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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가 퇴장, 그 후)①보행자·건물주 '웃고', 운전자·임차인 '울고'
"탁 트인 경관·버스 전용차로 '만족'…교통 흐름 더뎌지고 길 건너 손님 더는 못 와"
2018-08-13 06:00:00 2018-08-13 06:00:00
[뉴스토마토 신태현 기자] 과거 산업화 시절 고가차도는 대규모 교통이 흐르는 '혈맥'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애물단지가 돼버렸다. 수십년간 노후화하면서 경관을 해친다는 불평이 빗발쳤고, 슬럼화가 진행되기도 했다. 서울시는 보행자 중심 정책을 표방하며 지난 2002년부터 고가 철거를 시작했다. 현재까지 18개가 '퇴역'했으며 8개도 앞으로 철거될 계획이다. 철거에 대한 평가는 양면적이다. 경관에 대한 긍정 평가가 압도적인 가운데, 보행자와 운전자의 입장이 엇갈린다. 상권과 관련해서는 대체로 부정적이다. 일부 지점에서는 매출이 감소하고 있다. 최근 한남2고가 철거 번복에서 보듯, 종종 혼선을 빚기도 한다. <뉴스토마토>는 고가 철거에 얽힌 각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대책을 짚어봤다.(편집자주)
 
서대문고가차도가 철거된 지 3년째다. 지난 1971년 준공된 서대문고가는 강북삼성병원부터 서울 지하철 5호선 서대문역을 거쳐 경기대입구 교차로까지 374m 길이로 뻗어있다가 지난 2015년 9월 철거됐다. 현재까지 가장 최근에 철거된 서울 고가이다. 지난 10일 찾은 지역은 철거에 대해 평가가 엇갈렸다. 경관이 좋아졌다는 데에는 한 목소리였지만 통행 편의성에 대한 입장은 엇갈렸으며, 상권 활성화 효과에 대해선 부정적 의견이 많았다.
 
"버스 전용차선 편해"vs"시간 2배 걸려"
 
철거 통행에 대해 운전자와 보행자의 의견이 엇갈렸다. 보행자들은 버스 중앙차선을 마음에 들어했다. 이날 회사 출근을 위해 버스에서 내린 박모(50대)씨는 "경기 구리시에서 출근하는데 전용차로가 생겨서 너무 좋다"고 말했다. 주민 A씨 역시 "예전에는 홍대 가기 위해 버스 타려면 교차로 끝으로 가야 했는데 지금은 사거리에 가까이 생겨서 편해졌다"고 말했다.
 
반면 자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철거에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서울 시내 자차 출퇴근자인 이모씨(35)는 "고가가 있을 때는 교통이 원활한 편이었는데, 지금은 광화문역에서 서대문역까지 신호가 5번도 넘게 걸린다"며 "신호 걸리는 게 싫어 우회하다보니 철거 전보다 2배 정도 더 걸리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이런 상황에서 한남고가까지 철거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정말 당황했다"고 덧붙였다.
 
역 근처에서 40년 넘게 산 주민 B씨 역시 "철거 직후에는 훨씬 더 막히더라"라며 "2~3년 지나서야 좋아지긴 했는데 거의 현상유지 느낌"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시가 서대문고가차도 철거 전후 평균 통행 속도를 측정한 바에 따르면, 출근시간대인 오전 8~9시와 퇴근시간대인 오후 6~7시에서 충정로·새문안로와 통일로의 속도가 시속 2km 가량 느려졌다.
 
고가 허물고 횡단보도 지우자 '손님 뚝'
 
고가 철거의 여파는 교통뿐 아니라 상권에도 영향을 미쳤다. 특히, 고가 양 끝에 있던 횡단보도가 없어지고 중앙에 있는 서대문역 교차로로 몰리면서 길 건너 손님으로 먹고 살던 가게들이 매출에 타격을 입었다.
 
서대문역 1번 출구 방향의 한 음식점 종업원 C씨는 "고가가 없어지면서 고가 끝에 있던 건널목과 고가 밑 주차공간까지 같이 없어졌다"며 "건널목 만들어줄 줄 알았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도로 건너편에서 걸어오거나 차 타고 올 손님들이 그만큼 줄었다는 뜻이다. 이어 "철거한다고 다들 좋아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우린 그래도 '맛집'으로 통해서 그나마 버틸만 하지만 다른 식당들은 죽겠다고 한다"고 전했다.
 
4번 출구 방향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버스 중앙차선 때문에 건널목이 없어지면서 매출이 15%는 줄어든 것 같다"며 "정책 자체를 바꿀 수 없다는 걸 알고, 원상복귀가 안되는 것도 아니니 횡단보도라도 만들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옆에서 이야기 나누던 사장의 누이는 "서울시에게 여러번 건의가 들어갔지만 바뀐 게 아무것도 없어 기대하지 않는다"며 고개를 저었다.
 
매출까지는 아니라도 실생활에 불편함을 느끼는 상인들도 있었다. 5번 출구 방향에 있는 한 국수 전문점 직원들은 "건너편에 있는 손님들이 이곳으로 어떻게 올지 곤란해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그 근처에서 10년 넘게 일해온 한식집 직원 D씨 역시 "식당을 가리던 고가가 사라져, 전화로 위치를 묻는 손님은 줄었다"면서도 "7년 넘게 이용한 횡단보도가 없어지는 바람에, 길 건너 시장에서 재료를 사려고 급하게 뛰어가곤 한다"고 말했다.
 
"임대료 오르는데 권리금 빼기는 '막막'"
 
임대료 '폭탄'을 맞았다고 분을 토하는 상인도 있었다. 서대문구 충정로2가동의 한 매점 주인은 "고가 들어섰다고 건물주가 월세만 올려서 150만원이 220만원으로 뛰었다"며 "경기가 어려워서 매출은 3분의1 내지 반토막이 났고 적자인데, 권리금 때문에 못 빠져나가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상권의 매출이 감소하는 것을 꼭 고가 철거 때문만으로 볼 수는 없다는 의견도 없지 않다. 10년 동안 서대문역 근처에서 한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채모씨는 "확 트인 사거리가 좋다"면서도 "고가를 철거하고 나서 매출이 약간 줄었지만 경기가 나빠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지역 부동산업계에서는 철거가 상권에 미친 긍정적인 영향은 없는 편이라는 게 중론이었다. 건물주 입장에서는 고가로 인한 부동산 가격 상승은 이미 과거의 일일 뿐이고, 상인 입장에서도 단순히 고가 철거만으로 없던 수요가 생기지 않고, 임대인이나 위치에 따라선 오히려 손해보는 지역도 생긴다는 것이다.
 
S공인중개사는 "부동산 가격이나 임대료 상승에서 고가 철거로 인한 상승분을 골라내는 건 어려운 일"이라며 "다만 (일부) 건물주는 경관 좋다고 임대료를 올리며, 건널목이 없어진 가게 상권은 다 죽는 등 개별적인 사례들은 있다"고 정리했다.
 
지난 10일 오후 서울 서대문역 교차로에서 시민들이 횡단보도를 건너고 있다. 사진/신태현 기자
 
신태현 기자 htenglis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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