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정부는 구체적인 에너지 플랜 제시해야
입력 : 2017-09-12 06:00:00 수정 : 2017-09-12 06:00:00
문재인정부 탄생 후 가장 크게 부각된 이슈는 탈원전이다. 2011년 후쿠시마 참사로 세계의 많은 나라들이 탈원전으로 방향을 틀 때도 한국만은 남의 일로 생각하는 듯 원전 건설을 찬성하는 분위기였다. 갤럽이 그 당시 전 세계 47개국 국민들을 대상으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어떤 인식 변화를 가져왔는지 여론조사를 했을 때 한국인 64%는 원전에 찬성하여 사고 이전(찬성 65%)과 별다른 차이를 보이지 않았다. 따라서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지속적으로 원전 건설과 수출에 열을 올려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지난해 경북 경주에서 일어난 진도 5.8의 지진은 우리 국민의 원전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꿔 놓았다. 다른 나라의 일로만 여겼던 지진이 원전 밀집지역인 경주부근에서 일어나자 원전을 반대하는 여론이 70%를 넘었다. 올해 5월 들어선 문재인정부도 40년 후 탈원전을 공언하며 그 신호탄으로 고리 원전 1호기를 영구 폐쇄했다. 그리고 신고리 5·6호기 건설 일시중단도 선언했다.
 
지금 신고리 5·6호기의 운명을 놓고 한국 사회는 둘로 나뉘어 있다. 건설 재개를 찬성하는 파와 반대하는 파로 나뉘어 첨예한 갈등을 빚고 치열한 게임을 벌이는 듯하다. 그들은 상대에게 이데올로기 싸움을 멈추라고 손가락질하며 비난한다. 혹자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의 공론조사 결과가 나오는 10월 말 이후에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큰 사회적 갈등을 겪게 될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 정부의 탈원전 선택은 탁월했다. 원전은 사고가 한 번 나면 피해가 막대하고 핵폐기물에서 나오는 방사능은 수 십 년간 계속되므로 현 세대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에도 엄청난 부담을 안겨준다. 이러한 원전은 전 세계적으로 푸대접을 받기 시작했고 반면에 재생에너지는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정부의 탈원전 선택은 타이밍상 절묘한 것이었다. 다만 정책 프로세스를 보면 미덥지 않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에너지의 패러다임을 바꾸겠다면서 무엇 하나 준비된 것이 없다. 구체적인 플랜도, 계획표도 제시하지 못 한 채 시민사회를 찬반의 진영논리에 빠뜨리는 꼴이다.
 
프랑스는 후쿠시마 원전사고 시점을 에너지 전환의 터닝 포인트로 포착하고 원자력 발전을 축소하는 대신 재생에너지를 늘이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2012년 5월 대선에서 프랑수와 올랑드 후보는 자신이 대통령이 되면 원전에서 얻는 전기량 비율을 75%에서 2025년 50%로 줄이겠다는 단계적 이행을 공약했다. 2017년 5월 대선에서도 에마뉘엘 마크롱 후보는 올랑드 대통령의 원전정책을 계속 이어나갈 것을 유권자에게 약속했다. 마크롱 정부의 니콜라 윌로(Nicolas Hulot) 신임 환경부 장관은 <웨스트 프랑스(Ouest-France)>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7개의 원자로를 폐쇄할 가능성을 재확인했고 재생에너지로의 전환에 대한 신념을 확고히 했다. 윌로 장관은 내일의 에너지 모델은 보다 더 다각화 되어야 함을 강조하며 재생에너지 개발을 위한 재정적 수단을 환기시켰다. 예를 들면 저탄소 경제에 경쟁력 있는 이점을 도입해야 한다고 보고 분쟁기간을 줄이고 경쟁 입찰 과정을 단순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윌로 장관은 원자력 75%에서 50%로 줄이는 것은 “사실상 뛰어넘기 어려운 하나의 도전(un defi)”으로 전망하며 “현실적이고 가능한 시나리오를 밝혀야지 그렇지 않다면 이는 갑작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무 것도 숨기고 싶지 않다”고 털어놨다. 그는 현재 가동 중인 50여개 원자로 중 “법 적용을 위해서는 17개나 그 이상을 폐쇄하는 시나리오를 예상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까지 모두 그 점에 대해 눈을 감아왔다”며 “나는 법을 회복시키고 전략적 결함을 보충하겠다. 원자력을 실제 50%로 줄이기 위해서는 (계획을)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덧붙이며 사회·경제적 플랜과 계획표에 대한 불안감을 나타냈다. “직원들의 실생활을 고려하지 않고 원전을 폐쇄할 수 없다. 우리는 시나리오를 모델로 제시하고 이행해 가는 과정을 설계해서 제시해야 한다”며 고용을 절대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처럼 프랑스의 환경부 장관은 국민 앞에 나와 지난 2012년부터 꾸준히 추진해온 ‘원전50%로 축소’ 정책은 뛰어넘기 어려운 하나의 큰 도전임을 숨김없이 털어놓으며 시나리오를 구체적인 모델로 제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을 천명하고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 정부는 탈원전 만을 이야기 할뿐 이를 실현시킬 그 어떤 시나리오도 모델도 제시하지 못한 채 국민의 혼란과 대립만을 가중시킬 따름이다. 구체적인 행동 없이 말만 앞세우는 정치는 무책임한 구시대적 유물이다. 새 정부가 내거는 제1의 키워드는 적폐청산 아니던가. 구체적인 플랜이 없는 정치 또한 이제는 청산돼야 할 적폐 중 하나다.
 
에너지 패러다임을 전환하는 터닝 포인트에서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은 어떤 계획으로 우리 사회를 이끌어 나갈 것인지 국민 앞에 나와 가능한 시나리오를 제시하라. 에너지 정책은 시민사회가 아니라 정부가 주도적으로 선도해야 할 중차대한 국정과제다. 새 정부는 이점을 빨리 깨닫길 바란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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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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