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임효정·정재훈 기자] 지난달 경기도 안산에 위치한 한 지함소의 사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벌어졌다. 지함소가 폐업한 바로 다음달 벌어진 일이었다. 지난 2006년 설립된 이 지함소는 경영난에 못이겨 결국 11년만에 문을 닫았다. 약육강식의 논리가 판치는 골판지업계에서 먹이사슬의 가장 하단에 위치한 곳이 지함소다. 업계는 공포에 휩싸였다. 취재 중 만난 업계 사장들은 하나 같이 "다음은 내차례가 될수도 있는 일"이라며 고개를 떨궜다.
통계청에 따르면 2015년 기준 골판지 전문기업과 상자제조사(1인 이상 기준)는 2477곳이다. 판지사와 지함소를 보유하고 있는 전문기업 100여곳을 제외하면 2370여곳이 상자만 제조하는 지함소인 셈이다.
일괄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밀리며 지함소의 경영난은 극에 달했다. 경기도에 위치한 지함소는 직원 30여명이 일하는 중상위 규모의 업체다. 이 업체는 지난 10년간 상자를 납품한 거래처를 한순간 일괄기업 계열 판지사인 대양판지에 뺏겼다. 해당 거래처는 월 7000만~8000만원 규모의 상자를 납품하는 주요 거래처 중 하나였다. 이 때문에 경기도에서 전라남도 장성군까지 상자를 운송해왔지만 대양판지가 30% 가량 낮은 금액을 제시하면서 가격 경쟁에 밀리게 됐다. 지함소 사장은 "그나마 가지고 있던 큰 거래처를 잃게 됐다"며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니다"라며 한탄했다.
이미 시장은 일괄기업들의 손아귀에 넘어갔다. 원단을 받아 상자를 만들어야 하는 지함소이지만 점차 제조 기능을 상실한 지 오래다. 일괄기업들과의 경쟁에서 뒤쳐지면서 공장을 하루 종일 가동시켜도 빚만 늘어나는 상태다. 그러면서 일괄기업으로부터 상자를 사와 거래처에 납품하는 업체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이미 지함소 가운데 절반 가량은 외주 생산을 경험하고 있다는 게 업계의 얘기다. 또 다른 지함소 사장은 "공장을 가동하는 이유는 30%의 손실을 10%로 줄이기 위한 것이다"며 "주변에서 폐업한다는 이야기가 이제 그리 놀랄 일이 아니다"고 말했다.
판지사 조차도 일괄기업에게 손을 뻗고 있다. 인상된 원지 가격으로 원단 제조가 어렵자 일괄기업으로 부터 원단을 사오는 판지사도 점차 늘고 있다. 경기도에 위치한 전문기업 사장은 "매월 억단위로 손실이 이어지고 있어 원지가격 인상을 더이상 반영하기 어려울 정도"라며 "올해부터는 어쩔수 없이 일괄기업으로 부터 원단을 구매하기 시작했다"고 털어놨다. 생존을 위한 마지막 몸부림이다.
더 큰 문제는 외주 생산으로 연명하는 것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골판지 상자는 업종 특성상 고객사의 적시납기(JIT) 요구에 완벽하게 대응할 수 있는 것이 중요하다. 자체 생산의 경우 거래처의 긴급한 주문에도 공장을 풀가동 시키면서 납품기일을 맞추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외주 생산을 하게 되면 납품기일을 맞추는 데 차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절대적인 갑 위치에 선 일괄기업에게 판지사와 지함소의 입김이 작용할 리 없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거래처와의 신뢰가 떨어지면 외주 생산도 어려워질 수 있다"며 "사상 최악을 넘어 재앙 수준"이라고 우려했다.
임효정·정재훈 기자 emyo@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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