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근로자가 경력을 속이고 근로계약을 맺었다가 들통 나 해고됐더라도 해고통보를 받기 전까지 일 한 임금은 지급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이모씨가 G사를 상대로 낸 임금청구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패소 판결한 원심을 깨고 원고승소 취지로, 심리를 다시 하라며 사건을 서울북부지법으로 되돌려 보냈다고 9일 밝혔다.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근로계약 당사자간에 무효 또는 취소 사유가 있으면 그 상대방은 계약을 취소하거나 무효를 주장할 수 있지만, 이 경우 근로계약에 따라 그 동안 행해진 근로자의 노무 제공의 효과를 소급해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취소의 의사표시 이후 장래에 관하여만 근로계약의 효력이 소멸된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 사건에서의 근로계약은 원고의 기망으로 체결됐기 때문에 그 하자가 치유됐거나 계약 취소가 부당하다고 볼 만한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피고의 취소 의사표시가 담긴 반소장 부본 송달로 적법하게 취소됐다”고 지적하면서 “그렇더라도 계약 취소의 소급효가 제한되기 때문에 근로계약은 반소장 부본 송달 이후의 장래에 관해서만 효력이 소멸할 뿐 송달 이전 법률관계는 여전히 유효하다”고 설명했다.
재판부는 이어 “그런데도 근로계약이 원고의 기망으로 체결된 것으로서 피고의 취소의 의사표시에 의해 적법하게 취소됐기 때문에 장래에 관해서만 계약의 효력이 소멸할 뿐이라고 하면서도, 이는 근로자가 현실적으로 노무를 제공한 경우에 한하는 것이고 현실적으로 노무를 제공하지 않은 기간에 대해서 소급적으로 계약의 효력이 소멸한다고 판단한 원심은 잘못”이라고 판시했다.
이씨는 서울의 한 백화점 의류매장에 이력서를 내면서 2002년 9월부터 2005년 8월까지 서울에 있는 다른 백화점 의류매장에서 매니저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고 적었다. 그러나 실제로 근무한 기간은 1개월에 불과했다.
2010년 7월 이씨를 채용했다가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매장주는 2010년 9월 이씨에게 해고를 통보하고 그 다음달 부터 계약 때 약속한 임금과 판매수수료를 주지 않았다. 이씨는 해고 통보를 받고 7개월간 근무한 뒤 퇴사하면서, 매월 130만원인 임금과 매출액 3%의 판매수수료 등 총 2100만원을 지급하라고 매장주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매장주도 경력을 속여 채용된 뒤 받은 임금 600만원과 손해배상까지 하라며 반소를 냈다.
1, 2심은 이씨와 매장의 근로계약이 취소돼야 함을 인정하면서 "고용계약의 경우 그 계약에 기해 이미 노무가 제공된 경우에는 노무 제공의 효과를 소급적으로 부정하는 것은 타당하지 않고, 이미 노무가 제공된 범위 내에서는 계약이 유효하게 체결되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하고 다만 장래에 관해서만 계약이 소멸한다"며 양쪽의 청구를 모두 기각했다. 이씨가 경력을 속여 손해를 입었다는 매장주의 주장도 실질적인 손해가 없다는 점을 들어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에 이씨만 상고했다.
대법원 청사.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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