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적 리더십 있어야 협상 성공…사드 결정에선 없었다"
<협상의 전략> 쓴 김연철 교수 "더민주, 집권능력 보이려면 입장 밝혀야"
입력 : 2016-08-01 17:58:34 수정 : 2016-08-01 18:28:44
한반도 문제 전문가인 김연철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가 발간한 책 <협상의 전략>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한국전쟁 휴전협상에서부터 남아프리카공화국 민주화협상, 유명한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근현대 세계사에서 있었던 스무 가지 협상의 풀스토리를 750여 페이지의 두툼한 책에 담았다.
 
모두 정치 영역의 협상들이지만 김 교수는 협상의 보편성을 강조했다. “우리 삶 자체가 협상의 연속이다. 가게에서 물건을 살 때나 연인들이 영화를 고를 때, 가족들이 외식을 할 때도 양보하고 타협하고 조정해야 한다.”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의 한 카페에서 만난 김연철 교수는 협상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지도자의 민주적인 리더십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김 교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배치에 관한 미국과의 협상이 민주적 리더십이 결여된 대표적인 사례라고 꼽았다. 내부적인 토론도 없었고 내부의 목소리를 협상에 활용하지도 않은 채 미국과 상대하다 보니 그들의 뜻대로 끌려 다닐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은 ‘완충국가’로서는 가지 말아야 할 길로 접어들었다. 최근 한반도 정세와 책에 관해 김 교수와 나눈 대화의 주요 내용이다.
 
◇독재적 리더십은 협상에 취약하다
 
- 책을 통해 궁극적으로 하고 싶었던 말은 무엇인가.
 
협상은 보편적인 것이다. 국가와 조직과 사람 사이에 늘 있는 일상이다. 또 협상은 기본적으로 양면협상이다. 하나는 내부에 있는 지혜와 자원을 극대화는 협상이고, 다른 하나는 본격적인 협상 상대와 하는 것이다.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사드’ 문제의 경우 국내 차원의 협상이 없다 보니 한국 정부가 미국과 상대할 때 협상력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이런 경우를 많이 본다. 기업간의 협상도 마찬가지이다. 협상을 하려면 내부의 강경파들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결국 깨진다.
 
아무리 뛰어난 리더라 해도 혼자서 협상판을 주도하는 것과, 집단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전문적 지식과 판단과 지혜를 모으는 것은 다르다. 리더는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내부의 지혜를 잘 모아낼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존 F. 케네디 전 미국 대통령은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당시 미 행정부 내부의 열린 토론을 통해 실수의 가능성을 줄였다. 정부나 기업이나 마찬가지다. 어떤 조직이든 리더는 양면협상을 잘 해야 한다. 상대와의 협상을 융통성 있게 하는 것과 내부의 민주적 리더십이 굉장히 중요하다.
 
1978년 카터 미 대통령과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 베긴 이스라엘 총리 사이의 캠프 데이비드 협상 당시 사다트는 독재적 리더십을 가진 인물이었다. 상대국과의 협상 상황을 참모들에게도 애기하지 않았다. 사다트 측의 상황을 아는 협상 상대방은 사다트만 구슬리면 양보를 얻어낼 수 있었다. 독재적 리더십은 협상에 매우 취약해진다.
 
서점에 가서 협상에 관한 책을 보면 대부분 요점 정리나 교훈집이다. 나는 앞뒤 이야기를 들려줌으로써 전체의 과정을 더 이해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썼다. 협상에는 정답이 없고 비법도 없다. 서두르지 말아야 할 경우가 있고 때를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경우도 있다. 완전히 반대되는 말인데, 상황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스토리를 통해 그런 부분을 충분히 이해해야 한다. 기다려야 할 때인지 치고 나가야 할 때인지를 판단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 정치협상의 원리들을 기업간 협상에서 응용한다면?
 
길게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단기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것과 장기적이고 전략적인 이득을 추구하는 것은 다르다. 협상은 한번 하고 끝나는 게 아니다. 반복될 수밖에 없다. 지금 양보하면 나중에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거듭 말하지만 조직 내 민주주의도 중요하다. 잘못된 판단을 막을 수 있는 내부의 열린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
 
이 책은 갈등을 해결하는 리더십에 대한 구절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넬슨 만델라 전 남아공 대통령의 리더십이다. 만델라가 몸담고 있던 아프리카민족회의(ANC)는 구성이 매우 복잡했다. 아주 강경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 어떤 조직이든 독재체제가 아닌 이상 다양한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사람들의 다양한 선호와 이익과 주장을 관리하는 게 필요하다. 만델라는 사람들의 말을 많이 들었다. 서로 다른 의견들이 충돌할 때 그 사람들이 제안했던 주장을 중심으로 결론을 도출해 내는 능력이 있었다. 북아일랜드 평화협상의 조지 미첼이라는 중재자도 듣는 리더십이 탁월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에서 배운 것은, 가장 적합한 대안을 찾기 위해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정확히 계산해야 한다는 점이다. 급하다고 헛발질을 했을 경우의 손해는 막심하다. 신중함 속에서 대안을 찾기 위한 조직 내부의 활발한 의견 교환이 무엇보다 긴요하다. 위기를 극복해 내려면 다양한 카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리더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고 네트워크를 총동원해서 그 카드를 만들어야 한다.
 
