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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태곤의 분석과 전망)심상정과 이승배 이야기
2017-03-06 06:00:00 2017-03-06 06:00:00
이번 대선은 여러 모로 상당히 독특하다. 일주일만 있으면 판가름나겠지만, 선거가 언제 치러질지도 현재로선 알 수 없다. 책임 있는 정치인들과 정당이라면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승복하지 않을 방법도 없겠지만, 탄핵이 기각된다면 그 후폭풍은 짐작키도 어렵다. 탄핵이 인용되더라도 후폭풍은 상당할 것이다. 그 후폭풍 안에서 60일 안에 각 당이 후보를 선출하고 선거를 치러야 한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통해 ‘제대로 검증되지 못한 대통령’의 문제가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이번엔 물리적으로 검증의 기회가 더 줄어들 것이다. 물론 주요한 대권주자들은 ‘상당히 검증된 사람’들이라 볼 수 있다. “누가 되도 박근혜 보단 낫겠지”라는 말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5년 전 박근혜야말로 ‘수십년 간 검증’된 사람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대선에서 긍정적인 면이 하나 보이는 것이 있다. 여성, 양성평등, 보육 등의 문제에 대한 인식이 달라지고 있다는 점이다.
 
‘인적자원’적 차원에서 접근하는 ‘저출산’ 같은 낮은 수준의 문제의식을 넘어서는 흐름이 형성되고 있다. 아직도 턱없이 부족하고 대선주자들 사이에서도 여전히 황당한 이야기들이 툭툭 튀어나와 눈살을 찌푸리게 만든다. 그래도 너무나 힘든 현실과 그 현실 속에서 허덕이는 사람들의 분노가 정치 지도자들을 밀어붙이고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그런지 주요 대선주자들 뿐 아니라 대선주자들의 배우자들도 과거와는 사뭇 다른 이미지를 형성하려 애쓰는 게 보인다.
 
‘배우자가 나댄다’는 이미지는 한국 사회에선 아직도 치명적이기 때문에 조심하는 기색이 역력해보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님께서 가신 길은 빛나는 길이옵기에, 태극기 손에 들고 마음껏 흔들었소”식의 퍼스트레이디 후보도 사라진 느낌이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여러 여성지들이 주요 대선주자들의 배우자를 릴레이 인터뷰하고 있다. 사실 여성지의 대통령 후보 배우자 인터뷰 포맷이나 내용은 좀 식상하다.
 
먼저 신혼여행, 단란한 가족, 정치 시작할 때의 풋풋한 모습이 담긴 사진들이 주르륵 공개된다. 뒤를 잇는 것은 “남편으로선 높은 점수를 주기 어렵지만 국민 사랑하는 마음만은 100점이다” “바쁜 와중에도 아이들과 대화를 많이 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정치인의 아내로 산다는 것이 힘들지만, 남편이 손을 한 번 꼭 잡아주면 피로가 다 풀린다” 같은 뻔한 이야기들.
 
그런데 <여성동아> 3월호에 실린 심상정 정의당 후보 배우자 이승배 씨의 인터뷰는 그런 편견을 완전히 깼다. 일단 여성 대통령 후보의 남편 인터뷰가 ‘주류 여성지’에 대문짝만하게 실린 게 처음이 아닌가 싶다.
 
세칭 KS(경기고-서울대 졸업) 출신으로 본인도 노동운동가였던 이승배 씨는 이 인터뷰에서 대통령 후보의 ‘남성 배우자’로 사는 삶을 담담히 풀어놓고 있다. 일반적 남편-아내의 역할이 역전된 것이라고 보기엔 그의 성찰과 삶의 깊이가 남다르다.
 
아마도 “노동운동을 하던 옛날 선배들은 여성을 옥바라지해주는 대상 정도로 여기는 가부장적인 생각을 갖고 있었는데 아내를 만나면서 의식이 많이 바뀌었어요”라는 말이 이 부부를 이해할 수 있는 단초가 아닌가 싶다.
 
‘퍼스트 젠틀맨이 될 경우의 포부’를 묻는 질문에 대한 대답도 멋있다. 이승배 씨는 “만약 그렇게 된다면 그때가 바로 우리나라가 ‘선진 복지국가’가 되는 날이 아닐까 싶어요”라면서 “그때가 되면 유능한 인재들이 적재적소에서 자기 몫을 다할 텐데 저 같은 사람이 굳이 필요가 있을까요. 심부름을 할 일이 있으면 그것이나 좀 할까요”라고 말했다.
 
다른 인터뷰, 텔레비전 아침 프로그램이나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이 부부가 더 주목받았으면 좋겠다. 어쩌면 그게 ‘변화의 지표’일지도 모르겠다.
 
윤태곤 더모아 정치분석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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