입력 : 2018-08-17 11:57:13 수정 : 2018-08-27 10:03:56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주목하세요! 주목! 신사 숙녀 여러분, 국경이 폐쇄됩니다 숨을 들이 쉬세요, 일산화탄소를 들이 쉬세요. 편히, 고이 잠드시길. 이건 단지 세상의 끝일 뿐이에요. 단지 세상의 끝일 뿐이랍니다.”
 
확성기를 든 여성이 불어를 속사포처럼 쏟아내자 순간 ‘세계의 종말’이 온 듯 했다. 거대한 전광판에는 ‘르메니즘(l'humanisme·인본주의)‘이란 텍스트와 함께 빌딩 숲으로 가득한 도시, 총을 든 군사들, 유골 더미 등의 사진 컷들이 흘러간다.
 
잠시 뒤 재빠르게 미래를 향해 감기는 시계태엽과 환하게 비춰지는 오로라 빛 조명. 종말 같은 세상의 끝에서 노엘 갤러거가 찬란한 희망의 빛으로 뒤덮일 ‘아름다운 세계’를 갈망하듯 목소리를 곧게 세운다. “아름다운 꿈이에요, 아름다운 밤, 아름다운 세상이죠.(‘It’s Beautiful World’ 후렴구)”
 
노엘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17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린 ‘노엘 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의 내한 단독공연. 지난해 발매한 정규 3집 ‘후 빌트 더 문?(Who Built The Moon?)’의 월드 투어 기념으로 열린 이번 공연에서 그는 익숙하면서도 확장된 음악 세계를 4700여 관객 앞에서 선보였다.
 
공연 예정 시각 전부터 그의 ‘아름다운 세계’에 초대된 관객들은 열광적이었다. 매표소 옆 MD 판매 부스는 시작 2시간 전부터 긴 줄이 늘어섰고, 티셔츠를 사자마자 갈아입을 정도로 열성이 대단했다. 노엘 팬들은 떼창 포인트가 적힌 ‘노엘 러브(NOEL LOVE)’라는 슬로건을 공유하며 서로를 독려했다.
 
공연은 8시 즈음 마치 우주선을 탄 듯한 ‘굉음’과 함께 시작됐다. 신명 나게 춤추며 “헤에헤”라 외치는 흑인 여성의 고성과 사이키델릭한 사운드가 종말에 다다른 황량한 지구 어딘가에 관객들을 내려놓는 듯 했다. 미국 남북전쟁 당시 지어진 요새 ‘포트 녹스(Fort Knox·공연 첫 곡)’를 최후의 보루로 삼은 그는 우리에게 “정신을 다함께 가다듬자(gotta get yourself together)”고 외쳤다.
 
세상의 끝에 ‘배수진’을 친 그는 아름다운 세계를 꿈꾸기 시작했다. 하늘에서 떨어진 ‘그녀’와 함께 춤을 추고(‘Holy Mountain’), 오래된 기타를 연주하며 몽키맨처럼 노래를 부르는(‘Keep On Reaching’) 낭만에 젖는다. 어느덧 50세를 넘은 노엘의 미래지향적 세계, ‘It’s Beautiful World’였다.
 
노엘갤러거 하이 플라잉 버즈(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노엘을 애기할 때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건 90년대 브릿팝 부흥을 이끌었던 밴드 오아시스다. 1991년 동생 리암 갤러거와 함께 결성한 밴드는 로큰롤의 역동적 리듬에 팝적 감성을 더하며 ‘비틀스의 재림’이란 평가를 받았다. ‘원더월(Wonderwall)’, ‘돈 룩 백 인 앵거(Don’t Look Back In Anger)’, ‘리브 포에버(Live Forever)’ 등 수많은 명곡으로 사랑 받았다.
 
2009년 동생과의 불화로 밴드는 해산하지만 노엘은 그 후 ‘Noel Gallagher's High Flying Birds’를 결성해 활동하고 있다. 밴드는 지금까지 총 3장의 정규 앨범을 발표했으며 모든 앨범은 UK 앨범 차트 1위를 차지하고 빌보드 등 세계 각국의 음악 차트 상위권을 기록했다.
 
“굿이브닝 서울, 모두들 어떻게 지냈지?”로 짤막한 인사를 건넨 그는 공연 중반부부터 오아시스의 명곡들을 들려주기 시작했다. ‘리틀 바이 리틀(Little By Little)’, ‘수퍼소닉(Supersonic)’, ‘왓에버(Whatever)’ 등이 울려 퍼지자 객석에서는 “오아시스”를 열광하는 구호가 들불처럼 번져나갔다.
 
특히 노엘은 ‘노엘 갤러거 어록’이란 별칭이 있을 정도로 독설과 유머를 오가는 특이한 화법으로로도 인기가 높다. 이날 공연장에서도 곡 중간, 중간 팬들은 그가 어떤 말을 던질까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느낌이었다.
 
노엘갤러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공연 반응이) 꽤 좋군. 다들 나 보고 싶었니? 나도 그랬어.”
 
중반까지 별다른 말 없던 노엘이 느닷없이 애정을 드러내자 ‘심쿵’한 관객들의 환호가 이어졌다. ‘원더월(Wonderwall)’을 부르기 전에는 한 관객이 노엘에게 대화를 시도하려다 주변 관객들의 웃음을 유발하자, 노엘은 센스있는 유머로 화답했다.
 
“(나에게 말을 건) 코미디언 어딨지? 그래, 너! 다음 곡은 너를 위한 곡이야.”
 
이날 부른 오아시스 곡은 대체로 피아노의 멜로디 감성이 두드러졌다. 강하고 거친 원곡보다 따스하고 부드러운 스타일로 편곡됐다. 음반에서 듣던 것과 다른 멜로디에 여기 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몇몇 팬들은 ‘노엘식 유머 독설’을 퍼붓기도 했다. “하 진짜. 너무 좋다고 짜식아!”
 
노엘 갤러거. 사진/라이브네이션코리아
 
9시20분 무대 뒤로 사라졌지만 팬들은 오아시스의 ‘리브 포에버(Live Forever)’를 열창하며 노엘을 다시 무대 위로 불러 냈다. 세계인들의 성가라 불리는 ‘Don’t Look Back In Anger’가 울려 퍼지자 4700명이 장내가 떠나갈 듯 상상 속의 그 인물 ‘샐리(Sally)’를 외쳐댔다.
 
“내가 이걸 들으려고!” 한 관객은 곡이 끝나자 이렇게 툭 던졌다.
 
“한 곡 더 있다”며 거수 경례를 한 노엘은 비틀스의 ‘올 유 니드 이스 러브(All You Need Is Love)’를 마지막 곡으로 선곡했다. 관객들이 곡에 맞춰 ‘노엘 러브(NOEL LOVE)’란 파란 슬로건을 하나, 둘 꺼내 들었다.
 
노엘이 꿈꾸던 ‘아름다운 세상’은 이런 것이었을까. 노엘과 팬이 주고 받는 음악적 교감이 파란빛 물결을 타고 실내 공연장을 뭉근하게 데웠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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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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