◇빌리 브란트와 넬슨 만델라를 만나다
 
- 책에 등장하는 역사적 인물 가운데 크게 매력을 느꼈거나 인상적이었던 사람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의 리더십이 인상적이었다. 빌리 브란트는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되는데, 나는 역사적 책임감을 실천한 인물로 보고 싶다.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과 한국의 포용정책을 비교할 때, 동방정책을 펴기가 더 쉬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서독은 민주주의 국가였고, 동·서독 사이의 전쟁도 없었고, 서독 내부의 갈등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빌리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추진했던 1960년대 후반기와 1970년대 초반기는 서독 내부에서도 극심한 이념갈등이 있었다. 동·서독 기본조약에 대해서는 보수진영에서 위헌 소송을 내기도 했고, 불신임 투표에 직면해 정권을 잃어버릴 수도 있었다. 폴란드와의 국경 협상은 내부의 어마어마한 반대를 뚫어야 했다.
 
이렇게 쉽지 않은 환경에서도 브란트는 시대를 전환해야 한다는 결심과 의지가 굳었다. 역사적인 책임감이었다. 1970년 미국의 시사주간지 <타임>은 브란트를 그해의 인물로 선정하면서 “정치 지도자들 대부분은 사건이 발생하면 그제야 대응하지만, 브란트는 역사를 만든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나도 동의한다. 정치인은 여론을 쫒아가기 보다 시대적 과제를 앞장서 해결해야 한다.
 
넬슨 만델라의 리더십도 우리 시대,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리더십이다. 한국 사회에서는 갈등이 매우 심하고 해결 방법이 없다 보니 서로 부딪히기만 한다. 내부적인 화해를 이룰 수 없고, 미래로 나가기도 어렵다. 만델라가 보여준 화해의 리더십은 배워야 한다. 내부 강경파들과의 조화와 백인들과의 평화로운 이행 과정에서 고비도 많았지만, 그때마다 인내심을 가지고 해결해 나가 결국 ‘무지개 국가’를 만들었다.
 
만델라는 감옥에서 27년 동안 있으면서 두 가지를 열심히 했다. 하나는 화초를 키우는 일이었다. 나중에는 엄청난 규모가 됐는데, 식물을 기르면서 인내심과 정신적 수련을 했다. 또 만델라는 운동을 열심히 했다. 앞으로 자기가 해야 할 과제를 생각하면서 평상시에 체력을 유지하려고 했다.
 
만델라의 말 중에는 “며칠 혹은 몇주의 시간으로 보면 비관적이지만, 몇십년을 내다보면 낙관적일 수 있다”는 말을 좋아한다. 감옥에서 오래 살아서 그런지 국가를 어떻게 바꿔야겠다는 시간적 범위가 꽤 컸다. 그러다 보니 일상에서의 갈등을 충분히 뛰어 넘을 수 있었다.
 
◇‘완충국가’의 생존 방식 고민해야
 
- 김 교수는 사드 배치 국면이 엄중하다는 말을 하고 있다. 그 문제가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강대국들이나 큰 세력들 틈에 끼인 ‘완충국가’ 혹은 ‘국경국가’라는 개념이 있다.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나 핀란드, 과거의 유고 같은 나라들이다. 라틴 아메리카의 경우 아르헨티나와 브라질 사이에 있는 국가들을 완충국가라고 부른다. 끼인 국가들이 생존을 유지하고 국가 발전을 이루는데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교력이다. 이런 국가들은 대체로 어느 한 편에 속하지 않는다. 한 편을 들게 되면 다른 쪽으로부터 공격을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오스트리아는 중립국을 택했고, 핀란드는 지역의 협력을 증진시키는 역할을 통해 작은 나라지만 위상을 확보했다.
 
지금은 냉전 시대가 아니다. 중국·러시아와의 관계가 경제적으로 뿐만 아니라 외교적으로도 무시할 수 없는 사이가 됐다. 우리가 생존을 유지하고 발전하기 위해서는 이런 지역질서 속에서 살아갈 수 있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 그런데 사드 배치라는 냉전 시대의 선택으로 갔다는 게 안타깝다. 한반도의 분단과 전쟁은 이 지역의 질서가 진영간 대립으로 격화되면서 나타났던 현상이다. 우리는 그 역사적 피해를 고스란히 받았다.
 
국경국가든 완충국가든 두 가지 특징을 다 가지고 있다. 협력이 이뤄지면 그 나라에서부터 시작된다. 전쟁이 일어나도 그 나라에서 일어난다. 군사적 위기의 전방이 될 것이냐, 협력의 전초기지가 될 것이냐. 우리의 운명이 걸린 문제다. 사드의 군사적 효용성보다 전략적 구도 자체가 사드 때문에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 훨씬 더 중요하다. 평화와 번영의 선순환이 아니라 군비경쟁의 악순환을 선택한다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한번 길을 잘못 들어가면 벗어나기 어렵다. 사드 포대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이걸 선택함으로써 달라지는 전략적 부작용이 지금부터 시작이라는 게 중요하다.
 
