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치매국가책임제 서둘러 구체화해야
입력 : 2017-09-05 06:00:00 수정 : 2017-09-05 06:00:00
“내가 기억하는 한 그것은 사틴의 밤. 나는 그의 손에 깍지를 끼고, 그리고 침묵, 어쩔 줄 몰라 한다. 자꾸 거기를 떠올려 봐도 나는 그 길을 더 이상 알지 못한다. 이 기분은 내 정맥 속에서 내 것이 아닌 다른 피로 흐른다”. 비상(Je vole)으로 잘 알려진 프랑스 샹송의 거장 미셸 사르두가 기억을 잃어가는 치매 환자들을 위해 부른 <사틴의 밤(La nuit de satin)>의 한 구절이다. 가슴이 먹먹하고 시리다.
 
알츠하이머 환자가 90만 명이 넘는 프랑스. 정부는 알츠하이머와의 전쟁을 선포했고, 일부 가수들은 알츠하이머 환자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내며 사회적 편견을 없애기 위한 ‘앙가주망(작가나 지식인, 예술가들의 사회적 실천과 참여)’을 실천하고 있다. 프랑스 정론지인 <르몽드>도 2013년 말 유럽 최초의 알츠하이머 마을인 네덜란드의 웨스프(Weesp) 마을을 소개했다. “암스테르담에서 20km 떨어진 웨스프의 호그백(Hogeweyk) 요양원은 1992년 설계를 시작해 2009년 문을 열었다. 20여 채의 집에 6~8명씩 150여 명의 치매환자들이 모여 산다. 여기에는 식당, 카페, 슈퍼마켓, 우체국 등이 있고 골목길을 화기애애하게 걸을 수 있으며 테라스에는 꽃이 피어있다…”
 
기사를 읽은 프랑스의 의원들과 건축가, 보건 관계자들은 프랑스에도 웨스프와 같은 마을을 건설해야한다는 의지를 보였다. 2015년 6월 초 사회당의 앙리 에마뉘엘리(Henri Emmanuelli) 하원의원이 주축이 되어 관련 프로젝트 발의를 위해 1년 간 매달렸다. 지난해 2월에는 건축 콩쿠르를 열어 새롭게 건설할 마을의 건축양식을 정했고, 올 1월에는 프랑스 남서부 랑드(Landes) 지역의 닥스(Dax) 시에 주춧돌을 세웠다. 프랑스에서는 전무후무한 일로, 닥스 시의 소나무밭 한 가운데 알츠하이머 환자를 위한 요양원이 건설되고 있다. 2019년부터 환자 120명을 수용할 계획이며 여기에 드는 비용은 2200만 유로(한화 약 294억원)다.
 
이 프로젝트는 닥스의 전 시장인 가브리엘 벨로크(Gabriel Bellocq)의 총괄로 랑드 지역위원회와 아키텐-리모주-프와트-샤랑트 지역의 건강센터가 제휴를 맺어 진행 중이다. 벨로크전 시장은 “우리는 환자들이 자기 집에 있는 것처럼 느끼고 옛 추억을 떠올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 것이다. 작은 골목으로 4개의 구역을 나눠 16개의 집을 건설할 것이다. 각 구역은 주위에 상가를 만들고 미용실, 식료품 가게, 호프집을 마련한다. 우리는 알츠하이머 환자들이 모여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개방되고 친근한 공간을 만들 예정이다. 120명의 남녀 인력이 환자들을 풀타임으로 돌보고 1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매일 도움을 줄 계획이다”고 밝혔다. 환자 1인에게 드는 하루 비용도 60유로(한화 약 8만원)를 넘지 않는다.
 
프랑스 알츠하이머 협회 랑드 지역 회장인 프랑수와즈 디리스(Francois Diris)는 “우리 지역은 이 프로젝트와 관련해 좋은 의지가 넘쳐난다. 여러 협회가 우리를 지원해주기로 했다. 우리는 곧 자원 봉사자들에게 연수를 시킬 예정이다”고 말했다. 이 마을은 알츠하이머를 잘 다루는 전문가와 건강전문가들을 참여시키는 인적자원센터도 만들 계획이다. 여기에는 혁신적인 치료 방법을 통해 알츠하이머 연구를 향상시키고자 하는 목적이 있다.
 
디리스 회장은 얼마 전부터 의학적 치료를 기반으로 한 알츠하이머 연구가 지지부진해 지고 있다고 역설한다. 연구자들은 오늘날 알츠하이머에 대항하기 위해 가장 효과적인 것은 ‘평안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네덜란드에서 이루어진 경험 연구에 의하면 알츠하이머 환자들의 수명은 평균수명을 상회한다. 이는 보다 더 철저히 알츠하이머 환자들을 돌봐야 하는 하나의 추가적 동기가 된다고 디리스 회장은 말을 맺는다.
 
한국도 네덜란드와 프랑스의 사례에서 착상을 얻어 치매 마을을 만드는 계획을 세워봐야 할 때다. 2015년 통계에 의하면 한국의 치매환자는 약 65만 명. 2020년이면 84만 명에 이를 전망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대선에서 ‘치매국가책임제’를 보건의료정책 1호로 공약한 바 있다. 그러나 새 정부가 들어선지 4개월이 넘었지만 공약을 실천하기 위한 구체적인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다행히 지난 달 31일 국회 정책 세미나에서 치매국가책임제 실현을 위해 전국에 1000개의 알츠존(Alz zone)을 설치하자는 의견이 나왔다. 알츠존은 치매로 위협받는 노인이 안정되고 보다 나은 삶을 위해 치매 사전예방·지연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시스템으로 코디네이션 센터 겸 예방형 데이케어센터 역할을 한다. 좋은 발상으로 보이지만 문제는 누가 이를 구체적인 프로젝트로 만들어 실행에 옮기느냐다. 좋은 제안이 책상에서 잠자지 않기 위해서는 프랑스의 경우처럼 정부와 의원들, 그리고 보건 관계자들의 굳은 의지가 선행되어야 한다.
 
아울러 시민들도 문재인 정부에게 ‘치매국가책임제’를 구체적으로 제시하도록 촉구하고, 치매 환자에게 따뜻한 시선과 배려를 보내도록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 치매는 이제 노인들만의 문제가 아니다. 바로 우리들이 내일 겪을 수 있는 문제다. 그릇된 시선으로 치매환자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의 대전환이 이뤄져야 할 시기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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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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