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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문제는 대통령이 아니다
2017-08-01 06:00:00 2017-08-01 06:00:00
이강윤 칼럼니스트
새 정부 조직개편과 장·차관 인선(중소벤처기업부 제외)이 끝났다. 진통 끝에 추경안도 통과됐다. 100대 국정과제도 공표됐다. 골자는 적폐청산이다. 뭘 누구랑 할지는 짜여졌다는 얘기다. 이제 중요한 것은 어떻게다.
 
왜 폐가 쌓이고 쌓여 적폐가 되었을까. 적폐의 근원은 어디일까. 어제까지 해온 대로 했기 때문이다. 특히 정부를 비롯한 공적 영역에서.
 
미증유의 세월호참사도, 인사청문회에서 흠집이 드러나 낙마한 그 숱한 명망가들의 참극 이유도 다 “그 때는 그게 관행이었고 다들 그렇게 해왔기 때문”이다.
 
필자의 추측이 제발 틀리기를 바라면서 다시 한 번 명토박아 말한다. 전·현직 관료들은 아직도 뭘 잘못했는지, 사람들이 왜 분노하는지 ‘정확히는’ 모를 것이다. 자신이 명백한 위법을 한 건 아니니까. 어제까지 해온 대로 했을 뿐이니까.
 
관료들이 두고 쓰는 말이 있다. “돈과 사람 없어서 일 못한다”와, “어제까지 이렇게 해왔으니 이렇게 해야지 그렇게는 안 된다”는 말이다. 왜 어제에 집착할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그런 방식이 뼛속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어제’는 유전자이자, 문신이다. 어제까지 해온 대로 해야 책임 면하거나 혼나지 않기 때문이다. ‘어제’에 뭐 하나만 살짝 얹은 흉내만 내도 ‘우수혁신사례’로 뽑혀 상까지 받는다. 그러므로 관료제 하에서 혁신은 불가능에 가깝다.
 
관료들의 기준이 되는 어제는 어디서 왔는가. 두 말할 필요 없이 ‘어제의 어제’로부터 왔다. 어제를 따라 계속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일제강점기 36년을 만나게 된다. 일제에 의해서 이른바 ‘근대적 국가기틀’이 이식되었고, 그 틀이 금과옥조처럼 여겨지면서 관행을 넘어 전범으로 자리잡았다.
 
이른바 한국사회의 주류와 지배계층, 지배이데올로기는 관·친일잔재 유착풍토에서 부패라는 이름의 자양분을 먹고 자라, 동맥경화상태로 수십년을 지나는 사이 ‘괴물’이 되었다. 어제에 젖을 대로 젖은 눈에는 동맥경화증이 보일 턱이 없었다. 그러는 동안 우리는 서서히 질식당해왔다.
 
공직사회의 작동원리와 일 처리 방식은 민간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민간에는 또 하나의 ‘대물’이 있다. 이익이라는 이름의 대물. 인간은 기본적으로 이익을 좇아 행동하는 이기적 존재이기 때문에, 이익추구 그 자체를 곧바로 죄악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익에 맹목적으로 몰입하는 순간, 그 대물은 악마로 변신한다. 그게 자본과 시장의 운동방식이다. 자본과 이익의 눈에 사람, 즉 ‘인본’은 들어설 자리가 없었다. 인간이라는 존재 이전에 ‘노동력’으로 환산되고, 필요 없어지면 물건처럼 사고 팔거나, 낡은 기계 버리고 개비하듯 잘라버리면 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의 주류 질서는 이렇게 어제까지의 관행과 이익이라는 양대 축을 기반으로 형성돼왔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시민혁명을 자양분으로 출범했고, 적폐청산을 내걸었다. 적폐청산은 시대정신이자 역사적 책무다. 관료주의와 천민자본주의라는 ‘적폐’를 고치치 않으면, 문재인 정부는 존재증명이 어렵다.
 
공적 영역 담당자들의 인식 변화와 인적 청산이 적폐청산의 첫 걸음이자 핵심이다. 인식변화는 대통령 특명을 받들어 부랴부랴 보고서 만들 듯 이뤄지는 게 아니다. 어제와 총체적으로 결별하지 않으면, 인식개조를 지시하는 사람이나 그 지시를 받는 사람이나, 결국 또 다시 어제를 참고하거나 컨닝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이다.
 
무장봉기만이 혁명이 아니다. 구체제와의 총체적 결별요구는 혁명의 다른 이름이다. 혁명을 타도와 전복으로 여겨왔기 때문에 탄압과 발본색원이 유일한 대책이었다. 국정농단사태로 촉발된 촛불장정은 철저한 과거청산을 요구했고, 일단 국민이 승리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공무원들의 특권의식·군림의식 청산에 특별히 힘을 쏟고, 시민들은 정치인 개조에 눈을 부라려야 한다. 대통령은 이미 솔선수범, 변화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대통령이 커피를 직접 따르고, 의자를 스스로 당겨 앉는다고 어제가 종식되는 건 아니다. “우리도 멋진 대통령 갖게 됐다”는 흡족함을 잠시의 카타르시스로 끝내지 않으려면, 탈권위와 겸허한 소통이 전체 공적 영역으로 확산·체화되어야 한다. 촛불혁명은 의식혁명으로 이어질 때 비로소 완성된다.
 
정치권과 공직사회는 어제와 혁명적으로 결별하라. 그렇지 않으면 강제적으로 결별당한다. 촛불 이전과 이후는 같은 시민이 아니다.
 
이강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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