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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내겐 너무 엽기적인 당신
2017-10-13 06:00:00 2017-10-13 06:00:00
아이들의 지능을 측정하는 도구 중 KEDI-WISK 검사라는 것이 있다. 이 검사 문항 중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에게 돈을 주지 말고 자선 단체 같은 곳에 기부를 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있다. 높은 점수를 받기 위해서는 ‘단체를 통한 기부를 해야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골고루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답해야 한다. 거리에서 구걸하는 사람들이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아니라거나 이들을 도우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다만 그러한 식의 일대일, 혹은 일회적인 주먹구구식 도움은 근본적인 해결책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단체를 조직해서 도움을 주려는 사람들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유기적으로 연결시키고 전체적인 계획을 세워 체계적으로 도움을 주는 것이 장기적인 관점에서는 더 좋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문항은 ‘개별적 구제보다는 단체를 통한 구제가 더 낫다’라는 명제가 참이라는 전제하에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어서 그러한 전제와 반대의 생각을 가졌거나 그러한 전제가 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난감한 문항일 수 있다. 그렇다면 그러한 전제가 참이라는 것은 확인이 된 것일까?
 
일명 ‘어금니 아빠’ 사건을 생각해 보면 위의 전제는 사실인 것 같다. 그는 자신과 딸의 불치병을 이유로 각종 매스컴을 통하여 개인적 도움을 청했고 그와 같은 호소에 국민들은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끊임없이 각종 이벤트를 통해 자신들의 불행을 알렸고, 국내 뿐 아니라 해외에까지 원정을 가서 수술비를 모금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유전을 통하여 대물림되는 불치병 때문에 부녀가 평생을 고통 속에서 신음해야 한다는 사실이 부모들을 울렸고, 친구들을 눈물짓게 했다. 십시일반 걷힌 돈으로 이들 부녀가 조금이나마 희망을 가지고 살게 되길 국민 모두가 바라고 또 바랐을 것이다. 그러나 결국 어금니 아빠 이영학은 그러한 국민들의 염원을 저버리고 희귀병을 앓고 있는 딸을 자동차 튜닝을 위한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켰고 수천만 원씩 드는 자신의 전신문신비용을 위한 도구로 삼아 버렸다. 개별적 구제가 힘을 잃는 순간이다.
 
그러나 지난 8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든 사단법인 ‘새희망 씨앗’ 사건을 보면 단체를 통한 구제가 더 낫다는 전제 역시 사실이 아닌 것 같다. 이 단체의 회장과 대표 등이 불우 청소년과 결손 아동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모은 후원금 중 128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단체를 통한 기부를 꺼려하는 이유는 실제 후원한 금액이 직접 수혜자에게 전달되는지 여부가 투명하지 않기 때문인데, 이 단체는 특히 지역 아동과 후원자를 1대1로 연결시켜주겠다는 광고로 그러한 의심을 거두게 했고, 그 결과 몇 만 명의 개별 후원자들이 5,000원에서 많게는 1,600만원을 기꺼이 입금시켰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단체를 통한 구제 역시 허무한 것이었다.
 
우리 형법상 현재 법정 최고형은 사형이고, ‘사형’은 사람의 목숨을 공적으로 끊어버리는 가장 극한 형이다. 그런데 이게 사실 아이러니한 측면이 있다. 왜냐하면 ‘사람을 죽이면 안 되고, 따라서 그러한 잘못을 저지른 사람은 처벌하겠다.’는 것이 국가의 입장인데, 국가는 그 처벌의 방법으로 자신이 금했던 ‘살인’을 선택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형에 버금가는 형벌을 내려야 하는 참으로 나쁜 범죄는 바로 ‘사람의 선의’를 악용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아파서 길거리에 쓰러진 척 연기하여 사람을 유인하고 범죄를 저지르거나 당장 생사를 넘나드는 수술을 해야 한다며 돈을 모금하고 그 돈으로 사리사욕을 채우는 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이러한 범죄가 나쁜 이유는 실제 그 피해가 크고 작고를 떠나 사람 마음에 상처를 주고, 자신의 선의를 의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게 하고, 선의는 악으로 돌아온다는 교훈을 남기게도 한다.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정말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돕지 않는’ 풍토를 양산한다는 것이다. 실제 이 두 사건으로 인하여 기부 문화의 위축이 우려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의로 남을 돕는 기부는 계속되어야 한다. 그것이 선의를 이용하는 악을 이기는 진짜 길이기 때문이다.
 
어금니 아빠 이영학과 새희망 씨앗의 대표 등은 바로 이런 측면에서 나쁜 사람들이다. 특히 어금니 아빠는 자신과 딸의 불치병을 이용해서 큰돈을 모으고, 이 돈으로 외제차를 끌고 다니며 사치를 누린 것도 모자라 자기 부인을 장기간 성매매의 도구로 삼고 결국 죽음에까지 이르게 만들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순수한 동정심과 사람에 대한 선의로 딸과 어울려줬던 10대 소녀를 유인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하기까지 하였다.
 
참으로 내겐 너무 엽기적인 당신’이 아닐 수 없다.
 
노영희 법무법인 '천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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