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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세상읽기)라돈과 음이온
2018-05-11 06:00:00 2018-05-11 06:00:00
노벨상으로 따지면 최고의 과학자는 마리 퀴리다. 그는 노벨 물리학상과 화학상을 모두 받은 유일한 사람이다. 하지만 두 번의 노벨상의 대가는 퀴리의 목숨이었다.
 
1898년 마리와 피에르 퀴리 부부는 역청우라늄광석에서 새로운 방사선 원소를 발견하고 라듐이라고 불렀다. 라듐을 원소 형태로 보여주기 위해 퀴리 부부는 4년에 걸쳐 무려 8톤의 광석을 처리해야 했다. 거기서 얻은 순수한 염화라듐은 겨우 0.1그램. 이 공로로 퀴리 부부는 1903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06년 피에르가 마차 사고로 죽은 후에도 마리 퀴리는 연구를 계속했고 마침내 1910년 염화라듐을 전기분해해 금속 라듐을 얻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1911년 노벨 화학상을 받았다. 이때 그녀는 겨우 마흔네 살이었다.
 
사람들은 노벨상을 두 개나 안겨준 금속이 내뿜는, 방사선이라는 새로운 에너지에 열광했다. 뭐든지 라듐이 들어가면 인기리에 팔렸다. 라듐 생수, 라듐 치약, 심지어 라듐 초콜릿도 있었다. 라듐은 신비로운 물질이었다. 우라늄보다 200배나 강력한 방사성 에너지가 샘솟았다. 휴대용 엑스레이 장비는 물론이고 정신과 치료에도 쓰였다. 또 라듐이 들어있는 페인트는 밝은 빛을 냈다. 라듐 페인트로 시계의 시침과 숫자판을 칠한 야광시계가 날개 돋친 듯 팔렸다.
 
하지만 라듐의 인기에도 끝이 있었다. 시침과 숫자판을 그리던 노동자들은 칠을 하면서 붓 끝이 갈라지면 침으로 붓털을 가지런히 모으곤 했다. 어느 날부터인가 노동자들의 치아가 빠지고 잇몸이 무너지고 턱뼈가 부서지는 일이 발생했다. 또 라듐 페인트로 영화관 간판을 그리던 노동자들도 죽어나갔다. 이로써 죽음의 에너지가 나오는 라듐의 위험성이 널리 알려지게 됐다.
 
마리 퀴리라고 해서 라듐의 방사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서른한 살에 라듐 연구를 시작한 마리 퀴리는 골수암, 백혈병, 재생불량성빈혈로 67세에 사망했는데 과도한 방사선에 노출된 결과였다. 라듐을 발견한 순간의 감동을 기록한 마리 퀴리의 연구노트는 100년이 지난 지금도 방사선을 방출하고 있어서 함부로 손으로 만질 수도 없는 상태다.
 
요즘 라돈이라는 낯선 원소가 장안의 화제다. 원자번호 92번인 우라늄(U)과 90번인 토륨(Th)이 붕괴되면 88번 라듐(Ra)이 되고, 다시 라듐이 붕괴되면 86번 라돈(Rn)과 84번 폴로늄(Po)을 거쳐 결국에는 방사능이 없는 82번 납(P)이 된다.
 
라돈은 지구에 원래 있는 원소다. 당연히 흙, 돌멩이, 물, 시멘트와 콘크리트에 들어 있다. 하지만 방사선 원소인 데다가 발암물질이라서 관리를 한다. 법에 따르면 학교 실내 라돈 기준치는 입방미터 당 148베크렐이다. 이것은 1입방미터의 공기 속에 라돈 원자가 148개까지만 허용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모 업체의 음이온 침대에서 무려 2000베크렐이 넘는 라돈이 측정돼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 국제암연구소는 발암물질을 몇 가지로 분류한다. 암을 일으킨다고 확인된 물질은 (1급이 아니라) 1군에 속한다. 라돈은 1군 발암물질이다. 또 암을 일으킨다고 추정되는 물질은 2A군, 암을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물질은 2B군으로 분류한다. 목록에 올라 있다고 모두 심각하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예를 들어서 소고기와 돼지고기는 2A군에 속하며 김치와 스마트폰은 2B군에 속하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기꺼이 라돈 온천탕에도 가지 않았던가. 라돈 온천탕이 류머티스 관절염에 좋다는 증거도 없는데 말이다. 걱정하지 마시라. 라돈은 화학 반응성이 거의 없어서 먹어도 즉시 배출된다. 높은 농도의 라돈 가스를 오랫동안 마시면 폐암이 생길수도 있다고 하지만 중요한 것은 언제나 '양'이다. 가끔 창문을 여는 것으로도 라돈 문제는 해결된다. 실수로 라돈이 들어간 문제의 침대는 폐기하면 그만이다.
 
도대체 그 비싼 침대를 왜 들여놓았을까? 음이온 침대라는 이름으로 팔렸기 때문이다. 음이온 마루, 음이온 벽지, 음이온 에어컨, 음이온 공기청정기처럼 음이온은 건강의 상징이다. 그런데 정말 음이온이 건강에 좋을까? 2013년 1월15일자 <BMC 정신의학>에는 지난 80년간의 논란을 종식시키는 연구 논문이 실렸다. 1957~2012년에 발표된 음이온이 건강에 미치는 영향에 관한 35건의 연구를 종합한 결과 음이온은 건강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는 게 결론이다.
 
피할 수 없는 자연 방사선은 우리 건강에도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음이온이 나오는 마루, 벽지, 에어컨, 공기청정기, 침대에 돈을 쓸 이유가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정모 서울시립과학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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