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고요 속 암전과 섬광…더엑스엑스 ‘여백’ 관객 홀리다
내한 공연 '아이 시 유'로 월드투어 대미 장식
'소리의 미니멀리즘' 구현에 2500여 관객 열광
입력 : 2018-02-14 16:26:48 수정 : 2018-02-14 16:33:58
[뉴스토마토 권익도 기자] 40여 개의 노란빛 조명이 영국 밴드 ‘더 엑스엑스(The XX)’가 설 무대를 조요하게 비추고 있었다. 스웨덴, 영국에서 건너온 트립합이나 신스팝 배경음이 잔잔하게 흘렀고, 악기 세팅도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예정된 공연 시간이 되자 스탠딩과 2층 좌석은 2500여명의 관객들로 가득 찼다. 20~30대 국내팬들이 대다수였다. 그 사이로는 외국인들도 군데 군데 눈에 띄었다. 옆 사람과 소근 소근 담소를 나누며 공연을 차분하게 기다리는 그들의 얼굴엔 하나 같이 설렘이 가득 묻어 있었다.
 
13일 저녁 서울 올림픽공원 핸드볼 경기장에서 진행된 단독 공연 무대에 오른 더 엑스엑스. 사진/프라이빗커브
 
지난 13일 저녁 8시 30분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SK올림픽핸드볼경기장에서 진행된 더엑스엑스의 내한 공연 ‘아이 시 유(I See you)’. 세팅 문제로 공지된 시간보다 공연이 30분 지연됐지만 관객들은 밴드의 등장을 암시하는 무대 암전과 동시에 거대한 박수와 환호를 쏟아냈다. 이윽고 무대 위에서 파란빛을 명멸하는 LED 스틱과 함께 로미 메들리 크로프트(보컬·기타)와 올리버 심(보컬·베이스), 제이미 스미스(DJ) 세 멤버가 ‘데인저러스(Dangerous)’를 연주하며 등장했다.
 
‘소리의 미니멀리즘’을 구현하는 그룹이란 평단의 평가대로 그들의 소리에는 일체의 군더더기가 없었다. 스미스의 디제이 셋에서 흘러나오는 담백한 비트가 사운드의 중심을 잡고 로미와 올리버의 허스키한 보컬과 심플한 기타, 베이스음이 살짝 얹힌다. 거기에 음의 미세한 차이에 따라 적절하게 조절되는 LED 섬광은 ‘여백 미학’으로 빛나는 그들 음악을 더욱 아름답게 했다.
 
이날 공연에서는 지금까지 밴드가 낸 3장의 정규 앨범 수록곡들이 다채롭게 연주됐다. 2009년 머큐리상을 수상한 데뷔 앨범 ‘엑스엑스’(xx)부터 정규 2집 ‘코이그지스트’(Coexist·2012)와 3집 ‘아이 씨 유’(I See you·2017)의 대표곡들도. ‘데인저러스(Dangerous)’에 이어 1집 수록곡 ‘아일랜드’(Islands)와 크리스털라이즈드(Crystalised)’, 3집 ‘세이 썸띵 러빙(Say Something Loving)’의 라이브를 묵묵히 선보인 후에야 그들은 관객들과 인사했다.
 
베이스와 보컬을 맡고 있는 더엑스엑스의 올리버, 사진/프라이빗커브
 
“헤이! 몇 곡 하지 않았는데 이미 여러분들과 사랑에 빠진 것 같아요. 오늘은 굉장히 특별한 쇼입니다. 왜냐하면 이번 서울 공연이 우리 월드투어의 마지막 ‘쇼’거든요. 특히 여러분과 함께 있어서 더 행복하고 특별한 것 같습니다. 자, 다음곡! Here We go!”(올리버)
 
제이미는 비트로 때론 건반 멜로디로 밴드의 몽환적인 사운드를 계속해서 주조해냈고, 로미와 올리버는 흐느적 거리듯 마주보고 춤을 추며 기타와 베이스를 튕기며 노래를 불렀다. 백색과 푸른색 섬광이 무대를 잠식하다가 중간 중간에는 잠시 무대가 암전되는 효과로 고요한 어둠의 시간이 4~5초간 진행되는 경우도 잦았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1집 수록곡 ‘Heart Skipped A Beat’과 2집 수록곡 ‘Sunset’과 ‘Reunion’ 등이 전반부까지 연주됐다.
 
