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한 공공 행사장에서 ‘영유아 쉼터’라는 공간을 보았다. 그러나 그곳은 아이를 위한 쉼터가 아니었다. 그 자리를 차지한 어른들은 유모차를 대여하고 담소를 나누며 영유아가 잠시 앉을 시간조차 거부했다. ‘영유아 쉼터’라는 공간이었지만 아이와 부모가 쉴 자리는 없었고, 오히려 그곳을 찾은 이들만 민망해졌다. 이것이 과연 쉼터인가.
유모차만 빌려줄 계획이었다면 차라리 ‘유모차 대여소’라 이름 붙였어야 한다. ‘쉼터’라는 간판을 달고도 아이가 설 자리가 없는 현실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저출생을 이야기하면서도 정작 아이와 부모를 얼마나 홀대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
아이의 쉼은 선택이 아니라 권리다. 아이에게 쉼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발달의 필수 과정이다. 어린이집의 낮잠 시간은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성장의 일부다. 그런데도 공공 행사장에서조차 아이가 잠시 기대어 쉴 공간 하나 마련하지 못하는 현실에서 우리는 과연 출산과 양육을 ‘장려’할 자격이 있는가 묻게 된다.
저출생 해법은 출산율 수치를 높이는 데 있지 않다. 아이와 부모가 편안한 마음이 생기는 환경을 만드는 것, 그것이 진짜 출산 정책의 출발점이어야 한다.
보여주기식 ‘아이 배려’에서 실질적 변화로 이어지는 데는 아직 구체적인 제도 설계가 필요하지만, 다음과 같은 방향을 제안해본다.
첫째, 모든 공공 행사장과 대형 시설에 영유아 전용 쉼터 설치를 의무화해야 한다.
둘째, 단순한 유모차 대여소가 아니라 수유실·기저귀 교환대·안전한 휴식 공간을 기본 구성으로 해야 한다.
셋째, 정부와 지자체는 ‘아이 친화 인증제’를 도입해 아이를 환영하는 공간이 어디인지 부모가 쉽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러한 변화가 없다면, “출산 장려”는 구호에 불과하다. 아이의 쉼은 배려가 아니라 권리이며, 이는 곧 미래세대를 대하는 사회의 품격을 의미한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오래된 말이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마을은 아이를 위한 공간조차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에서 바라보는 숫자와 통계의 저출생은 그저 숫자와 통계에 그치는 게 아니라 우리 국가가 가진 문제점이다. 돈을 많이 준다고 저출생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진짜 해법은 아이와 부모가 일상에서 환영받는 사회적 분위기와 공간에서 비롯된다.
이제는 보여주기식 정책이 아니라, 아이와 부모의 눈높이에서 설계된 실질적 제도와 공간이 필요한 때다. 그것이 저출생 시대를 넘어, 아이와 부모 모두가 함께 행복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일 것이다.
이정원 쉼표힐링팜 CEO
이 기사는 뉴스토마토 보도준칙 및 윤리강령에 따라 오승훈 산업1부장이 최종 확인·수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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