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이정하 기자] 635조원이라는 막대한 자금을 굴리며 '자본시장 대통령'이라 불리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 자리가 1년째 공석 상태로 있는 가운데, 자본시장에서의 방향성 제시가 시급하다는 업계의 목소리가 높다.
작년 7월 강면욱 전 CIO의 사퇴 이후 후임 인선이 늦어지는데다 최근에는 직무대행을 맡아온 조인식 국민연금 해외증권실장도 사의를 표명한 상태다. 이에 따라 국내 최대의 연기금인 국민연금이 자본시장에서 존재감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 맏형으로서 자본시장에서의 사회적 역할도 수행하지 못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자체 리서치 조직이 작은 연기금의 경우 국민연금을 통해 투자의 방향성을 잡곤 했으나, 현재 국민연금은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시장을 전망하고 투자의 방향을 잡기가 쉽지 않은 중소연기금은 그동안 국민연금이 제시하는 방향성을 좇아왔으나 현재는 이같은 도움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대형 연기금의 경우에는 국민연금의 투자 방향성을 따르는 것은 아니지만, 스튜어드십코드나 사회책임투자 등 연기금으로서의 사회적 역할에 대한 힌트를 받아왔다.
투자의 리더격인 CIO 부재로 국민연금이 공격적인 투자에 소홀해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전통적으로 운용해왔던 주식과 채권 투자를 벗어난 대체투자 비중을 늘리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올해 말까지 자산배분 비중을 주식 36.4%, 채권 51.1%, 대체투자 12.5%로 가져가겠다는 계획을 밝혔으나, 지난 4월말 현재 자산 비중은 주식 39.0%, 채권 50.3%, 대체투자 10.7%다. 대체투자 비중을 1.8% 포인트 늘려야 하지만 현 상황에서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다. 2023년까지 대체투자 비중을 15%로 늘리겠다는 계획도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하다.
국민연금으로부터 운용 자산을 위탁받는 자산운용사의 경우도 CIO의 부재로 인해 선제적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지 못하고 있다. 운용사들은 통상적으로 CIO의 발언에서 제시되는 투자의 방향성을 참고해 미리 상품을 구성해 국민연금에 제안하곤 했다. 업계 또다른 관계자는 "예컨대 국민연금 CIO가 해외투자 비중을 늘리겠다는 언급이 나오면, 운용사들이 거기에 맞춰 포트폴리오를 짜고 역량을 집중해 상품을 만들어 제시하곤 했는데, 최근에는 어디로 방향을 잡고 갈지 잘 모르는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편 국민연금은 지난 6일부터 오는 19일까지 CIO 재공모를 진행 중이다. 서류 심사, 후보자 평판조사, 면접 심사, 인사검증을 거쳐 이사장인 보건복지부 장관으로부터 최종 임명된다. 앞서 지난 4월 곽태선 전 베어링자산운용 대표와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출신의 윤영목 제이슨인베스트먼트 자문역, 이동민 전 한국은행 외자운용원 투자운용부장 등 3인을 최종 후보로 압축됐으나, 청와대 인사검증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CIO)이 1년째 공석 상태다. 사진은 3월에 열린 2018년 제1차 국민연금기금운용위원회 모습. 사진/뉴시스
이정하 기자 lj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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