기타와 보컬을 맡고 있는 더 엑스엑스의 로미. 사진/프라이빗커브
 
3집 수록곡 ‘AVN(A Violent Noise)’의 라이브 때는 로미의 기타에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다. 진지하게 노래의 첫 소절을 부르던 올리버는 기타의 음이탈을 인식하고는 이내 “잠깐만요!(For a second)!”를 외쳤다. 웃음을 짓고 로미를 돌아보니 로미 역시 연주를 멈추며 당황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로미)하하. 지금 굉장히 당황스럽네요. 저희가 오래 투어를 하다 보니까 기타에 문제가 생긴 것 같은데요. 잠시만 다른 기타를 가져오는 게 좋겠어요. It’s fine!”
 
“당황스럽다”는 말을 연신 내뱉으며 무대에서 다시 기타를 튜닝하고 합을 맞춰보는 밴드의 모습에 관객들도 폭소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큰 경기장에 온전한 기타 소리만이 울리니 심플한 그들 음악의 기원에 더 가까이 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색 외에 일체 다른 기교나 각색 따위는 생략하는 미술작가 아니쉬 카푸어처럼 그들은 소박한 소리 자체로 ‘예술의 본질’에 근접하려는 듯 했다.
 
관객들은 미안해하는 이들의 진심과 노력에 박수를 보내며 따뜻하게 응원했다. 팬들은 곡 중간 중간 ‘세이 썸띵 러빙(Say Something Loving)’이란 문구가 적힌 수건을 들고 함께 떼창을 하는가 하면, 핸드폰 불빛을 비추며 밴드가 들려주는 음악에 화답하기도 했다. 급기야 1집 타이틀곡 ‘VCR’을 부를 때 밴드는 팬들의 이러한 사랑에 보답하고자 객석으로 뛰어내려 관객들과 하이파이브를 하며 호흡하기도 했다.
 
“내일은 발렌타인 데이죠. 여기 사랑에 푹 빠져서 행복한 사람 있나요? (손든 몇몇을 보더니) 오케이, 다음 송은 너를 위한 곡 아니야.” (관객들 웃음) “싱글인 당신들을 위한 곡 입니다. 내일을 걱정하지 마세요. 오케이, 뮤직!”(올리버)
 
DJ를 맡고 있는 제이미. 사진/프라이빗커브
 
재치 있는 멘트를 던진 올리버는 ‘Fiction’을 부르며 관객 사이를 가로지르는 긴 통로를 뛰어 다녔다. 제이미의 솔로 ‘Loud Places’ 때는 로미도 무대 밑으로 내려와 올리버와 함께 관객들과 인사를 나눴다. 대표곡 ‘On Hold’와 ‘Intro’를 부른 후에는 쪽지를 꺼내 들더니 음향팀과 조명팀 등 스탭들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을 전달하기도 했다.
 
“지금까지 한 모든 쇼, 여기 와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모두 감사합니다. 2층도, 사이드도, 가운데도, 프런트도요. We See, We love you! Thank you so much”
 
그들의 진심 어린 마음이 마지막 곡 ‘엔젤(Angels)’의 몽글몽글한 기타 음과 함께 둥둥 실려 전해졌다. “Light reflects from your shadow 네 그림자가 빛을 반사해/ It is more than I thought could exist 존재하리라 생각했던 그 이상이야” “And the end comes too soon 끝은 너무 일찍 찾아와/Like dreaming of angels 천사들이 나오는 꿈을 꾸듯이”
 
이번 내한은 지난해 1월 정규 3집 '아이 시 유'(I See You)를 발매한 기념으로 진행한 ‘월드투어’의 일환이었다. 지난해 북미와 유럽 등의 투어를 한 이들은 올해 쿠알라 룸프르, 홍콩, 필리핀, 오사카, 도쿄 등을 도는 ‘아시아 순회’를 했다. 이날 공연으로 이들은 지난해부터 진행한 월드투어의 마침표를 찍었다.
 
권익도 기자 ikdokwon@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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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권익도

자유롭게 방랑하는 공간. 문화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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