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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편리함 속에 숨은 함정
2017-08-29 06:00:00 2017-08-29 06:00:00
현대인은 소비의 귀재다. 인류가 ‘소비’라는 말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산업혁명 이후다. 산업혁명은 대량으로 새로운 상품을 만들어냈고, 이 과정에서 지불능력이 있는 중산층을 탄생시켰다. 이들은 노동을 하고 받은 돈으로 집과 옷, 식품을 살 수 있게 되었다. 소비사회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점차 확대됐고 프랑스에서는 ‘영광의 30년(Trente Gloriouses·전후 30년간의 프랑스 경제 호황기)’ 기간에 가속화 됐다. 소비는 이제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evi-Strauss)의 말처럼 하나의 문화가 되었다.
 
프랑스에서는 1948년에서 1990년 사이 누구든 자동차를 살 수 있게 되었다. 가전제품 또한 홍수를 이뤄 여성은 가사노동에서 해방됐고 텔레비전은 문화의 민주화를 촉진시켰다. 의약품의 발명과 좋은 식품의 등장은 인간 수명을 연장시켰다. 소비사회는 우리에게 수많은 혜택과 풍요, 번영을 안겨줬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우리를 위태롭게 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도사리고 있다. 소비사회는 우리의 자주성을 상실시키고 중독에 빠지게 한다. 여기저기 판을 치는 광고는 소비심리를 부추기고 쇼핑센터는 ‘21세기의 대성당’이 되어 사람들이 몰려든다. 극도의 소비심리는 에코 시스템을 파괴해 숲을 사라지게 하고 바다와 공기는 오염된다. 과도한 소비가 양산한 쓰레기는 지구를 병들게 하고 태평양에 떠다니는 플라스틱 쓰레기는 제6대양 건설에 눈 코 뜰 새 없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소비문화는 인간의 생존까지 위협한다.
 
최근 한국에서 발생한 릴리안 생리대 파동은 일회용 소비재에 도취된 현대인에게 강한 경고 메시지를 던진다. 편리함만을 추구해온 우리에게 생리대의 진실은 생활패턴을 바꾸라는 경종을 울린다. 불임과 유산의 원인이 되고 심한 경우에는 각종 암, 신경계와 생식기능 장애까지 일으키는 일회용 생리대를 우리는 계속 사용할 것인가. 어디 이뿐인가. 일회용 아기 기저귀와 노인들이 사용하는 요실금 팬티는 어떠한가. 폴리아크릴과 세탁소다, 흡수성 중합체는 한번 축축해지면 젤로 변하고 물속에서 그 무게의 800배까지 빨아들일 수 있는 성분이 들어 있다. 특히 탐폰은 유독성 농약을 사용한 솜과 나무의 섬유에서 얻어진 비스코스의 혼합물로 흡입력이 강한 인공물이다. 이밖에 알루미늄, 알코올, 독성물질, 자극성 방향 첨가물, 탄화수소, 농약 등도 들어있다. 표백과정은 다이옥신의 부산물이다. 이 독소들은 세월이 지나면서 축적되어 인간의 건강을 해친다.
 
그러나 이러한 사실을 잘 모르는 우리는 이를 애용한다. 생리대나 탐폰의 경우 한 여자가 일평생을 사는 동안 1000개 이상 사용한다. 통계에 따르면 여성은 생리처리를 위해 일 년에 13번, 일생 동안 520회 생리대를 사용한다. 이러한 생리대와 탐폰은 언제부터 사용했을까.
 
고대 여성들은 월경을 처리하기 위한 방법을 찾았다. 이집트 여인들은 솜을, 로마 여인들은 양모를, 일본 여인들은 종이를 사용했다. 그리고 우리 할머니들은 삼베를 접어서 사용했다. 그러던 중 1896년 미국회사 존슨앤존슨이 최초로 생리대를 만들어 팔았지만 실패했다. 제1차 세계대전 때 공산품으로 생리대가 다시 등장, 간호사들이 생리처리를 위해 붕대식으로 사용했다. 이후 1921년 킴벌리클라크가 코텍스라고 불리는 생리대를 만들어 상업화하기 시작했고, 존슨앤존슨도 동참했다. 그리고 1930년대 탐폰이 등장했다. 그 후 시장을 확대시키기 위해 기업들은 생리대의 진화를 꾀했고 급기야 접착성 생리대를 선보였다. 여성들은 환호했고 편리함에 도취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미국, 캐나다, 호주의 양심 있는 기업들은 인체에 유해한 물질이 들어있는 일회용 제품에 반기를 들고 나섰다. 이들은 손이나 세탁기로 빨아 재활용할 수 있는 제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프랑스에는 2009년에야 PliM(세탁할 수 있는 긴밀한 예방장비) 마크를 단 제품들이 등장했다. 세탁할 수 있는 생리대나 기저귀는 보통 면으로 된 막으로 구성되어 내부는 부드럽고 흡수가 좋으며 뒷면은 새지 않게 처리되어 있다. 그러나 이 방수막은 공기가 잘 통해 피부염증이나 알레르기를 일으키지 않는다. 프랑스의 몇몇 기업은 바이오로 재배된 면을 이용해 이러한 제품을 만들어 판매 중이다.
 
프랑스의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 등 매스미디어는 과감히 PliM에 대해 이야기하고 나섰다. 한국보다 훨씬 개방적인 프랑스에서도 은밀한 세계를 이야기하는 것은 그 동안 터부시되었다. 그러나 프랑스 언론은 과감해지자는 슬로건으로 PliM을 이야기하며 국민건강을 위해 소비 패턴을 바꾸는데 앞장서고 있다.
 
한국도 일찍이 환경과 건강을 위한 대안 생리대를 만드는 여러 시도들이 있었다. 그러나 일부 환경단체들의 작은 몸부림에 지나지 않았다. 이번 릴리안 파동을 계기로 우리 언론은 좀 더 과감하게 일회용 생리대의 진실을 밝히고 대안을 모색하는데 앞장서기 바란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이번 사태는 결코 릴리안만의 문제가 아니다. 서구처럼 PliM 제품들을 생산·보급하는데 박차를 가하는 양심 있는 기업들이 나와야 한다. 소비자 또한 인식의 전환이 이루어져야 한다. 일회용 제품은 지구만이 아니라 인간까지 좀먹는다. 이 사실을 절대 잊지 말자.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프랑스 정치현상을 잣대로 한국의 정치현실 개선에 도움이 됐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책 ‘빠리정치 서울정치(매경출판)’를 펴냈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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