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어주는기자)“자신 만의 속도로 살자, 늦어도 괜찮아!”
‘노오력’ 종용 사회서 일탈·위로…“더 잘 살려고 ‘열심히’ 살지 않기로”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했다|하완 지음|웅진 지식하우스 펴냄
입력 : 2018-08-09 18:00:00 수정 : 2018-08-10 09:11:0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태평양 한 가운데, 조난 당한 한 남자가 튜브를 붙잡고 있다. 그때 멀리서 똑같이 튜브를 잡은 한 여자가 헤엄쳐온다. 밤새 맥주를 마시며 이야기하던 둘은 각자의 안녕을 빌며 헤어진다.
 
여자는 그 자리에 남아 있겠다는 남자를 뒤로 하고 이틀 밤낮에 걸쳐 죽어라 헤엄쳐 결국 한 섬에 당도한다. 반대로 남자는 홀로 맥주를 마시며 표류한다. 결국 두 사람은 모두 구조대에 의해 구조되고, 몇 년 후 어느 고지대에서 생사를 확인하게 된다. 여자는 혼란스러워한다. ‘열심히 헤엄친 나와 똑같이 살아 있다니…’
 
‘남자가 운이 좋았네’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건 여자 쪽도 마찬가지였다. 죽기 살기로 헤엄쳤다한들, 구조대가 없었다면 살아남기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여자는 자신이 얻은 것은 노력이고 남자가 얻은 것은 운이라 생각하며 부당해 한다. ‘노오오력’에 대한 맹신과 배신. 무라카미 하루키의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에 나온 이 장면은 어떤 이유에선지 오늘날 청춘의 자화상처럼 낯설지가 않다.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의 저자 하완씨 역시 끝내주는 ‘노오오력’ 파였다. 20대 중반 4수 끝에 홍대 미대에 입학했고 그것이 인생을 ‘한 방’에 바꿔줄 거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보장된 인생’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었다. 대학 시절엔 일과 학업을 병행해야 했고, 졸업 후엔 일러스트레이터와 직장생활 투잡을 해야 했다. 시키는 대로 인내하며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사는 것을 진리처럼 여겼다. 하지만 마흔에 가까워 오니 서서히 몸도, 마음도 방전됐다. ‘인생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던 괴테의 말을 곱씹기 시작했다.
 
“에라, 더는 못 해 먹겠다. 그렇다. 마흔은 한창 비뚤어질 나이다. 그런 이유로 나는 결심했다. 이제부터 열심히 살지 않겠다고!”
 
곧바로 인생을 건 ‘실험’을 한다. 회사를 그만뒀다. 한 번쯤은 힘을 빼보고 살고 싶어서다. 모두 열심히 사는 세상이지만 그는 반대로 걸어보기로 했다. 애쓰지 않고 ‘둥둥’ 흘러가는 대로 가보는 삶. 성공일지, 실패일지 아직은 모른다. ‘노력 하지 않는 삶’은 처음이라 그도 걱정이 앞서지만 “설령 실패한들, 다시 열심히 살면 그만”일 일이다. 그는 더 잘 살기 위해 ‘열심히’ 살지 않기로 했다.
 
책 전반에 ‘노오오력’의 무게를 벗은, 그의 산책자적 시각이 영롱하게 빛난다. 1년 정도 삶을 영위할 돈 밖에 없어 불안하지만 그는 그간 노력만으로는 얻을 수 없던 ‘자유’를 이야기한다. 오후 느즈막히 일어나 늦은 점심을 먹고 볕 잘 드는 창가에서 낮술을 한다. 책을 읽거나 아이디어를 끄적거리면서 그는 묘한 해방감을 느낀다.
 
“직장인들이 자신의 자유(시간)를 팔아 번 돈을 열심히 모으는 이유도 나중에 자유롭게 살고 싶어서가 아닌가. 결국, 그렇게 힘들게 모은 돈은 다시 자유를 사는 데 쓰이게 될 테니 지금의 내 상황과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저자에 따르면 인생은 모순 덩어리다. 최선을 다했는데도 안 되는 일이 있고, 별 노력 없이 큰 성과를 보상받는 경우도 있다. ‘노력’이란 구호 아래 잘 굴러가는 듯 보였던 사회는 이미 무너진 지 오래다. 불공정한 세상을 대변하는 ‘수저계급론’은 이런 오늘날의 모습을 대변하는 키워드다. 노력 만으로는 힘든 세상이 됐다.
 
그렇다고 저자가 노력하며 사는 이들을 비판하거나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 역시 그간 ‘열심히’ 살아온 세월이 쌓여 지금의 자신을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노력에 과몰입 하다 정작 중요한 것을 지나치지 말라고 얘기해준다. 바뀐 세상을 인정하고 모든 부족함을 자신의 탓으로만 돌리지는 말라고 대신 화를 내준다. 결혼, 자동차 구입 등 타인의 욕망에 맞춰진 ‘인생 매뉴얼’을 따르는 대신 ‘자신 만의 속도로 살자’고 위로해준다.
 
그 역시 ‘뒤처지는 것’ 전문이다. 남들과 만날 때면 7년 뒤처지고 있으니 7년 정도 더 살면 되지 않느냐 유쾌하게 농담한다.
 
열분을 쏟아내는 말투와 스스로를 낮추는 농담은 책의 가장 큰 묘미다. 출간된 지 4개월여가 지났음에도 여전히 입소문을 타며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것은 읽는 내내 ‘사이다’ 같은 카타르시스를 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더 노오력하라고? 내가 이 모양인 건 노력을 안 했기 때문이라고? 이건 모욕이다. 금수저는 노력해서 금수저가 됐더냐?”
 
“내가 놀고 싶어서 회사를 그만둔 걸 엄마는 모른다. 그냥 회사 사정도 어려워지고, 그림 의뢰가 많아져서 그만둔 줄 알고 있다. 사실을 알면 분명 등짝 스매싱이 날아올 게 뻔하다.”
 
흡사 간디처럼 보이는 ‘야매 득도’도 한 몫 거든다.
 
“이왕 늦은 거 천천히 가면 어떨까? 인생도 더 길어졌는데 빨리 가서 뭐 하려고 그러나. 나 혼자 느릿느릿 가려니 외로워서 그런다. 같이 천천히 가자.”
 
“꿈을 이뤄야만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건 착각이다. 꿈을 이루지 못했다고 행복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꿈이 뭐라고.”
 
'하마터면 열심히 살 뻔 했다'. 사진/웅진지식하우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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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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