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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비게이션) ‘7년의 밤’, 가장 완벽한 ‘5박자 결과물’
공간 창조·미장센·각색·연기·연출…한국영화의 '정점'
2018-03-22 13:29:29 2018-03-22 13:29:29
[뉴스토마토 김재범 기자] “‘7년의 밤’이란 소설을 두 번 읽은 사람은 드물어도 한 번 읽은 사람은 주변에 널리고 널렸다”는 말이 우스갯소리가 아님은 책 좀 읽는 사람이라면 충분히 고개를 끄덕일 만한 사실이다. 그 만큼 독자의 감정 소모를 바닥까지 끌어당긴다. 또 한 번 잡으면 결코 손에서 놓을 수 없는 마력을 갖고 있다. 이 소설을 쓴 정유정 작가는 그의 작품 세계를 통해 한 결 같은 질문을 한다. ‘악의 근원’에 대한 근본적 질문이다. 고대 중국에서 맹자와 순자가 주장한 성선설과 성악설의 고리타분한 정의는 아니라도 이 질문은 수백 수천 년, 더 세월이 흐른 뒤에도 매력적인 논쟁거리임은 충분할 듯하다. 그만큼 인간은 복잡다단하다.
 
 
 
한때 충무로에서 판권 경쟁을 불러 일으켰고, 실제 15개 이상 제작사가 판권 확보를 위해 달려들었단 이 소설이 영화로 만들어졌다. 우려가 컸다. 일단 정 작가 세계 특유의 복잡한 플롯이 문제다. 그럼에도 흡인력은 중독 수준이다. 이유는 정 작가가 만든 공간의 환상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작품에 항상 공간을 주인공 이상 객체로 그려냈다. ‘7년의 밤’이 영화로 탄생되려면 해결해야 할 두 가지가 그 것이다. 플롯 각색 그리고 물리적 공간으로의 시각화다.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7년의 밤’은 이 두 가지를 완벽하게 해결했다. 말문을 틀어 막아버리는 압도적인 미장센은 오히려 ‘덤’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원작이 ‘악’에 대한 근원적 질문으로 시작해 끝을 향해 달리는 폭주기관차였다면 영화는 미약하지만 무게의 중심을 다른 쪽으로 돌려놓는다. 아이러니하게도 ‘악의 근원’을 ‘결핍’ 속에서 찾아낸 실마리로 풀어냈다. ‘최현수’(류승룡)의 결핍과 ‘오영제’(장동건)의 결핍 그리고 공간이 만들어 낸 결핍이 충돌한다. 사실상 ‘7년의 밤’은 ‘세령마을’이 집어 삼킨 인간성의 결핍이 만들어 낸 최악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낸다. ‘나비효과’처럼 단순한 그날의 우연이 무려 6명의 인생을 가장 추악한 몰골로 만들어 버렸다.
 
영화 '7년의 밤'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 영화 속 가장 큰 결핍은 가족이다. 최현수는 어릴 적 아버지의 폭력성에 길들여져 있었다. 그 폭력성은 자신의 내면 어딘가에 자리하고 있다. 그것을 숨기기 위해 그는 삶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감을 견디고 살아간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아간 아버지의 폭력은 그래서 자신을 더욱 틀 안에 가둬버린다. 가족을 무너트린 아버지와 다른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기 위함이다. 그런 그의 불안이 폭발한다. 아니 불씨가 붙어 버렸다. 우연한 사건이었다. 한 여자아이를 차로 치었다. 죽었다. 아니 죽었던 것 같다. 현수는 간신히 붙들고 지켜온 모든 것이 무너지는 환상을 보게 된다. 막아야 한다. 혼란스럽다. 그는 결국 하지 말아야 할 선택을 한다. 하지만 그는 지켜냈다. 어머니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아버지의 폭력, 그리고 자신을 평생 괴롭혀 온 죄책감으로부터 가족을 지켰다.
 
오영제에게 가족은 수단이다. 원작 속 오영제가 극단적 사이코패스 전형이라면 영화 속 그는 이유를 통해 행동을 정당화시키는 인물이다. 방식 자체가 극단적이다. 사이코패스 전형성은 밑바닥 기저에 깔고 있다. 하지만 무언가 감정 소통과 교류는 가능할 것 같은 실마리가 남아 있다. 자신을 떠나려는 아내에 대한 집작이 그것이고, 아내 물건에 손을 댄 12세 딸을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 또한 그것이다. 도망치는 딸 세령을 추격하면서도 느긋하다. 아니 여유롭다. 쥐새끼를 눈앞에 두고 앞발로 툭툭 건드리는 고양이의 모습이다. 약자의 외침에 더욱 쾌감을 느끼고 그것을 즐기는 육식 동물의 본능. 오영제는 그런 인물이다. 놀랍게도 그에게 먹이는 가족이었고 또 딸이었다. 딸이 먹잇감이라면 자신을 떠난 아내는 결핍이란 구멍이다. 세령마을 전체를 휘어잡고 있는 권력자인 그에게 달아난 아내의 존재는 결핍이고 흠집이다. 그 구멍을 메워야 한다. 그래서 그에게 가족은 완벽을 위한 도구이고 수단일 뿐이다.
 
영화 '7년의 밤'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그런 최현수와 오영제가 충돌했다. 딸 세령을 잃은 아빠의 오영제의 분노가 터진다. 이 지점에서 관객은 의문을 받는다. ‘아빠로서의 분노일까’ 아니면 ‘결핍의 확대에 대한 분노일까’. 일단 영화 예고편에도 등장한다. 오영제는 내면의 자아를 터트리듯 영화 말미에 분노한다. “내가 끝을 내야 끝나는 것”이라고. 이 대사라면 앞선 두 가지 질문 가운데 어떤 것이 오영제가 갖게 된 분노의 근원일지는 유추해볼 수 있다.
 
반면 최현수는 더욱 두려워한다. 폭력의 트라우마에서 평생을 지켜온 자신의 울타리가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다. 지키고 지켜온 그날의 사건은 그를 벽으로 몰아붙인다. 아버지에 대한 폭력에 대한 가족에 대한 결핍에 ‘죄책감’이란 휘발유가 불을 붙여 버린 것이다. 이미 세월의 흐름과 혼자만의 혼란과 불안으로 말라비틀어진 최현수의 내면은 걷잡을 수 없이 불타올랐다. 그는 결국 오영제와 마지막 대면에서 자신이 그토록 지키고 싶었던 것과 마주한다. 지켜야했기에 어린 소녀의 죽음을 묻어버리려 한 그날의 선택을 그 지켜야 하는 것 앞에서 토해내면서도 후회를 하지 않았다. 아니 그랬던 것 같다.
 
영화 '7년의 밤'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이처럼 두 인물의 결핍은 ‘세령마을’이란 공간 속 존재와 상충되면서 그 존재의 정의를 강하게 드러낸다. 결핍은 마르고 버석거리는 물질의 형태다. 반면 세령마을은 댐 공사로 물속에 잠긴 수중 도시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음습하고 어두운 물안개 기운은 마르고 말라 부서질 듯 위태로운 최현수와 오영제에게 어쩌면 감정의 기운을 부추긴 진짜 악이었는지도 모를 일이다.
 
영화 '7년의 밤' 스틸. 사진/CJ엔터테인먼트
 
물리적 공간 창조, 압도적 미장센, 완벽한 각색과 연기, 그리고 모든 것을 조율한 연출. 단언컨대 한국영화가 도달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함이다. 개봉은 오는 28일.
 
김재범 기자 kjb517@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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