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토마토 최기철기자]1998년 발생한 이른바 ‘대구 여대생 사망사건’ 범인으로 기소돼 재판을 받아온 스리랑카인에게 결국 무죄가 확정됐다. 14년만에 유력하게 지목된 범인이 무죄 확정을 받으면서 이번 사건은 다시 미제 사건으로 되돌아갔다.
대법원 3부(주심 김재형 대법관)는 18일 특수강도강간혐의 등으로 기소된 스리랑카인 K씨(51)에 대한 상고심에서 검사의 상고를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범행을 증언한 검찰 측 참고인과 증인 등 3명의 진술은 모두 전문증거로서, 원진술자인 공범들이 모두 출국해 진술내용의 진위 여부가 제대로 검증되지 않고 공범으로부터 진술을 청취한 때로부터 14~16년이 경과된 시점에서 이뤄진 것으로 진술 내용의 신빙성이나 임의성을 담보할 구체적 정황이 있다는 점에 대한 증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렇다면 검찰 측 참고인과 증인들의 진술은 재판의 증거로 사용할 수 없거나 진술 내용이 사건 발생 당시 수집된 증거 또는 주변 정황과 모순되는 등의 사유로 믿기 어렵다”며 “피해자의 속옷에서 검출된 남성 DNA 증거와 다른 증거들과 종합하더라도 피고인에 대해 적용된 특수강도강간죄의 범죄사실을 인정하기에는 부족하다”며 “같은 취지로 판단한 원심은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대구에 있는 모 대학 1학년생인 A양(당시 18세)는 1998년 10월17일 야간에 학교에서 친구들과 헤어진 뒤 7시간 동안 행적이 확인되지 않다가 다음날 새벽 구마고속도로 상에서 화물차량에 치여 숨졌다. 구마고속도로는 A양의 집이나 학교와는 상당히 떨어진 곳에 있었다. 사망 당시 A양은 속옷을 입지 않은 상태였고, 도로변에서 발견된 A양의 속옷에서는 신원불명의 남성 정액이 검출돼 성범죄 피해를 입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범행 단서를 잡을 수 없어 사건은 미궁에 빠졌다.
이후 14년 뒤인 2012년 8월, 사건 당시 검출된 정액의 DNA 정보가 다른 성범죄로 수사를 받고 있던 K씨의 DNA 정보와 일치한다는 사실을 경찰이 우연히 확인한 뒤 수사는 재개됐다. 검찰은 K씨가 다른 스리랑카인 산업연수생 2명과 함께 술에 취해 귀가하던 A양을 유인해 술을 더 먹인 뒤 구마고속도로 인근으로 데리고 가 순차로 성폭행하고 가방에 있던 A양의 책과 현금, 학생증 등을 빼앗아 달아난 혐의(특수강도강간 등)로 기소했다. 다만, 공범으로 지목된 스리랑카인 2명은 이미 출국한 상태여서 기소할 수 없었다. 검찰은 당시 K씨에게 강간혐의를 적용하려 했지만 기소 당시는 이미 사건발생일로부터 14년 이상 지나 공소시효 만료로 적용할 수 없었다.
1심은 특수강도강간죄에 대해서는 범죄의 증명이 부족하다며 무죄를 선고하고, 특수강간과 특수강도, 강도강간죄에 대해서는 공소시효가 지났다는 이유로 면소했다. 다만, 별건 기소된 무면허운전과 강제추행죄에 대해서는 유죄를 인정하고 징역 1년 6월과 집행유예 3년, 보호관찰 3년, 사회봉사 120시간, 준법 운전수강 40시간, 성폭력치료수강 40시간, 정보통신망 신상공개 및 고지명령 3년, 위치추적 전자장치부착명령 3년을 선고했다.
2심 역시 검사의 공소장 변경으로 1심을 깨기는 했지만 특수강도강간에 대해 무죄를 선고하는 등 1심과 거의 같은 판단을 내렸다. 2심 재판부는 “수사 및 재판에 출석해 진술한 스리랑카인 참고인 및 증인이 다른 공범들로부터 들었다는 피고인의 특수강도강간의 범행 사실에 대한 내용은 서로 다르거나 모순돼 신빙성이 없기 때문에 증거능력이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검찰이 스리랑카인 참고인과 증인들의 진술은 증거능력이 있거나 신빙성이 있고, 이들의 진술을 DNA감정서 등과 합쳐 볼 때 K씨의 특수강도강간죄의 범죄사실을 인정할 수 있다며 상고했다.
대법원 조형물, '정의의 여신상'. 사진/뉴스토마토
최기철 기자 lawch@etomato.com
ⓒ 맛있는 뉴스토마토, 무단 전재 -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