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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숙의 파리와 서울 사이)환영받지 못하는 단식투쟁은 끝이 뻔하다
2016-10-03 11:19:20 2016-10-03 11:19:20
지금 한국 민주주의는 고장이 나도 단단히 난 것 같다. 민생을 위한 정치는 없고 여야가 옥신각신 정쟁만을 일삼는 혼란의 정치가 연속된다. 집권여당인 새누리당은 정세균 국회의장의 “맨입” 발언을 빌미로 국정감사를 보이콧했다. 김무성 의원은 “의회주의 파괴자 정세균은 물러가라”는 릴레이 피켓시위에 앞장섰고, 국정감사 중단을 거부하는 김영우 의원을 감금하는 초유의 사태를 벌였다. 6선 의원의 관록을 이런데서 보여주니 참으로 유감이다. 어디 그 뿐이랴. 이정현 대표는 일주일간 단식을 하며 “정세균이 물러나든 내가 죽든 둘 중의 하나”라고 으름장을 놓더니 어이없게 단식중단 선언을 했다. 이런 코미디 같은 해프닝을 벌인 그들이 과연 대한민국의 리더일 수 있는가. 이 대표의 단식투쟁은 정녕 타당했던가.
 
세계 역사에서 헝거스트라이크(Hunger Strike)가 정치적으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 초였다. 1905년 영국 여성들이 여성의 참정권 획득을 위해 정부를 상대로 감옥에서 단식을 감행했다. 그리고 1920년 아일랜드 공화국 군이 반영(反英) 독립운동을 위해 영국 브릭스턴 감옥에서 94일간 최장 단식투쟁을 벌여 놀라게 했다. 가장 혹독한 단식투쟁은 1981년 투옥된 아일랜드 죄수들이 정치범 처우개선을 위해 강행한 것이다. 영국과 아일랜드의 독립분쟁에서 보비 샌즈는 독립을 요구하며 죽음을 각오한 단식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그 당시 영국 수상 마거릿 대처는 시위자들과의 대화를 거부했고, 단식투쟁 66일 만에 샌즈를 비롯한 10명이 사망했다.
 
오늘날 유럽에서는 피난민들이 체류허가를 받고자 성당을 점거하고 단식투쟁을 벌이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특정 그룹이 지향하는 사안이나 의지를 관철하는 수단으로 언론의 주목을 끌거나 정부 혹은 권력의 긴장을 고조시키기 위해 단식투쟁을 벌인다. 군사독재시절 우리의 민주투사들이 군부에 저항하기 위해, 그리고 지난 2014년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가 박근혜 정부를 상대로 특별법제정과 진상규명을 위해 했던 것처럼 말이다.
 
이렇게 단식투쟁은 부당한 상대에게 저항할 힘이 미약하거나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할 때 최후의 수단으로 사용된다. 그렇다면 이 대표의 단식투쟁은 어떠했는가. 이 대표는 집권여당의 대표다. 그가 원하면 얼마든지 자신의 정치력을 발휘할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런데 다른 시도는 해보지도 않은 채 단식농성에 들어갔으니 이는 민주주의의 훼손이 아니고 무엇인가. 그의 단식투쟁이 정당성도 숭고함도 얻지 못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프랑스에서는 정치인들이 단식투쟁하는 광경을 좀처럼 만나보기 어렵다. 그러나 지난 2012년 11월 한 시장이 파리 7구 국회의사당 앞에 “위기에 처한 가난한 시군구는 연대가 필요하다”라는 현수막을 내걸고 단식농성을 벌여 주목을 받았다. 유럽녹색당의 스테판 가티뇽(Stéphane Gatignon) 시장이 단식투쟁을 벌인 이유는 절체절명의 사명에서였다. 파리 동북부의 센 생드니 지방 세브랑(Sevran) 시의 재정부담이 커지자 국가에 원조를 요청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시민 5만1000명을 책임지고 있는 그는 국회가 도시연대보조금을 인상해야 한다며 지방세제와 재정의 개혁을 요구하고 나섰다.
 
가티뇽 시장은 “나는 더 이상 선택의 여지없이 우리 시를 위해 싸워야 한다. 일드프랑스(수도권)는 돈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금고 위에 앉아있는 시장들과 함께 가장 부유한 유로존에 있다. 따라서 부를 분배해야 한다”고 숙연한 어조로 간청했다.
 
가티뇽 시장의 단식투쟁은 많은 사람의 감동과 호기심을 불러일으켰다. 먼저 2012년 당시 내무부 장관이었던 마뉘엘 발스가 단식농성장을 찾아 가티뇽 시장에게 “용기 있는 투쟁”이라며 연대와 우정을 표시하고는 “나는 그를 아주 오래전부터 알고 있다. 내가 에브리 시장이 될 즈음 그도 세브랑 시장이 되었다. 우리는 자주 도시 외곽지역의 재정적 어려움을 토로하곤 했다”고 AFP통신의 한 여기자에게 말했다. 또한 세브랑의 젊은이들과 시민들이 가티뇽 시장을 지지하러 국회 앞으로 몰려들었다. 그 가운데 전에 세브랑 시에 거주했던 디디에 바틸리 씨는 “귀 기울이게 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해야만 한다. 쟁취하는 곳은 세브랑 시에 머무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가티뇽 시장의 단식투쟁에 힘을 실어 주었다.
 
전혀 공감도, 환영도 받지 못했던 이 대표의 단식농성과는 대조적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민주국가라면 정치는 순리에 따라야 한다. 국민은 4·13 총선에서 여당을 심판하고 여소야대 정국을 만들었다. 이러한 현실을 거역한 채 모든 것을 새누리당 마음대로 끌고 가려 한다면 독재와 무엇이 다르랴. 정 의장의 언행이 중립을 어기고 품위에 어긋났다 한들 단식투쟁으로 국정을 마비시킬 만큼 중대사는 아니었다. 오직 국민만을 바라보고 가겠다던 이 대표의 머릿속에 진정 국민은 있었던 것일까. 국민을 생각했다면 ‘비상시국’인 지금 공허한 헝거스트라이크로 국정에 브레이크를 걸지는 않았을 것이다.
 
최인숙 파리정치대학 정치학 박사
 
* 편집자 주 : 필자 최인숙은 파리에서 10년간 체류했고 파리정치대학(Sciences Po Paris)에서 한국, 일본, 프랑스 여론 연구로 정치학 박사를 받았다. ‘파리와 서울 사이’는 한국과 프랑스의 정치·사회현상을 비교 분석하는 연재 코너로 <뉴스토마토> 지면에는 매주 화요일자 23면에 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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