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징벌적 손배제도' 도입 지지부진, 외국기업들 '책임태만' 버티기
BMW 화재사태, 미국서 발생했으면 즉각 배상조치…한국은 적용 법 조차 없어
입력 : 2018-08-06 03:00:00 수정 : 2018-08-06 03:00:00
[뉴스토마토 김광연·김재홍 기자] BMW 코리아의 리콜 조치에도 올해에만 BMW 중형차 520d 모델 등 20여 대가 주행 중 엔진에 불이 붙어 전소됐다. '뿔 난' 소비자들의 집단 소송 움직임이 확산하는 가운데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하루 빨리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다시 커지고 있다.
 
이번 소송에서 BMW 차주들의 법률대리를 맡고 있는 하종선 변호사(법무법인 바른)는 이르면 9일 BMW 코리아와 딜러사 등을 상대로 '불타는 BMW' 사태 관련 3차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다. 하 변호사는 지난 3일 "BMW 차주 수십 명을 원고로 구성해 서류가 준비되는 대로 이날 소송을 제기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지난달 30일 첫 집단소송이 제기되고 불과 며칠 만에 소비자 소송이 잇따르고 있다.
 
직접 화재 안 당한 차주도 손해
 
BMW 차주 13명은 지난 3일에도 서울중앙지법에 BMW코리아와 딜러사 도이치모터스(067990) 등을 상대로 2차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청구금액은 1차 때처럼 한 명당 500만원이다. 1차와 달리 2차 소송을 낸 이들은 직접 화재를 당한 피해자는 아니다. 하 변호사는 "화재로 인해 손해를 본 것은 아니나 화재 위험으로 운전할 수 없거나 중고차 가치 하락 등 피해를 봤다"고 설명했다. 이와 별도로 법무법인 인강에서도 집단소송을 제기할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BMW가 이번 화재의 원인으로 추정되는 EGR(배기가스 재순환 장치) 결함을 알고도 이에 대한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고의나 악의로 타인 재산이나 신체 피해를 주면 일반적 손해배상을 넘어 몇 배의 배상 책임을 지게 하는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한 요구가 빗발치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이나 영국·캐나다·호주 등 영미법계 국가는 민상사법 전반과 판례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폭넓게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는 제조물책임법이나 하도급법 등에서만 제한적으로 도입하고 있다. 현행 제조물책임법은 제조업자가 결함을 알면서 필요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소비자 생명 또는 신체에 중대한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의 3배까지 배상책임을 물게한다. 또 하도급법은 원사업자가 법을 위반해 해를 입히는 경우, 대리점법은 본사가 불공정거래행위를 해 대리점주에게 손해를 입히면 손해액을 가중 부담하게 하는 경우, 기간제법은 차별적 처우로 기간제 근로자에게 손해가 발생할 경우 가중 배상하도록 해 징벌적 손해배상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
 
제조물책임법, 적용 안돼
 
처음 BMW 사태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하려면 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하지만 전문가 의견은 달랐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부회장인 김남근 변호사(법무법인 위민)는 "제조물책임법을 적용하려면 불이 나서 입었다는 화상 등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하 변호사도 "사람이 다치면 인정되나 이번처럼 차량 자체만 훼손되면 제조물책임법에 따른 징벌적 손해배상이 불가능하다"고 밝혔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이번 사건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물을 길이 없다. BMW로서는 화재 원인이 되는 차량의 결함을 알고도 방치했다는, 즉 고의적이고 악의적인 행위로 국내 소비자들에게 피해를 줬더라도 일반적인 민사상 책임 범위만 부담하면 된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적용되는 법을 늘려 궁극적인 소비자 권익 보호에 힘써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는 이유다. 2016년 징벌적 손해배상을 지지하는 변호사·교수모임 상임대표를 지냈던 김현 대한변호사협회장은 "2016년 더불어민주당 박영선 의원과 징벌적 손해배상 관련 법안을 발의했었지만, 현재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범위를 더 확대해 나갈 필요가 있다"고 주문했다. 하 변호사도 "이번 사태에도 징벌적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게 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요타, 미국에 1조원 배상
 
징벌적 손해배상 입법 관련해 국회의 미온적인 태도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김 변호사는 "하도급법 등에서 이미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고 있어 법원에 판단을 맡기면 되지만, 국회에서 이렇게 방어적으로 법을 만들면 '가습기 살균제' 사태 등 일부에만 적용할 수 있다"며 "이번 사태와는 다르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많은 법에 확대·적용되면 회사가 결함을 알면서 조치를 취하지 않았을 때 제품 자체에 대한 재산적 손해에 대해서도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가 가능하다. 도요타는 이 때문에 2009년 미국에서 약 1조원을 물기도 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활발한 미국 시장에 있으면 거액의 손해배상에 대한 우려로 바로 조치가 나오는데 국내 시장에 있으면 계속 버티고 태만하게 나온다"고 지적했다.
 
제조사에 입증 책임을 지워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미국에서는 자동차 메이커가 차량에 결함이 없어야 함을 증명해야 하기 때문에 적극적인 대응에 나선다"면서 "국내에서는 그렇지 않다 보니 BMW가 늑장 대응을 할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내 규정상 제조사들이 '시간만 끌면 된다'는 인식이 팽배하다는 점에서 입증 책임의 주체를 바꾸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 제도 도입에 부정적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도입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더라도 실제 도입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법제분야에 능한 한 중견 변호사는 "징벌적 손해배상은 기업들의 이해관계와 직접적으로 관계가 있다. 아무리 대기업이라도 미국이나 유럽 수준으로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지게 된다면 그 타격은 치명적일 것"이라면서 "장기간 시도되고 있는데도 도입이 늦어지는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귀띔했다. 
 
법무부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는 또 다른 변호사도 "정부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대한 구체적인 연구를 해오고 있지만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국내 기업들이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우려가 항상 제기되고 있다"면서 "그렇다고 해서 외국기업들의 불법행위에만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는 것은 국제적으로 평등하거나 공정하지 않다는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입증책임 전환'도 대안으로
 
국토교통부는 이달 들어서도 BMW 차량에서 화재 사고가 발생하자 화재 원인에 대한 정밀 분석에 본격 착수했다. 조사에 대한 신뢰를 높이기 위해 민간 전문가를 최대한 참가시켜 민관 합동 조사팀을 가동한다는 방침이다. 국토부 관계자는 5일 "당초 고장 원인을 분석하는 작업은 자동차안전연구원에서 담당한다"면서도 "이번 BMW 사안은 국민적인 관심도가 높은 만큼 민간 전문가와 합동으로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하겠다"고 밝혔다.
 
한 BMW 520d 차량이 지난 2일 오전 11시44분께 강원 원주시 영동고속도로(강릉방향)에서 전소됐다. 사진/뉴시스
 
김광연·김재홍 기자 fun3503@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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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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