한반도가 강대국들의 대결의 장으로 변환될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국익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느냐가 고민이다. 냉전 시대에 분단이 되고 전쟁을 치렀다면, 세계질서가 변화되는 현 상황에서의 선택이라는 차원에서 봐야 한다.
 
- 야권 일각에서는 이런 주장도 있다. “정부와 여당이 사드 논란을 내년 대선까지 끌고 가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는데, 외교안보 문제에 더불어민주당이 휘말리면 득 될 게 없으니 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이런 논리를 반박한다면?
 
더민주는 소수 정당이 아니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이다. 집권 능력을 보여줘야 한다. 집권 능력을 얘기하는 데 있어 외교안보 문제를 빼놓을 수는 없다. 집권을 목표로 하는 당이 외교안보 문제를 정치적인 득실에 따라 발언하지 않는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외교안보 분야는 야당의 입장에서 공격 분야가 아니고 수비 분야이긴 하지만, 문제는 그 수비를 어떻게 하느냐에 있다. 여러 방식이 있을 수 있다. 최선의 공격은 최선의 수비라는 말이 있지 않나. 이 분야를 계속 피하기만 하다 보니 선거에서 늘 색깔론이 등장한다. 색깔론의 효력이 없어졌다는 사람들도 있지만, 효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타난다.
 
지난 대선을 보면,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가 커지다 보니 야당이 다른 쟁점을 제기할 수 있는 시간적 공간을 빼앗아갔다. 야당 측에서 수비를 한다는 개념도 없이 그냥 무시하겠다고 했을 때, 우리 시대에 논의해야 할 중요한 의제들을 흡수해 버린다. 그렇게 되면 결국 선거에서 지는 것이다.
 
◇외교안보 정책에서 누가 유능한가
 
- 지난 총선 때는 외교안보 쟁점을 거론하지 않는 전략이 어느 정도 통한 것 아닌가?
 
그런 전략의 득실은 검증되지 않았다. 외교안보 문제를 이념의 프레임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이념 갈등으로 몰아가면 여당에 거의 대부분 유리한 프레임이다. 그 이념 갈등에 빠지지 않겠다면서 논의 자체를 무시하는 전략을 취한 건데, 그것은 외교안보 문제는 이념 프레임에 속한다는 것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하면 야당이 내세울 수 있는 중요한 부분을 포기하게 된다. 바로 ‘유능과 무능’ 프레임이다.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외교안보 정책에서 무능했다는 사실은 이미 많이 축적되어 있다. 국민들 누구든 알 수 있을 정도로 많다. 그런데 야당이 그 문제를 제기하지 않다 보니, 이명박-박근혜 정부가 다른 분야에 비해 외교안보 분야를 제일 잘 했다고 여기는 역설이 나타난다. 점점 이렇게 되면서 견제장치가 없어져 버렸다.
 
더민주에서 사드에 관한 모호한 입장을 내놓고 있는 김종인 체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그전에도 야당은 주로 이런 태도를 취했다. 이념 프레임이 무서워 ‘유능/무능’ 프레임까지 거둬버렸다. 사드 배치 결정 같은 게 그렇게 해서 나온 것이다. 아무런 견제가 없으니. 이런 최악의 상황에 대한 야당의 책임이 크다.
 
야당이 유능한 세력이라는 걸 보여줄 수 있는 것은 경제와 외교안보 분야다. 외교안보 분야는 과연 국가를 맡길 수 있느냐를 가늠하는 중요한 주제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일반적인 상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될 때 외교안보 분야에서 식견이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것 말고 어디에서 ‘집권할 수 있는 세력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줄 수 있겠나.
 
- 최근 ‘대북소식통’을 인용한 북한 관련 보도를 보면, 신빙성이 의심되는 경우가 더 많아지는 인상이다.
 
‘모든 건 북한 때문이야’라는 프레임에 야당도 동조를 해버리니 더 확산된다. 이른바 정보실패라고 한다.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이 양산되는 것이다. 국회 정보위원회나 외교통일위원회에서 무책임한 보도의 양산을 막아야 한다. 누가 봐도 주문 제작한 기사들이 엄청나게 많다. 야당이 문제제기를 안 하니까 반복되는 것이다.
 
외교안보 분야에 대한 방기가 가져온 부작용이 많다. 그렇게 해서 선거를 어떻게 이기나. 김종인 대표 식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야권에도 많다. 더민주 소속 중진 의원들을 만나 보면 조선일보식의 시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람들이 많다.
 
김연철 교수가 인터뷰 도중 자신이 쓴 책을 들어 보이며 설명하고 있다. 사진/뉴스토마토
 
황준호 기자 jhwang7419@etomat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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